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도 설경구도 아닌 이 사람의 위로

[애도하는 법] 영화 <생일> 통해 경험한 나의 애도

등록 2019.04.16 11:57수정 2019.04.1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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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애도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어떤 위로를 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 했던 기억이 한번쯤 있을 텐데요. 기획 '애도하는 법'을 통해 나의 애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편집자말]
5년 전 그 날. 나는 거실을 비추는 따사로운 햇빛을 바라보며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타다 놓고 아이가 돌아오기 전 서둘러 일을 마칠 요량으로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 버튼을 클릭했다. 그 순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진 한 장이 나를 맞이했다.

커다란 배가 반쯤 기울어진 채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모습. 그 배 안에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타고 있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앉아 있는 공간은 이토록 평화롭고 따스하건만, 같은 시각 인터넷이 전하는 뉴스 속 세상은 너무나 처참했다.

난 그냥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 처참한 세상은 나의 세상이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에 집중했다.

애써 외면했던 5년 전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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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그 날 밤. 나는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자꾸만 그 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저 몇 초 바라본 그 장면은 잠시 잠든 사이 꿈에서 재현됐다. 그 뒤로 며칠을 더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했으며, 어쩌다 잠이 들면 그 배 속에서 허우적거리곤 했다.

몸으로 느껴지는 불안과 무기력, 그리고 꿈속의 영상들은 끊임없이 내게 이 일이 나와 관련된 일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의식은 계속해서 이런 신호들을 무시했다. 소식을 듣는 것이 두려워 한동안 뉴스를 아예 보지 않고 지냈다.

얼마 후, 같은 심리상담센터에 근무하는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유가족과 생존자를 위한 긴급심리지원에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이미 위기상황에 함께 할 상담전문가들을 모집한다는 메일을 여러 차례 받았었지만, 제목만 보고 그냥 메일을 삭제해버린 터였다.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이 선생님의 제안도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난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일상을 살아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지난 3월 극장에서 영화 <생일>의 예고편을 처음 보았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도 그 날의 일을 담은 영화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이 영화를 왠지 꼭 봐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5주기를 며칠 앞둔 지난 토요일 아침 나는 홀로 극장에 갔다.

애도를 겪어내는 다양한 방법

영화는 너무나 담담하고 현실적으로 유가족들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은 슬픔의 다섯 단계(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를 제각각 겪어내고 있었다. 먼저 정일(설경구)은 철저하게 부정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아들 수호(윤찬영)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 아버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감정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 순남(전도연)은 분노와 절망을 오가고 있었다. 불쑥불쑥 화를 내고 짜증을 내다가도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고, 그러다가 감정에 북받쳐 오열하는 일을 반복하며 슬픔을 겪는 중이었다.

동생과 친구들, 그리고 다른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상실을 좀 더 수용한 모습이었다. 사랑했던 친구 수호가 그토록 원했던 여행을 대신하기도 하고, 때론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슬픔을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에게도 슬픔과 눈물은 불쑥불쑥 찾아왔다.

정말 그랬다. 애도의 다섯 단계는 심리학자들이 구분지어 준 것이긴 하지만, 그 단계를 거치는 방식은 모두가 다르다. 어떤 이는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부정에, 어떤 이는 분노에, 어떤 이는 타협이나 절망에 오래도록 머무른다. 또, 어떤 이는 보다 빨리 수용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수용까지 다 겪은 후에도 상황에 따라 다시 분노가 일기도 하고, 절망스런 감정이 불쑥 찾아와 슬픔이 밀려오곤 한다. 영화는 이런 애도의 다양한 모습들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순남의 옆집에 사는 우찬엄마는 순남이 충분히 슬픔을 표현할 수 있게 곁에 머물러 준다. ⓒ NEW

   
그리고 위로 하는 법   

다양한 애도의 모습을 보며 나는 눈가가 촉촉해지긴 했지만 잘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한밤중 갑작스레 밀어닥친 슬픔에 순남이 오열하는 그 장면에서 나는 도저히 눈물을 삼킬 수 없었다.

순남의 울음소리를 들은 옆 집 우찬엄마(김수진)가 순남에게 달려와 아무 말 없이 순남을 꼭 안아줄 때,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며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노력하는 남편 정일과 달리, 함께 울어주는 우찬 엄마의 모습은 마치 내게도 울어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듯했다. 그때 터진 눈물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슬픔을 터부시 해왔다. 어릴 적부터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주신대'라는 노래를 듣고 자란 우리들은 슬픔을 표현하며 우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또한, 우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 슬픔을 지켜보는 것 역시 매우 힘들어한다.

때문에 상실에 빠져있는 누군가를 보면 그 사람이 빨리 용기를 내 슬픔을 딛고 일어서기를 바라며 기분 전환을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는 상실을 경험한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슬픔을 바라보기 힘든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될 뿐이다.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저 충분히 자신의 슬픔에 머무르게 해주는 것이다. 그 단계가 죽음을 인정하기 싫은 부정의 상태든, 떠난 이와 남겨진 자신에 대한 분노의 시기든, 현실과 타협하며 이겨내려 애쓰는 시기든, 절망과 우울에 빠져있는 상태든, 그대로 지켜봐주고 곁에 함께 해주는 것만이 슬픔을 건전하게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죽음과 상실의 과정을 연구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는 <상실 수업>에서 상실 후 겪는 슬픔의 모든 과정들은 나름대로 타당한 심리적 적응 과정이기 때문에 충분히 머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면에서 순남의 슬픔을 그대로 지켜봐주고 타당화 해주는 우찬엄마와 시누이의 태도는 무척 큰 위로였다. 이들 덕분에 순남은 자신의 슬픔에 충분히 머무를 수 있었고 용기를 내 수호의 생일잔치에 참석한다. 그리고 함께 한 자리에서 순남은 슬픔을 수용하며,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아들 수호를 사랑했던 이들과 추억들을 공유하면서 순남과 정일은 아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냈을 것이다. 상실 후 사랑했던 이와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작업은 경험에 의미를 더해주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중요한 방법이다. 영화에서 수호의 생일잔치는 이런 면에서 꼭 필요한 치유의 과정이었다.
 

영화<생일>의 한 장면, 순남과 정일은 수호의 생일 잔치에서 수호와 함께 한 시간들의 의미를 발견한다. ⓒ NEW

  
잃어버린 믿음에 대한 애도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켜졌다. 너무 울어 얼굴은 퉁퉁 붓고 두통까지 밀려왔지만, 어딘지 마음은 조금 개운해진 듯 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애도작업을 했던 것 같다.

5년 전, 침몰하는 배 사진은 내게 세상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안전하고, 적어도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곳'이라는 신뢰가 그 날 무너져 내렸다.

아이를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삶의 근간에 대한 상실이기에 내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또한, 나보다 더 큰 상실을 겪은 사람의 슬픔을 지켜보는 게 너무나 두렵고 힘들었다. 때문에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외면하며 회피해왔던 것 같다.

5년이 지나고 드디어 펑펑 울었다. 그리고 나니 그 날의 기록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고, 세월호와 관련된 특집 뉴스들을 찾아봤다. 여전히 분노가 이는 일들도 있지만, 이 슬픔에 함께 머물러 주는 사람들이 많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영화 속 생일잔치를 열어준 이웃들처럼 슬픔을 터부시하지 않고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느껴졌다.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유가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그 날 이 나라에 대한 신뢰, 세상의 안전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을 것이다. 아직 그 상실을 애도하지 못했다면 이제 더 이상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 슬픔은 결코 터부시 되어서는 안 된다.

슬픔을 표현하고 충분히 울고 나서야 우리는 그 날의 기억을 제대로 만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 슬퍼하고 있다면, 섣불리 멈추게 하지 말고, 그저 함께 머물러 주자. 김승섭 교수가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 적었듯, 아픔을 딛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쏟아지는 비를 함께 맞는 것'이 먼저일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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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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