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의 페미니즘, 거기에 흑인도 포함 되나요?

[서평] 오드리 로드 지음 '시스터 아웃사이더'

등록 2019.04.15 13:57수정 2019.04.1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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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누구 없나요? ... 저들에게 전해주렴. 내가 왔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나는 내 약속을 지켰다고." (p121)
 
혐오와 배제의 땅에서 살아야 했던 흑인 소녀는, 어릴 적 읽었던 시집의 이 구절을 평생 잊지 않았다. 대답 없는 부름을 계속 외쳐야 하는 것은 어떤 고독일까? 가슴에 들어앉은 이 시구는 그로 하여금 평생 시를 쓰게 했다. 고독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독을 강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흑인됨'(blackness)을 각인하며 이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그는 언어를 찾아낸다. 그가 토해내는 언어는 '교차성' 페미니즘을 관통하며 시로 태어났다. 그는 시로서 인종, 계급, 성별, 나이 등이 교차하는 '차이'를 세상에 드러냈다. 백인이든 유색이든, 인종성은 하나의 범주가 될 수 없다. 

백인, 유색인 안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가, 배운 자와 못 배운 자의 차이가, 늙은 자와 젊은 자의 차이가, 이성애자와 성소자와의 차이가 각각 다르게 '만나며 부딪치며', 새로운 '차별'을 분기해 낸다.

차이가 '만나고 부딪치는' 교차로와 같은 지점을 '교차성'이라 명명하며, 이 교차점에서, '차이'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선명히 드러내고 알아가자고 역설했다. 그는 끊임없는 백래시에도 굴하지 않고, 흑인이면서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죽는 날까지 지켰다.

이 책의 저자 오드리 로드(1934-92)의 이야기다. 오드리는 1968년 투갈루 칼리지에서 시를 가르치기 시작해 'Black Studies'(흑인학)을 태동시킨다. 레만 칼리지에서 백인 예비 교사들에게 인종차별을 교육하며, 백인들이 권리처럼 행사하는 무지와 몰이해에 직면한다.

흑인 시인 오드리는 글쓰기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큰 변화를 겪으며 성장한다. 글쓰기나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수록 소명감도 커져갔다. 나를 좀 봐달라고, 내 말을 좀 들어달라고, 외쳐본 적이 있는가? 거기에 누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누군가를 불러본 사람은, 오드리의 외침이 '연대'에 대한 목마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억압, 배제, 소외 속에 외로워하며, 줄곧 불렀을 '희망'의 외침.
 
"내 침묵은 나를 지켜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침묵도 당신을 지켜주지 않을 겁니다."(p48)
 
침묵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무엇이 두려울까? '차이'가 '차별'이 되는 사회에서, 침묵을 깨고 다른 말을 하려 할 때, 많은 것들을 각오해야 한다. 냉소, 모욕, 혐오, 소외, 폭력 등. 이런 이유로 나와 타자 사이의 유리벽을 깨는 침묵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오드리는 백인, 남성, 이성애, 젊음, 기독교, 부자 등의 억압을 교차시키며 사회의 권력 구조를 낱낱이 파헤쳤다. 시인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흑인 운동가로서, 성소수자로서.

오드리는 흑백의 억압뿐 아니라 흑인 내부의 억압에도 침묵하지 않았다. 흑인 인권이라는 대의에 분열을 일으킨다는 비난에도, 흑인 남성의 흑인 여성에 대한 성차별, 흑인 여성 간의 자기 기만적 혐오를 대담하게 드러냈다. 백인들의 인종 우월성을 내면화하게 된 흑인들은, 희고 싶은 욕망과 끊임없이 만날 수밖에 없다.

수차례의 위험한 성형을 감내하고서라도 하얘지고자 했던 마이클 잭슨을 기억해 보라. '백인우월주의'에 길든 흑인 남성은 흑인 여성을 폭력으로 억압함으로써, 자신들의 열등함을 상쇄하려 들었다.

흑인 여성 또한 백인우월주의에 물들어 흑인인 자기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혐오하며 부정하기를 반복했다. 오드리가, 흑인이 자신을 거부하게 하는 억압의 고리를 스스로 잘라내지 않고서는 해방도 없다,고 설파한 이유였다.
 
백인 여성이 자기들만의 경험을 가지고 여성을 정의할 때 유색 여성은 "타자", 즉 그 경험과 전통이 너무 "이질적"이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다.(p198)
 
오드리는 백인 여성들의 페미니즘이 백인의 계급성을 기준으로 유색 여성을 규범화시키는 데 제동을 건다. 인종과 계급이 교차하는 흑인 여성의 억압을 백인 여성은 이해할 수 없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백인 정체성만을 내세우는 백인 페미니스트의 기만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오드리는 '교차성' 이론을 정교화 한다.

백인 여성들은 자신들의 기득권(백인이면서 중산층)을 바탕으로 오직 남성우월주의와의 투쟁에만 매진했고, 가부장이나 백인성과 타협하며 권력을 나눠가지려 했다. 이런 백인 페미니스트들에게 오드리는, 당신들의 '자매애'에 유색 여성이 포함되어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히든 피겨즈>의 흑인 여성들이, 나사(NASA)에서 백인 남성뿐 아니라 백인 여성들과 벌였던 분투를 기억한다면,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히든 피겨즈의 여성 캐릭터들은 노예처럼 저임금에 시달렸던 대부분의 흑인 여성들과 견줄 때, 매우 성공적인 소수의 성취자들이 된다. 흑인 내부의 차이가 다시 확연해지는 이 지점에, '교차성' 페미니즘의 분석이 개입되는 것이다.
 
"매일 혐오를 밥 먹듯 먹고 자란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과의 모든 만남이 혐오의 부산물인 부정적 정념과 강렬한 분노, 그리고 잔인함으로 얼룩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p295)
 
인종차별, 성차별과 싸우는 일이 흑인 여성 간 문제를 짚는 일보다 쉽다고 본 오드리는, 흑인 여성들의 내면 탐구에 몰두한다. 어릴 때부터 어떤 경우에도 참도록 훈육당한 흑인 여성들은, 쌓이는 분노를 풀어내지 못한 채, 증오를 체화하게 된다.

흑인 여성들은 '못됐다는 건 까맣다'로 각인하며, 쌓인 분노를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 쏟아붓도록 학습되어 진다. 내 안의 나를 돌보도록 배우지 못했던 그들은, 제 살점을 뜯어 먹고 제 피를 마시는 '파괴의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오드리는 내부 혐오를 극복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보고, '여성의 역사'를 되찾자고 주장한다. 아프레케테, 예만제(서아프리카, 브라질, 쿠바의 여신), 오요(나이지리아 요루바족의 여신), 마울리사(아프리카 다호메이의 여신) 등의 흑인 여성 신을 소환했고, 다호메이 폰 족의 여전사들, 베냉 공화국의 '퀸 마더즈', 아프리카 여성들의 '여성상인회', 한 팔에 아이 한 팔에 총을 든 앙골라 여성들의 역사를 불러내 '여성으로 정체화된 여성들'(womem-idemtified women)을 만나게 했다. 흑인 여성들에게도 자립적이고 강력한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자각시켜, 가공된 흑인 '노예성'을 떨쳐내도록 고무시켰다.

오드리가 살아 있다면, 80이 넘었을 나이다. 당당한 할머니 흑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의 모습을 그려보니, 눈물겹고 자랑스럽다, 그는 암으로 58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투쟁했다.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이성애중심주의가 어떻게 혐오를 작동시키며 내부를 분할시키는지를 '교차성 페미니즘'으로 정교하게 분석해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오드리가 생전에 쓴 산문과 대중에 호소하는 연설문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녀의 선동적이고 감동적인 글은 읽는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는 존재 깊숙한 곳에서 '토해내는 말 하기'로 여성성을 긍정하는 페미니즘을 언어화하며, 포용적이면서도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주창한다.

타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내가 나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페미니즘으로, 내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자고 설득한다. 내 안의 혐오로 다그치는 대신, 스스로를 보다 너그럽고 다정하게 돌보자고(Mothering) 고무시킨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곧 자신을 지켜내는 일임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관통하는 '차이'의 '교차성'은 '연대'로 이어지기를 갈망한다. 차이는 드러냄과 동시에, 수용되고 존중받아야 한다. 차이가 그저 차이로만 존재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각자의 소수자성을 절실히 자각하고 그 소수자성으로 연대할 수 있을 때, 우리 안의 차이는 좁혀지고 융화될 수 있다.

차이를 차별하지 않을 때, 횡단하고 교차하는 차이의 지점에서 서로를 팔꿈치로 밀어내지 않을 수 있다고, 오드리 로드는 30여년 후의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정희진의 소감이 곧 나의 독후 감(感)이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나도 묻는다. "누가 여성입니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이 질문이 영원한 것처럼, 오드리 로드 역시 그럴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예정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박미선 옮김,
후마니타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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