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사망 (1953~2020)

헌법재판소, 형법 내 낙태 처벌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정"

등록 2019.04.11 14:49수정 2019.04.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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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위헌여부 선고를 위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유남석 소장과 재판관들이 입장해 있다. ⓒ 공동취재사진


[기사 보강: 11일 오후 4시 35분] 

헌법재판소(소장 유남석)가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 2012년 합헌 결정 후 7년 만에 이러한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낙태죄 폐지를 위한 입법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헌재는 11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진행된 헌법소원심판에서 헌법재판관 4(헌법불합치) 대 3대(단순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이 같이 결정했다. 

유남석 헌재소장은 "형법 제 269조 1항, 270조 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며 위 조항들은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는 결정을 선고한다"고 낭독했다. 법 개정 전까지는 기존 낙태죄가 그대로 적용되지만, 2020년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조항은 자연스레 효력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이날 결정은 낙태 수술을 진행해 재판에 넘겨진 산부인과 의사 정아무개씨가 2016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며 시작됐다. 정씨는 낙태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296조 1항(자기낙태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과 낙태 수술을 진행한 의사 등을 처벌하는 형법 270조 1항(의사낙태죄, 2년 이하의 징역)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4(위헌) 대 4(합헌) 의견으로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낙태죄는 1953년 형법에 들어간 후 지금껏 그 형태를 유지해왔다. 

이날 기자석을 제외한 대심판정 104석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지켜보러 온 이들로 가득 찼다. 지난 9일부터 진행된 온라인 방청권 배부는 일찌감치 마감됐고, 많은 이들이 이날 오후 1시부터 헌법재판소에서 앞에서 배부된 잔여 방청권을 받기 위해 장사진을 이뤘다. 일부는 전날 밤부터 줄을 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심판정 안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 일부에서 서로를 부둥켜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헌법불합치 4인] "태아의 생명, 여성의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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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11일 오후 낙태죄 위헌여부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정해 있다. 유 소장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 공동취재사진

 
이날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린 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재판관은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하여 전인적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서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라며 "즉 ▲ 여성이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상황 및 그 변경가능 여부를 파악하며 ▲ 국가의 임신·출산·육아 지원정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 주변의 상담과 조언을 얻어 숙고한 끝에 만약 낙태하겠다고 결정한 경우,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검사를 거쳐 실제로 수술을 완료하기까지 필요한 기간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산부인과와 학계에 의하면 현 시점에서 최선의 의료기술과 의료 인력이 뒷받침될 경우 태아는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기산해 22주 내외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라며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임신한 여성의 안위는 태아의 안위와 깊은 관계가 있고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임신한 여성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라며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낙태갈등 상황에서 형벌의 위하(위협)가 임신한 여성의 임신종결 여부 결정이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정과 실제로 형사처벌되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는 현실에 비춰보면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갈등 상황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실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의사낙태죄와 관련해선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인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것 자체가 모든 경우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라며 "단순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 입법자는 늦어도 2020년 12월 31일까지는 개선 입법을 이행해야 하고, 그때까지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위 조항들은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라고 덧붙였다. 

[단순위헌 3인]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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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위헌 의견을 낸 이은애 헌법재판관 ⓒ 공동취재사진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린 재판관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들은 "(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 대해 헌법불합치 의견과 견해를 같이 한다"라면서도 "다만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른바 '임신 제1삼분기(대략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위헌 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헌법불합치 의견과 견해를 달리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고 그 경우도 악의적 동기에 비롯된 것이 상당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판대상 조항들이 예방하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형벌조항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라며 "이들 조항이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세 재판관은 "임산한 여성에게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다만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를 법률로써 규정하는 방식은(모자보건법 14조) 그 요건을 충족하는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가 불가피한 사람'의 지위를 부여해 법적 책임을 면제할 뿐 임신한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하지도 보장하지도 않는다"라며 "이는 사실상 그의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태아가 덜 발달하고 안전한 낙태 수술이 가능하며 여성이 낙태 여부를 숙고하여 결정하기에 필요한 기간인 임신 제1삼분기에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해 그가 자신의 존엄성과 자율성에 터 잡아 형성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숙고한 뒤 낙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이때 임신한 여성이 스스로 낙태의 의미, 과정, 결과 및 그 위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에 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써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덜 제한하면서도 그와 동등 또는 그 이상의 공익을 달성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합헌 2인] "태아-출생한 사람 사이, 근본적 차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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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헌 의견을 낸 조용호 헌법재판관 ⓒ 공동취재사진

 
나머지 조용호, 이종석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고유한 가치를 가지며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라며 "태아와 출생한 사람은 생명의 연속적인 발달과정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성 정도나 생명 보호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태아와 출생한 사람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어 "태아가 모체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낙태할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는 없다,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를 금지할 수 있다"라며 "자기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방지하여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자보건법은 다섯 가지의 정당화 사유가 있는 경우 의사와 임신한 여성을 처벌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자기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 등을 중대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라며 "이처럼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제한의 정도가 자기낙태죄 조항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하여 결코 크다고 볼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의사낙태죄와 관련해서도 "그 법정형의 상한이 2년 이하의 징역으로 돼 있어 법정형의 상한 자체가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작량감경(법관의 재량으로 행해지는 형의 감경)이나 법률상 감경을 하지 않아도 선고유예 또는 집행유예 선고의 길이 열려 있으므로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라며 "낙태는 대부분 낙태에 관한 지식이 있는 의료업무 종사자를 통해 이뤄지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시술을 한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 또한 크다"라고 덧붙였다.  
#낙태 #낙태죄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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