'전격 산불 진화 작전',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소방관 국가직 전환 '안전 인프라' 만드는 첫 걸음

등록 2019.04.11 22:02수정 2019.04.1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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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전 강원도 속초 장사동 일대 야산에 전날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옮겨와 임야를 태우자 소방대원들이 공장으로 옮겨 붙지 않도록 물을 뿌리고 있다. ⓒ 이희훈


지난 4일 발생한 강원도 일원의 산불이 삶의 현장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일단락됐다. 그나마 민·관·군의 신속한 협업 덕분에, 특히 전국에서 모인 소방관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국가재난사태로까지 선포됐던 산불이 잡혔다. 이제부터는 정부가 피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피해 주민의 불편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신속하게 복구해 나갈 일만 남았다. 

비록 직간접적인 피해 액수만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는데도 정부의 이번 산불 대응은 이전과는 확실히 달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에서 출동한 소방차들이 줄지어 강원도로 향하는 모습과 휴게소를 가득 채운 소방관들이 출동 전 급히 끼니를 때우는 사진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국가다"라며 응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쇄도하기도 했다.  

국가직 전환, 국민들이 열망하고 있어 
 

강원도 산불 진화를 위해 인천의 소방차들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 인천시

 
무엇보다 이번 강원도 산불은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줬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홈페이지에는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청원이 닷새 만에 24만 명(11일 기준)을 훌쩍 넘어섰다.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러한 여론을 반영한다. 무려 응답자의 78.7%가 현재 지방직 공무원 신분인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데 찬성한다고 답했다(관련기사: 국민 10명 중 8명 "소방관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보수-중도-진보 '의견 통일').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사안 중 하나다. 정부는 소방관을 가리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들에게 국가가 내미는 손이라고 규정하며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해 처우를 개선하고 소방 인력과 장비의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겠다"라고 누차 강조해왔다.

하지만 소방관 국가직 전환이란 열매를 수확하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관련 법안이 국회 법안심사소위의 문턱도 넘지 못한 상황이어서 연내 시행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 5만여 명이 조금 넘는 소방 인력과 장비를 보강하기 위해 해마다 4천억 규모의 소방안전교부세가 투입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인력도 서서히 충원되고 있으며 노후장비들도 어느 정도 교체가 되었지만 지역 간 편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경찰에서 이미 시행하는 4교대는 인력 부족으로 꿈도 꾸지 못한다. 현재 3교대를 하는 소방관들의 피로도가 높다. 이 때문에 이번처럼 규모가 큰 대형재난을 지방자치단체 혼자 대응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역부족이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상이한 재정여건은 현장 소방대원과 소방장비의 부족 그리고 처우의 차이를 불어온다. 이 때문에 국민의 안전에도 지역별로 차이가 생긴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17년 발생한 충북 제천화재를 통해 안전 불균형이 가져오는 엄청난 참사를 직접 경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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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1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행한 가운데, 22일 오후 사고 현장의 모습. ⓒ 이희훈

  
국가직으로 전환돼도 문제는 남아 있다

정부는 현재 소방관의 신분은 국가직으로 전환하되 인사·지휘는 그대로 시·도에 두는 '국가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럴 경우 국가직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결과적으로 소방조직의 예산과 인사권이 여전히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장이 재난에 관한 문제의식이 부족해 다른 사안을 우선 처리할 수도 있다. 또 선거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하거나 재판 등의 문제로 공백이 생긴다면 재난에서 가장 중요한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재난을 예방(대비)하고 대응하고 복구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엇박자가 날 수 있다. 이 때문에 행정안전부와 소방청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업이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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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충남 천안시 중앙소방학교에서 열린 제55주년 소방의날 기념식에서 소방 시범 훈련을 보인 소방관들을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에게는 견고한 안전 인프라 구축이 절실히 필요하다. 안전의 중심에 바로 소방관들이 있다. ​​​​이번 강원도 산불 화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면 국가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당리당략을 떠나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안전 불균형을 해결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소방관국가직전환 #소방관 #강원산불 #이건소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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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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