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즉각 사망', 현장 압도한 재판관 3인의 발언

[해설] 헌재, 2020년까지 시한부 유지 결정...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임신14주까진 단순위헌"

등록 2019.04.11 19:04수정 2019.04.1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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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위헌여부 선고를 위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유남석 소장과 재판관들이 입장해 있다. ⓒ 공동취재사진


11일 오후 2시 45분,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이 낭독을 시작했다.

"주문. 형법 제269조 1항, 제270조 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곧이어 서기석 재판관의 '헌법불합치' 결정 의견 요지 설명이 끝나자 이은애 재판관이 입을 뗐다.

그들이 더 나아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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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태 헌법재판관이 11일 오후 낙태죄 위헌여부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정해 있다. ⓒ 공동취재사진


"... 다만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른바 '임신 제1삼분기(임신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점,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하여 단순위헌결정을 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헌법불합치 의견과 견해를 달리한다."

이 재판관이 말한 '우리'는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 세 사람이다.

이날 재판관 9명은 4(헌법불합치) 대 3(단순위헌) 대 2(합헌)로 나뉘었다. 7명의 재판관은 모든 임신중절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에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낙태죄의 목적 자체는 정당하지만 현행법이 모든 낙태를 일률적으로, 또 전면적으로 금지한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선고 즉시 이 조항의 효력이 사라지는 '단순위헌' 정족수 6명은 채워지지 않아 낙태죄는 2020년까지 수명이 늘어났다.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여성이 임신 유지·출산 여부를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 '결정가능기간'과 이 기간 중 일정시기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를 확인할지 여부 등을 국회가 고민해 법으로 정하라며 '헌법불합치'란 결론을 내렸다.

1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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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애 헌법재판관이 11일 오후 낙태죄 위헌여부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정해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큰 틀에선 헌법불합치 결정과 비슷한 견해였다. 하지만 이들은 "더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11일 오후 2시 53분 이은애 재판관은 낙태죄의 효력을 즉시 없애야 한다는 단순위헌의견 요지를 읽어 내려갔다.

세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 기한과 사유를 제한하는 것 자체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라고 봤다. 다만 태아의 생명은 물론 여성의 생명과 신체를 위해서도 적절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그 기준으로 ▲ 태아가 덜 발달하고 ▲ 안전한 낙태 수술이 가능하며 ▲ 여성이 낙태 여부를 숙고하여 결정할 수 있는 '임신 제1삼분기'를 제시했다.

왜 임신 14주까지일까. 세 재판관들은 임신 9주 이내엔 약물 낙태도 가능하고, 임신 12~13주에는 수술방법이 비교적 간단해 합병증이나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게 나타난다고 했다.

또 국제산부인과학회(FIGO)에 따르면, 본인의 의사에 맞춰 임신 제1삼분기에 적절히 임신중절하는 것은 만삭분만보다도 안전하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안전한 낙태'를 위해서도 임신 제1삼분기라는 시기 제한을 두고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돌봄, 교육·상담 등이 제공돼야 한다고 했다.

"법적 공백? 위헌성이 명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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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헌법재판관이 11일 오후 낙태죄 위헌여부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정해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리고 세 재판관은 '지금 당장' 이 시기의 임신중절에 어떠한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낙태죄가 헤어진 연인·남편의 복수 수단 등으로 악용된 사례가 많으며 형사처벌이 이뤄진 경우가 미미한 만큼 형벌조항의 기능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불합치 의견이 우려한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은 발생하기 어렵다고 본 근거다. 세 재판관들은 또 법을 새로 만들기 전까지 일단 낙태죄 기소를 가능하도록 한 것은 제도의 공백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가혹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은애 재판관은 "적어도 임신 제1삼분기에 이뤄진 낙태를 처벌하는 부분은 그 위헌성이 명확하다"며 "처벌 범위가 불확실하다고 볼 수 없고, 처벌 여부에 입법자의 입법재량이 인정될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심판대상조항들에 대하여 이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여야 한다."

이 말을 끝으로 이 재판관은 단순위헌 의견 요지 낭독을 마쳤다.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세 재판관의 주장은 8분 동안 헌재 대심판정을 채웠다.
#낙태 #낙태죄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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