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 대 추정' 대천농협 돈 선거 의혹, 내부고발자만 구속

보령경찰서 "증거 없어 수사 안 했다" vs. 보령농민회 "엉터리 수사"

등록 2019.04.12 18:43수정 2019.04.1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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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경찰서 누리집 ⓒ 보령경찰서 화면 갈무리


충남 보령의 대천농협 임원(상임이사, 비상임이사) 선거 과정에서 수억원의 금품이 오간 사실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가 결국 구속됐다. 하지만 금품 살포 의혹이 일었던 나머지 후보들은 경찰 수사조차 하지 않아 '봐주기' 의혹이 일고 있다(관련기사: [단독] "농협 비상임 이사 선거 때 수천만 원 뿌렸다").   

12일 충남 보령의 대천농협 임원 선거에서 유권자인 대의원들에게 돈을 뿌린 혐의로 A씨가 구속됐다. 대전지방법원은 이날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보령경찰서는 대천농협 임원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A씨를 농협협동조합법 위반 혐의(선거기부행위)로 구속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 유권자인 대의원 4명을 A씨로 돈을 받은 혐의를 적용, 과태료 처분을 요청했다.

낙선한 A씨 "나도 돈 썼고, 당선된 모든 이사가 돈으로 이사직 샀다" 양심고백

A씨는 지난 1월 말 개최된 대천농협 비상임이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A씨는 선거 다음 날인 지난 2월 1일, 대천농협 선거관리위원회에 양심 고백과 함께 임원선거에 출마했던 나머지 후보들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A씨는 이 글에서 "이번에 당선된 모든 이사는 대의원에게 (이사직을) 돈으로 샀다"며 "모든 후보가 대의원(약 140명)에게 30만~35만 원씩 다 줬고 저도 30만 원씩을 110명에게 줬다"고 밝혔다.

대천농협 임원 선거에는 11명(상임이사 후보 2명, 비상임 이사 9명)이 후보로 나섰다. 당선자는 7명이다. A씨 주장대로라면 최소 30만 원을 씩을 계산해도 대의원 1인당 약 300만 원의 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선거 때 오간 돈의 총액은 4억여 원으로 추산된다.


A씨는 자신이 돈을 건넨 대의원 110명 명단을 함께 제시했다. 그는 또 "임원선거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데도 (유권자인) 대의원을 모아놓고 술, 밥 사고 특정 후보는 떨어트려야 한다고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자리에 OOO 후보가 참석해 인사를 하기도 했다"며 "노골적인 부정선거"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가 잘못을 반성하고 총대를 매겠다"며 "돈으로 당선된 모든 이사에게 사표를 받아 재선거를 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후 A씨는 "홧김에 폭로했다"며 민원을 철회했다. 이같은 신고는 업무방해에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는데도 대천농협 선관위는 '없었던 일'로만 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회유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전농충남지부 소속 보령농민회(회장 이정학)가 경찰 수사를 촉구하고 보령농민회도 대천농협에 재선거를 요구했다. 결국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당선된 비상임이사 7명이 모두 사임했다.
 

전농보령농민회(회장 이정학)는 15일 오후 2시 농협중앙회 보령시지부 앞에서 '대천농협 임원선거 규탄 보령농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심규상


 "왜 A씨만 수사했나?" 받은 상품권 제출했는데도 수사 안해

경찰수사는 이사 선거에 나섰던 후보들이 각각 몇 명에게 돈을 뿌렸는지, 유권자인 대의원(약 140명)들은 임원 선거과정에서 각각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받았는지를 밝히는 데 집중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찰 수사는 '용두사미'라는 지적이다. 보령경찰서 관계자는 "비상임이사에 출마한 11명 중 A씨에 대해서만 수사했고 나머지 후보에 대한 수사는 안했다"고 밝혔다. 애초 내부고발을 한 A씨만을 수사하고, 나머지 후보들은 조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보령경찰서는 그 이유에 대해 "A씨는 본인이 돈을 건넸다고 직접 밝혀 수사했지만, 나머지 후보들은 증거가 없어 수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A씨가 돈을 줬다는 110명의 대의원은 조사했지만 대부분 돈을 받은 일이 없다고 했고, 이중 4명 만이 A씨가 준 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A씨가 돈을 건넸다는 당초 주장을 바꿔 '돈을 준 일이 없다'고 부인해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돈 선거는 물론 술, 밥을 샀다는 부정선거 사례까지 적시한 '내부 고발'을 했는데도 A씨가 진술을 바꿨다는 이유로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은 처음부터 수사 범위를 한정해 나머지 후보들에 대해 봐주기 한 엉터리 수사를 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전농보령농민회(회장 이정학)는 15일 오후 2시 농협중앙회 보령시지부 앞에서 '대천농협 임원선거 규탄 보령농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심규상


보령경찰서는 또 A씨가 "내가 직접 OOO 후보로부터 고가의 선물과 상품권을 받았다"며 대천농협선거관리위원회에 해당 물품을 증거로 제시했지만, 이 또한 'A씨가 진술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조사하지 않았다.

보령농민회 관계자는 "모 대의원의 경우 후보들로부터 받은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갔다 왔다고 한다"며 "여러 후보가 돈을 건넨 정황이 분명한데도 '증거가 없다'며 수사하지 않은 것은 봐주기 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의원들이 돈을 안 받았다고 부인하면 추가 조사를 통해 사실 여부를 밝히는 게 수사의 기본"이라며 "대의원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를 마무리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재수사를 요구했다.

보령농민회는 재수사를 위한 추가 고발 여부를 검토 중이다.
#보령경찰서 #대천농협 #돈 선거 #구속 #보령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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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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