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 딱지 붙이자" > "우동사리 어른들아"

[이면N] 전범 스티커 부착 논란, 고등학생 125명에게 물었더니... 찬성 우세

등록 2019.04.12 15:11수정 2019.08.0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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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이면을 봅니다. 그 이면엔 또 다른 뉴스가 있습니다. [이면N]입니다.  [편집자말]
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송림고등학교 앞.

"네? 무슨 딱지를 붙여요? 전범 딱지요??"

하교하던 고3 학생 세 명 모두 이구동성이었다. "그런 얘긴 처음 듣는다"는 거였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분당 일대 고등학생 21명 모두 마찬가지였다. 최근 경기도의회에서 논란이 된 '일본 전범기업 제품 딱지 부착 조례'에 대한 기자의 장황한 설명이 끝나고 나서야 학생들 사이에 옥신각신 찬반 토론이 붙었다.

노아무개 학생(19) "저는 찬성이요. 딱지가 붙어있더라도 그 제품을 아예 없애거나 안 쓰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계속 쓰는 거면 실체는 알고서 써야죠."
황아무개 학생(19) "그래도 굳이 딱지까지 붙여야 돼? 이미 구입한 제품인데 그렇게까지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가뜩이나 지금 일본이랑 관계도 안 좋고. 전 반대요."
정아무개 학생(19) "맞아. 그리고 제품도 일본 게 더 좋잖아."


어른들의 '전범 딱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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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일대 한 고등학교. 최근 논란이 된 '일본 기업 전범 딱지' 조례안에 대한 학생들 의견은 어떨까? ⓒ 김성욱


'日 제품에 전범기업 딱지', 보여주기식 일제 청산 추진 논란(TV조선)
경기도의회, 교내 일본 전범 기업 제품에 스티커 부착 추진(중앙일보)
'日전범기업 제품' 스티커 부착… 경기도의회 조례안 추진 논란(문화일보)

지난 3월 20일 '전범 딱지'에 대한 기사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경기도의회 황대호 도의원이 발의한 '경기도교육청 일본 전범 기업 제품 표시에 관한 조례안'이 입법 예고되면서 논란이 인 것이다.

조례안은 경기도 지역 학교에서 사용중인 카메라, 복사기, 빔프로젝터 등의 비품이 일본 전범 기업 것인 경우 이를 표시하는 딱지를 부착하자는 내용이었다. 조례안이 말하는 '전범 기업'은 니콘, 파나소닉, 도시바, 미쓰비시, 히타치 등 2012년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지원위원회가 발표한 299개 기업으로, 이 가운데 284개가 현재도 존재한다.

황 의원은 3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일본 기업들이 대일항쟁기 당시 전쟁물자 제공 등을 위해 우리 국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노동력을 착취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공식적인 사과나 배상은커녕 역사를 부정하고 미화하고 있다"면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을 위해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곧장 비판이 잇따랐다. <조선일보>의 3월 21일자 사설 '일본 제품엔 '戰犯(전범)', 교가엔 '親日(친일)' 딱지, 이 무슨 시대착오인가', <파이낸셜뉴스>의 3월 20일치 사설 '日 제품에 전범딱지, 통상마찰 생각해 봤나' 등 주로 시대에 맞지 않다거나 외교·통상상의 문제를 지적한 비판론이었다. 바른미래당도 '전범기업 스티커 제작? '국민우롱 의원 스티커'나 잘 붙이고 다녀라'는 논평을 내는 등 논란은 정치권까지 번졌다.

[경기도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찬성 88명 vs 반대 3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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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경기도의회 황대호 도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례에 포함된 '일본 전범 기업 딱지'. 경기도의회 제공. ⓒ 김성욱


학생들 생각은 어떨까? 조례에 적용되는 경기도 고등학생 총 125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지난 3월 22일부터 26일까지 경기도 안성시 안법고등학교 2학년 학생 104명을 대상으로 무기명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9일엔 성남시 분당구 일대 고등학생 21명을 직접 만나봤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한다. 딱지가 도움이 된다"
vs.
"올바른 역사 인식을 핑계로 화풀이만 하고 있다. 감정적 대응은 이제 그만"


어른들의 입씨름이 뜨거웠던 것에 비해 정작 학생들은 이 논란을 잘 몰랐다. 9일 현장에서 만난 21명 중 이 논란을 들어봤다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설문조사에 응한 104명 가운데서도 '이 논란에 대해 들어봤다'고 답한 학생은 39명, '들어보지 않았다'고 답한 학생은 65명이었다.

'전범 딱지' 도입에 대해선 우호적인 여론이 더 많았다. 총 125명 학생 중 조례안 내용에 찬성한 학생은 88명, 반대한 학생은 36명으로 집계됐다(설문지 답변 누락 1명).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송림고등학교 2학년 최아무개 학생은 9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니콘이나 파나소닉 같은 기업이 전범 기업이라는 걸 몰랐는데, 딱지를 붙이면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개인적으로 구매할 때도 그 기업 제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성시 안법고등학교 설문 조사에서 '찬성' 의견을 밝힌 한 2학년 학생은 "국민에게는 알 권리가 있다, 잊힐 권리를 따지려면 모든 사람 국민들이 다 알고 난 후 잊힐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썼다. 또 다른 학생은 "성범죄를 저지른 가수들의 노래를 금지시키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올바른 역사인식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전범 딱지가 시대착오적이라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또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되는 것이냐"고 따져 물은 학생도 있었다.

'전범 딱지가 올바른 역사 인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란 설문지 문항엔 총 73명이 '동의한다', 29명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해 찬성 여론이 더 높았다(답변 누락 2명).

반면 반대 의견을 낸 학생들은 주로 딱지 부착의 실효성이나 외교통상 문제를 주된 근거로 들었다. 송림고 1학년 이아무개 학생은 "괜히 (한일)양국 관계만 나쁘게 할 것 같다, 경제나 외교로 봐서 좋을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송림고 1학년 학생은 "(일본 전범 기업 제품을) 부술 것도 아니고 계속 쓸 거라면 딱지를 붙인다고 해도 달라질 게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법고 설문 조사에서 '반대' 입장을 표시한 학생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굳이 돈을 낭비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딱지 하나 붙인다고 갑자기 역사 인식이 바뀌진 않는다", "우리나라도 일본에 수출하는데 우리나라가 딱지를 붙이면 오히려 우리나라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딱지를 붙이면 더러워진다" 등의 의견을 냈다.

'전범 딱지가 한일간 불필요한 외교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나'란 질문엔 '동의한다' 27명, '동의하지 않는다' 59명이었다(답변 누락 18명).

"돈 낭비 말고 독립운동가 자손 처우 개선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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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일대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 지난 9일, 최근 논란이 된 '일본 기업 전범 딱지' 조례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 김성욱


어른들의 정치적 논란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태원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아무개 학생은 "딱지 하나 갖고 싸우는 게 웃기다, 이런다고 뭐가 되는 걸 본 적이 없다"면서 "그 시간에 차라리 역사 교육을 어떻게 더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할지 생각하는 게 좋겠다"라고 꼬집었다.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목소리들이 줄을 이었다.

"돈 낭비 하지 말고 파지 줍고 살고 계시는 독립운동가 자손 분들께 이득이 될 만한 법을 만들어주세요."
"이런 거 말고 학습적으로 만들어, 우동사리('뇌 대신 우동사리가 들었냐'는 뜻으로 쓰이는 은어)들아."
"정치적인 싸움으로 번지지 말고 옳은 일을 하세요 제발."
"이런 거 할 시간에 사회복지에나 더 신경 쓰세요."
"이것보단 미세먼지나 해결해라."
"친일파나 처리해라."


'전범 딱지' 논란이 커지자 지난 3월 28일 황 의원은 해당 조례안 심의를 자진 보류했다. 입법 예고된 지 일주일여만이었다.

오마이뉴스 독립편집국 제보문자 010-739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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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안법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설문 내용. ⓒ 김성욱

 
덧붙이는 글 설문조사에 응해주신 경기도 안성시 안법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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