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던 곳도 안산, 치유되어야 할 곳도 안산"

[인터뷰] 세월호 참사가 건네 준 이야기, 안산희망교회 김은호 목사가 본 희망

등록 2019.04.18 15:50수정 2019.04.1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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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유족들과 연대하기 위해 많은 시민이 광화문을 찾았다.

하지만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묵묵히 안산에서 마을 주민과 함께 세월호를 기억하며 지역공동체 안에서 세월호 사건이 안겨준 아픔을 보듬으려고 노력하는 목회자가 있었다. 그가 광화문으로 향하지 않았던 이유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안산희망교회의 김은호 목사. 왜 김 목사는 광화문으로 가지 않았을까. 왜 김 목사는 지역에서 세월호의 아픔을 끌어안았을까. 세월호 5주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5주기를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지역행사를 준비 중인 김 목사를 찾았다.

젊은 날 사회에서 확인했던 기독교의 위치
 

희망교회 김은호 목사 지난 4월7일 세월호 5주기 추모예배 가운데 예배 안내를 하고 있는 안산희망교회 김은호 목사 ⓒ 416안산시민연대 이재홍 팀장

 
-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김은호이고요,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이고 안산희망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제 살아온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예장 통합교단에서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자라다가 고등학교 시절 종교적인 체험을 통해 목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신학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접하면서 예수를 새롭게 알게 되었고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학 졸업 후 시민단체 활동도 하고 서강대 종교학과 대학원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있다가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구나. 나는 도구고, 그릇이며,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야 하는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목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 후에 어느 대학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제가 자란 교단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이 아닌 민중교회 목회를 할 수 있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입학했습니다. 


그러다 졸업 1년 전부터 3년간 생명 선교연대 간사를 하다가 그 후에 희망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목회 경험이 별로 없어서 맨땅에 헤딩하며 현재 12년째 목회 중입니다."

지역 주민들도 아팠다

- 목사님께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5년간 함께해오셨는데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오셨는지 소개해 주세요.
"저는 솔직히 초기부터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지는 않았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날 세월호 참사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교인들과 논의하던 중에 지역 활동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단원고에서 기도회 인도를 부탁하는 전화였죠. 이후 단원고에서 촛불 기도회를 인도했었습니다. 지역에 시민대책위가 꾸려지면서 촛불 기도회를넘길 때까지요. 그 후엔 동네로 돌아갔습니다. 

교회 근처 와리공원 안에 '와리마루'라는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그곳에서 지역주민들과 노란 리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세월호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 했거든요.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직후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하게 된 것이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드는 것이었죠. 그렇게 와리마루에서 보낸 시간은 지역주민들이 받았던 상처와 아픔들이 치유되고 관계를 쌓게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역에 두 개의 단체가 생겼습니다. 하나는 '세월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이고 또 하나는 '치유와 공동체 성장을 위한 네트워크'였습니다. 전자는 진상규명 중심의 투쟁 단체고, 후자는 가족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단체였습니다. 그 중 '치유와 공동체 성장을 위한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의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다들 함께하고 싶어 했어요.

이 현상을 보고 '세월호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지역 주민들도 세월호로 인해 상처받고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지역주민들도 2차 피해자들인데 주민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저는 시민사회운동과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운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비폭력 평화 물결의 김석봉 목사님을 초청해 '회복적 정의 시민사회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마을 주민을 위한 '이웃 대화모임'을 만든 것인데요. 한국 비폭력 대화센터의 캐서린 한 대표님이 직접 와서 20여 명의 주민과 함께 애도서클을 만들었습니다. 주민들이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거든요.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네에도 이 프로그램을 추천해서 진행했습니다. 그러다가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던 분들이 우리가 계속해서 올 수 없으니 진행자양성과정을 만들자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안산 주민이 직접 안산주민을 돌보고 치유할 수 있도록. 

그때 경기도 사회복지모금회에서 2천만 원을 지원해주셨습니다. 그걸로 진행자양성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돌봄과 성장 이웃 대화모임을 만들고 반월중학교에서 3년간 프로그램도 진행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와리마루 세월호 노란리본을 만들기 시작했던 와리공원내 위치한 와리마루 ⓒ 권이민수


초창기엔 유가족보단 지역주민과 함께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육우당추모기도회'에 순서를 맡아서 갔다가 우연히 동혁이네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동혁이 아버님이 저보고 '목사님이셨냐?'고 물으시더군요. 동혁이 아버님은 제가 안산시청 세월호수습지원단 공무원인 줄 알았던 겁니다. 그만큼 전 가족과 친밀하기보단 세월호 참사 관련 마을사업에 더 애를 썼습니다. 

2015년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에는 와리마루에서 '416을 기억하는 주민 한마당'을 개최했습니다. 그 당시 대략 300여 명의 동네 주민이 참석했습니다. 올해 4번째 '416을 기억하는 주민 한마당'이 열립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분향소 예배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매월 셋째 주 예배를 희망교회에서 주관했습니다. 그 후에 이런저런 마을 사업을 하면서 유가족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을갈등 해결을 위한 이웃 대화모임 진행자 양성과정도 운영하고 있어요. 여기에 유가족분들이 들어와 계십니다. 그분들께서 해준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한 분은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치료해주고 싶다'고 하셨고, 또 한 분은 '416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악마고 괴물인 줄 알았는데 강의를 들으며 그 사람들도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시더군요. 또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엔 '416가족과 함께하는 마을 공동식탁'도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와서 음식 준비도 하고 세월호 가족들과 주민을 초대해 함께 식사도 하고 교제도 나누는 시간입니다. 

매월 첫째 주 주일날 5시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드리는 416가족과 함께하는 예배'도 희망교회에서 주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에서 주기 때마다 '416 기억 마을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세월호 가족이 주민에게 보내는 편지와 소식들을 모아 편집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3번째 신문이 배포될 예정입니다."

아팠던 곳도 안산이었고 치유되어야 할 곳도 안산이다

- 세월호와 안산주민들 그리고 희망교회가 함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데 초창기 1년과 지금까지를 돌아봤을때 아쉬운 지점이 있을까요?
"많죠.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세월호 초창기 상황이 광화문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안산은 관심 밖이었죠. 관심이 조금 더 배분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세월호는 정부와의 진상규명 싸움이 맞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다른 세상이어야 한다고 할 때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단위는 '지역공동체'입니다. 진상규명 이후에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세월호 가족들이 새로운 삶을 만들어갈 곳은 여기 안산입니다. 초창기 다들 광화문으로만 달려가고 지역이 비어 있다 보니 지역 주민들은 점점 지쳐갔던 것 같아요. 좀 더 면밀하고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문재인 정부가 곧 2년차가 됩니다. 목사님은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번에 생명안전공원 부지 확정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세월호 가족들은 이전보다 더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생각 때문입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으니깐 다 된 거 아니냐'고들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루어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부지만 확정되었지 공사도, 예산도 확정된 것이 없습니다. 정부가 물론 세월호 가족들의 요청을 100% 다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태도와 자세가 중요한 거 같아요. 

우리가 사람을 만났을 때 '저 사람이 내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으면 신뢰감이 생기잖아요. 문 대통령이 이런 신뢰를 가족분들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도 당연히 이해해요. 어떻게 대통령이라고 다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도 우리가 촛불혁명을 일으켰고, 그 혁명이 만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이니만큼 우리의 아픈 이야기들, 요구들을 수용하고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전부 수용할 수 없더라도 공감하고 마음을 이해하는 신뢰 정도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을 꺾지 않는 것입니다. 진실을 향한 여정 가운데 계속해서 희망을 심어주고 그들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면 문 대통령이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역시 세월호 참사 아닐까요?"

- 세월호 유가족과 이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416을 기억하는 안산 그리스도인 모임'을 준비할까 합니다. 다만 모임을 고민하다 보니 여타 다른 모임과 똑같은 것처럼 느껴져 주저하고 있습니다. 모임이 좀 여타 모임과 달랐으면 좋겠고, 대표 세우고, 집행위 준비하고, 회원 모임을 하는 이런 구조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방식의 모임이나 조직이 되어서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다른 지역사회를 만들고 공동체를 이루는 모임을 되면 좋겠습니다. 또 이 모임의 공간이 따로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와서 쉬어가기도 하고 주민과 소통하기도 하는 공간이요. 이에 대한 준비와 고민 중입니다. 

그 외에도 안산의 선부 3동과 와동, 여기서 140명 정도 희생되었는데 이 희생당한 아이들이 가장 많이 놀러 다닌 곳이 와동공원입니다. 그래서 와동공원 안에 있는 와리마루를 별이 된 아이들을 기억하는 거점 공간으로 만들려고 준비 중입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거나 생각나면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 세월호를 생각할 때 목사님께서는 한국 교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오늘 아침 안산제일교회 권사라고 주장하는 분에게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목사가 그런 일을 하느냐'며 뭐라 하시다가 끊으시더군요. 그 외에도 언론에서 무수하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부분 '안산 기독교의 입장이 뭐냐?'를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안산 기독교연합회 회원도 아니고 안산 기독교의 입장을 모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저에게 교회라는 울타리는 없습니다. 

제 이야기는 단순히 교회를 향하거나 교회 입장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사회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죠. 그래서 한국교회에 딱히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교회에 오는 사람만이 교인이 아닙니다. 마을의 주민들이 다 교인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교인이 많아지고 건물이 커지고 재정이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위치한 마을 공동체가 성장하는 것이 교회가 더불어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월호를 두고 했던 말들이 무엇이었던가 기억하시길

저는 교회에 바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세월호 참사 후 놀랐던 일을 꺼내 보려 합니다. 세월호 이후 많은 신학자와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병폐와 적폐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심포지엄도 열고 무수한 책도 출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 다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뭐라고 하셨었죠?'라고. 제가 과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에 요청을 했었습니다. '4.16 주간을 NCCK에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이게 회의 안건으로 올라오자 4.3주간도 없는데 4.16주간은 너무 섣부르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게 이해가 안 됩니다.
 

세월호 5주기 추모예배 지난 4월7일 세월호 5주기 추모예배 때 희생당한 아이들의 이름 앞에 조화가 놓여졌다. ⓒ 416안산시민연대 이재홍 팀장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했었는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희생자 수'나 '사고의 규모' 같은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기본적인 철학적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세월호 참사 한 달 전에 안산에서 <탐욕의 제국>이라는 영화 공동상영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삼성 반도체 희생자들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이 나라 가 언젠간 무너지겠구나' '큰 사고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4월 10일 날 장애인 한 분이 장애등급제로 인해 활동 보조 지원을 못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국민연금공단 앞에서 시위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4월 13일, 이분이 사는 집에 불이 났습니다. 활동 보조인이 있었다면 살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큰 화를 당하셨고 17일 끝내 돌아가셨습니다.

<탐욕의 제국>, 4월 10일, 4월 16일, 4월 17일 이 모든 게 서로 무관한가요? 아닙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세월호를 자꾸만 하나의 사건으로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메시지와 철학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는 사회 전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독교인터넷신문 <에큐메니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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