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벚꽃도 못 보고... 반도체 노동자로 숨지다

서울반도체 출신 이가영씨, 악성림프종 투병 중 8일 사망... 회사는 지난 1월 산재 취소 소송 제기

등록 2019.04.09 20:30수정 2019.04.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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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9일 오후 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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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반도체(주)에서 일하다 악성림프종을 얻은 후 2019년 4월 8일 세상을 떠난 고 이가영(개명 후 이하윤)씨의 빈소 사진. 고인은 생전에 산재 승인을 받았으나 지난 1월, 회사는 산재 인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 반올림


서울반도체에서 일하다 악성림프종을 얻어 투병해온 이가영(개명 후 이하윤)씨가 8일 오후 11시 43분에 사망했다.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 이름을 가진 그는 고작 스물여섯의 나이에 벚꽃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2011년 5월부터 반도체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 이씨는 2015년 2월 파견근무 나갔던 서울반도체(주)에 그해 5월 입사했다. 2년 뒤 그는 악성림프종(역형성 대세포림프종) 진단을 받았고, 2018년 9월 림프종이 재발했다.

한 달 뒤, 근로복지공단은 이씨의 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독한 항암치료를 견뎌내고, 지난 1월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까지 받았지만 그나마 산재 인정을 받아 치료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됐다.

하지만 2019년 2월 초, 서울반도체 인사팀장이 찾아와 회사가 산재 인정 취소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수술을 받은 이씨가 퇴원한 지 사흘째인 날이었다. 회사는 이미 1월에 소송을 제기한 뒤였지만 그제야 통보하러 온 것이었다.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공문을 보내 소송 취하를 부탁했으나 서울반도체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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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반도체(주)에서 일하다 악성림프종을 얻은 후 2019년 4월 8일 세상을 떠난 고 이가영(개명 후 이하윤)씨가 생전 무균실에서 치료받는 모습. 고인은 생전에 산재 승인을 받았으나 지난 1월, 회사는 산재 인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 반올림

 
반올림은 9일 보도자료에서 "서울반도체는 고인에게 유해물질에 대한 어떠한 교육이나 보호조치도 제공하지 않은 채 주야 2교대로 일을 시켰다"며 "반성하고 직업병의 고통에 위로를 건네진 못할망정, 최소한의 치료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산재보험 보상마저 방해하기 위해 소송을 불사했다"고 비판했다. 또 "무엇보다 재발과 치료로 몸과 마음이 허약해진 상태에서 회사의 통보가 이씨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생각하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고인을 비롯해 여전히 수많은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들이 백혈병, 림프종, 뇌종양 등으로 고통받거나 숨지고 있다"며 "왜 아직도 반복되어야 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또 "제2, 제3의 이가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믿을 희망의 근거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냐"며 서울반도체는 즉각 소송을 취하하고 정부는 유해물질 사용과 노출을 더욱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서울반도체 대표가 찾아왔다. 유족은 "애 아플 때 와서 보라고 할 때는 안 오더니 이제 죽었나 확인하러 왔나"며 소송을 취하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서울반도체 대표는 "내일(10일) 오전 긴급노사협의회를 열어 결정하겠다"며 돌아갔고, 회사는 낮 12시까지 답을 주겠다고 했다. 유족들은 4월 10일 오전 4시 50분 예정이던 발인을 일단 취소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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