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불변' 고수하는 나경원, 일본을 한번 보라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자국이익 좇는 일본, 미일동맹을 변화시키다

등록 2019.04.11 14:29수정 2019.04.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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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다문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당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있다. ⓒ 남소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미국을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미국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미국과 함께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지난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이 발언에서, 그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한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 미국 행정부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더라도, 북한의 반발과 비난이 뒤따를 수 있다"라며 "여기서 문재인 정부가 흔들릴 수 있다, 회담 후 북한과의 대화가 한미간 약속과 충돌해선 안 된다"라며 남북관계로 인해 한미동맹을 변화시키지 말 것을 주문했다.

사실, 그런 충고를 해주지 않더라도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힘들다. 문재인 정부가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북미관계를 중재하는 면에서나 한미동맹을 개선하는 면에서 역량과 의지의 한계를 겉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민족 내부 문제인 남북경협과 관련해서마저 미국을 과도하게 의식한다. 남북관계에서마저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나 원내대표의 걱정은 흔히 말하는 '기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충고를 100% 충실히 따르면 대한민국 국익에 손실이 생기기 쉽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는 것은 몰라도, 그런 것을 금과옥조처럼 지켰다가는 자칫 한일간 격차를 더 벌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사진
 

맥아더 장군과 히로히토 일왕의 기념사진. ⓒ 위키백과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동아시아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진 한 장이 있다. 키 큰 맥아더 장군과, 상대적으로 작은 히로히토 전 일왕(천황)이 나란히 서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일본 패망 1개월 뒤에 찍은 사진으로, 당시의 미일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진에 담긴 역사적 의미에 관해 앤드루 고든(Andrew Gordon) 하버드대 역사학과장은 <현대 일본의 역사>에서 아래와 같이 해설했다. 이 책은 인류학자 출신의 번역가인 김우영에 의해 한글로 번역됐다.
 
"자신의 이미지를 극도로 절제해 상징적으로 사용할 줄 알았던 맥아더는 평범한 일본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했으나, 일본사 아니 세계사에서 주목할 만한 정치적 사진을 대중에게 선사했다.


이 사진은 히로히토의 황거(왕궁)가 아니라 맥아더의 집무실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1945년 9월 27일에 찍은 것으로, 모든 주요 신문에 실렸다. 그것은 일본국과 일본인의 종속적 지위를 전체 국민에게 보여준 충격적인 사진이었다."
 
본문에서 제시한 위 해설에 더해, 앤드루 고든은 사진 밑에 딸린 설명문에 아래 문장을 추가했다.
 
"두 지도자의 신장 차이와 대조적인 복장-히로히토가 예복 차림인 데 비해 맥아더는 편한 군복 차림이다-을 보여주는 이 사진은 패전 사실 및 점령군과 일본의 주종관계를 일본인에게 각인시키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발휘했다."
 
패망 4개월 보름 뒤인 1946년 1월 1일, 일왕은 이른바 '인간선언'을 했다. 자기가 신이 아니라 인간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선언이었다. 그러니까 맥아더와 기념사진을 찍을 당시만 해도, 히로히토는 아직까지는 '신'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그랬다. 그런 '신'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맥아더가 자기의 우월성, 미국의 우월성을 의도적으로 과시했던 것이다. 그랬으니 이 사진이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그 기념사진을 기조로 1945년 이후의 미일관계가 이어져온 게 사실이다. 미국이 지금도 여전히 미일관계·미일동맹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일본은 미국에 순종적이다? 아니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중대한 흐름이 있다. 일본이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이 점점 더 '덜 순종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외형상으로는 미국의 주도권을 인정하면서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미일동맹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다. 기념사진을 '찰칵'했을 때의 미일관계가 지금은 어느덧 '빛 바랜 추억'이 돼 있는 것이다. 이 점을 구체적 사실로 입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다.

미국과 일본은 1951년에 미일안전보장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이 미일상호협력안보조약으로 업그레이드된 1961년에는, 미일동맹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지위가 북대서양조약(나토 창설 조약)에서 유럽 국가들이 차지하는 지위에 어느 정도 근접하게 됐다. 미일관계 내에서 일본의 지위가 현저히 높아졌던 것이다.

이 같은 지위 상승은 그 후로도 꾸준히 계속됐다. 최근에는 일본이 미일관계에서 자주성을 지향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될 정도의 징후들이 '노골적'으로 출현하고 있다. 주일미군에 대한 자위대의 의존도를 줄이고 전략적 자율성을 지향하는 것도 그런 징후 중 하나다. 박영준 국방대 교수가 쓴 '일본 아베 정부의 미일동맹 정책과 지구본 외교'라는 논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은) 통합기동방위력의 구축에 더해 2014년 7월에 각의(내각에서) 결정한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 또한 2015년 9월까지 성립된 11개 안보 법제를 통해 자위대의 전력이 국내외 안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태세를 갖추었다. (중략) 이러한 정책들은 대미 의존에서 벗어나 일본의 안보 능력을 강화함으로써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국내 차원의 노력들로 볼 수 있다." - 국방대학교가 2018년 발행한 <국방연구> 제61권 제3호.
  

육상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 1953년 사진.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또 일본은 국가 이익이 걸린 사안에서는 미일동맹을 과감하게 무시하는 행보도 보인다. 손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 행보를 걸을 때가 있다. 위 논문에 소개된 사례 중 하나는 아래와 같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우크라이나 문제 등으로 인해 대(對)러시아 제재가 취해지던 시기에도 일본 정부는 푸틴 대통령과 수차례 정상회담을 지속하면서, 양국간 남쿠릴열도 반환 문제나 시베리아 자원개발 문제 등 현안을 논의해왔다."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남북경협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일본은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하는 상황에서도 러시아와의 경협을 과감하게 논의했다. 만약 아베 신조 정부가 금강산이나 개성공단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면, 한국 정부처럼 미국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리지 않았을 확률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이 미일관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해석할 만한, 보다 더 결정적인 사례가 있다. 일본이 미국 외교정책의 영향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되레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이 미국에 영향주기도, 국제 관계란 그런 것 아닐까

2017년에 미국은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통해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새로운 국제전략을 공식화했다. 인도양 및 태평양 지역과의 연대를 통해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한다는 이 전략은, 미국의 공식적인 최대 라이벌이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바뀌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의를 띠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을 이런 전략으로 이끈 원동력 중 하나가 일본의 대(對)중국 정책이다. 중국의 급부상과 세계정세 변화 때문에 미국이 이런 전략을 내놓기는 했지만, 일본이 자국의 대(對)중국 전략을 위해 미국을 그 방향으로 유도한 측면도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먼저 발의한 쪽이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2016년 8월 아베 신조 총리가 이 전략을 먼저 천명한 뒤, 미국을 이 방향으로 유도했다. 어차피 미국도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지만, 일본이 미국의 결심을 재촉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주일대사관 국방무관을 지낸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장의 논문 '인도-태평양을 둘러싼 미·일 전략구상과 일본의 방위계획대강 개정 전망'은 이 대목을 이렇게 해석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의 인도·태평양 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발상은 일본에 의해 먼저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 해병대 전략연구소가 2018년 발행한 <전략논단> 제27권.
 
이처럼 일본은 한편으로는 허리를 숙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독자 노선을 모색할 뿐 아니라 미일동맹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의 미일관계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일본이 그렇게 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이 나경원 원내대표의 충고대로 한미동맹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한일간 격차는 더욱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미일동맹은 일본한테 유리하게 바뀌고 있는 데 반해, 한미동맹은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는 선에서 그대로 유지될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다 보면, 한국은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지금처럼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같은 민족 내부 문제에서마저 미국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면, 한미관계가 아니라 한일관계에서 문제가 터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막는 방법은 딱 하나다. 한국도 한미동맹을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다.

한미동맹에 변화를 주지 말라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충고는 한국한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문재인 대통령한테 해줘야 할 충고는 '어떻게든 미국을 설득하고, 어떻게든 한미동맹을 변화시키라'가 더 합당하다.
#한미정상회담 #문재인 #한미동맹 #도널드 트럼프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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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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