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몸엔 관심없음, 그저 즐긴다"는 10대 남자아이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낙태죄 폐지 후 달라져야 할 남자, 여자 그리고 사회

등록 2019.04.20 11:47수정 2019.04.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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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미디어나 생활 속에서 궁금한 성이야기를 성교육 강사 심에스더씨에게 묻고 답하는 연재입니다.[편집자말]
4월 11일 아침. SNS에서 이런 영상을 봤다. 낙태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 짧게 정리하면 이랬다.

여성1 : 48년생. 딸일 줄 알고 낙태해야 했던 그 시절 이야기.
여성2 : 생리 후 절대 임신이 안 되는 일주인 정도의 기간, 안심하고 남편하고 성관계를 했지만 임신을 했고 낙태를 했던 이야기. "아니 대체 학교에서는 뭘 가르친 거야. 그 엉터리 지식을 철석같이 믿었던 거야?" 
여성3 : 생리불순이 심각했을 때, 임신. 그래서 임신인 줄도 몰랐다. 이미 아이가 커서 유도 분만으로 낙태한 경우.  
여성4 : 친구들이 갑자기 "야, 30만원 있냐?" 하면 거의 대부분 낙태와 관련한 일. 


낙태를 경험한 이유와 배경, 그 위험에 대한 증언이었다. 4명의 인터뷰이 가운데 가장 보기 힘들었던 것은 여러 번 낙태를 했던 이의 말이었다. 소파수술(자궁의 내막을 기계로 긁어내는 수술)로 자신의 몸이 얼마나 아프고 망가지는지 경험한 이 여성은 다시는 그걸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낙태를 해야 했을 때 다른 방법을 택했다. 남자친구가 찾아준, '인허가를 받은 병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더러운 병원에서 만난 할아버지 의사가 준 알약을 먹었다. 이 낙태법은 소파술이랑 달리, 호르몬 치료라 출산을 한 것 같은 몸 상태가 된다고 말하는 그. 낙태 후 '가슴이 처지고 젖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다시 그 산부인과는 가고 싶지 않아 도서관에서 책 보고 젖을 짜냈다'라고 말했다.

엄청난 출혈로 무서웠지만,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이들은 임신의 문제에서 왜 여성만 책임져야 하는지 물었다. 슬픈 이야기였다. 10분 52초의 동영상에서 다 담지 못한 '수술 날 혼자 조용히 해결해야 했던' 또 다른 그들의 이야기가 생각나 더 슬펐다.
 

4월 11일 저녁. 이날 오후 내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무력화 시켰던 '낙태죄'에 대한 사망 선고가 난 역사적인 날. 아이에게 어떻게 이 뉴스를 잘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때, 나랑 대화하던 6학년 딸이 갑자기 조용하다. 뭐 하나 봤더니 역시나 핸드폰으로 뭘 보고 있다.

"뭐 봐?"
"응, 뉴스."
"(이게 웬 떡이야? 반가워서) 아, 그래? 오늘 굉장한 뉴스가 있긴 하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으응? 아... 아 물론 그것도 뉴스였지. 근데, 더 중요한 뉴스가 하나 있었어."
"뭔데."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났어. 그것도 66년만에!"
"응? 그런데 엄마... 낙태는 하면 안 되는 거잖아. 태아의 생명이 더 중요한 거 아니야?"
"물론 그런 의견도 있어. 실제로 특히 종교계에서는 태아의 생명을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엄마 생각은 좀 달라."
"어떤데?"
"여자와 남자가 성관계를 해야 임신이 되는 건데, 낙태의 죄를 여성에게만 묻는 것은 잘못인 것 같아."
"응? 정말이야? 그건 차별이네. 남녀차별! 그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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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을 앞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법 유지'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 심쌤, 아이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낙태죄'가 폐지된다고 했을 때 아이 입에서 내 몸보다 '태아의 생명이 더 중요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와서 좀 놀랐어요. 당황했고요.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해요. 사람은 어른이든 아이든 자신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존재에 대해 '측은지심'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아이들의 마음이 우리 어른들보다 더 따뜻한 게 아닌지... 이런 마음은 지금처럼 생산성과 경쟁이 중요한 세상에선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거 같아요! 또 사람에 따라 타고나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의지적으로 길러줘야 할 능력이기도 하죠.

그런데 어떤 감정은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만들어진 제도와 교육에 의해 그냥 따라가게 되는 감정들도 있는 거 같아요.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이 진짜 내가 느끼는 감정인지 아닌지 거기에 동의하는지 안 하는지와 관계 없이요.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느껴야 할 거 같은 이런 감정을 '제도적 감정'이라고 하는데요. '낙태'에 대한 우리의 감정도 바로 이런 '제도적 감정'이 아닐까 해요.

사회가 '태아=내 몸보다 소중한 생명', '낙태=내 몸보다 소중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낙태에 대해 다른 생각이나 감정을 갖기 어려울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 낙태를 누가 하는지, 왜 하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고 다른 시각, 다른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면 어땠을까요?

만약 '내 몸'이 모두의 몸이 아니라, 임신 당사자인 '여성'의 몸이라는 걸 아이들이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애초에 '낙태'라는 말을 '임신중단'이라는 말로 들었다면? 아마 그랬다면 우리도 아이들도 낙태에 대한 생각과 반응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글에서 편견이 강한 '낙태'라는 말 대신 '임신중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할까 합니다."

- 임신중단이란 말에 그런 의미도 있네요. 심쌤 아이들은 어떤 반응이었어요? 큰애가 3학년이라고 했죠?
"놀라운 이야길 들었죠."

- 기대되네요. 어떤 말이었을지.
"4월 11일 아침, 저도 모르게 '으~~~떨려!'라고 했더니 등교 준비를 하던 큰아이가 '뭐가 떨려?'라고 묻더라구요. '낙태죄 폐지가 결정되는 날'이라고 했더니 오히려 나도 낙태가 뭔지 안다고 그러는 거예요."

- 뭐라고 하던가요?
"'뱃 속의 아기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 헉! 정말 놀라셨겠어요.
"제가 MSG 넣은 말이 아니고 정확히 저 워딩이었어요. 그래서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냐고 물었더니, 책에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 책에서요?
"으레 그렇듯 낙태에 대해 일방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한 책을 본 거 같았어요."

- 이런 이야길 들으면 특히 성에 관한 책은 더 나은 관점을 가진 책으로, 가려 읽게 할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사회 전반에 흐르는 낙태에 대한 생각이 그래 왔으니 아이들이 접하는 자료들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중교등학교 시절 보건교육 시간이면 꼭 낙태 비디오를 보여줬는데 기억하세요? 뱃속 아이를 조각조각 내는 아주 자극적인 영상이었잖아요. 그런 자료들로만 낙태를 접했던 어른들, 그리고 영향을 받은 지금의 아이들 역시 낙태는 '태아를 죽이는 끔찍한 것'이라고 느끼기 쉽지요."

-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임신과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특히 남학생 반응에 놀라셨다고요.
"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워크숍이었는데, 준비된 종이에 익명으로 '임신과 낙태'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나 질문을 자유롭게 적어서 함께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었어요. 익명이라 그런지 솔직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죠. '임신도 무섭지만 낙태는 더 무서워요', '무조건 임신 안 하는 방법 없나요?', '낙태는 살인 아닌가요?', '안전한 낙태 방법 가르쳐 주세요', '피임에 대해 가르쳐 주지도 않음', '임신 낙태보다 우리 엄마가 더 무서워요. 걸리면 죽음ㅋ' 등등요. 그런데 그 중 한 종이에 적혀 있는 말이 아주 인상적이더라고요."

-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요?
"'여자들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없음, 우린 그저 즐길 뿐'이라고 써 있었어요."

- 아... 동공지진이 일어나네요.
"솔직히 저도 저 문장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 나이 또래 아이들 특유의 허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다만 어떤 면에서 우리가 가진 인식을 꽤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쪽지에 적힌 '우리'(아마도 '남성'이겠죠?)는 임신 가능성에 대한 모든 결과와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고, 자신들은 '섹스'만 똑 떼어 즐기겠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어딘가 좀 익숙한 말 아닌가요?

'낙태죄'에도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없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임신중단'이 법으로 금지되었을 때 일부 남성들은 '법'에 기대어 여성의 아픔과 위험을 모른 척하고, 몰래 '임신중단'을 선택한 여성들에게는 또 '법'을 이용해 비난해 왔지요.

하지만 '임신중단'이 가능해진 이제 더 이상 여성에게만 임신의 책임을 미룰 수 없어요. 좋은 것도, 힘든 일도 함께 누리고 도우며 나아가야 해요. '임신중단'의 가장 큰 의미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건강한 '재생산권' 보장이지만, 동시에 권리를 얻은 만큼 '임신중단'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의무도 함께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에요.

'임신중단'이 가능하다고 쉽게 임신중단 수술을 결정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것은 몸과 마음 모두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래요. 실제 통계를 봐도 '임신중단'이 합법화된 나라들의 임신중단율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하지만 공동책임자인 남성들은 여성의 몸과 마음에 관심이 없거나 외면해 왔지요. 혹은 통제와 간섭을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여성들을 억압했고요.

이제는 변해야 해요.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고 피임하고 여성의 몸과 마음을 존중하고 생명에 대해 남여가 함께 고민해야 해요. 즉, 함께 예방하고 함께 안전하고 건강한 '임신중단'을 고민하고, 함께 출산과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해요.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인 도움은 필수고요. 그러니까 이제라도 '관심없음'이 아니라 '관심있음'으로 바뀌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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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오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 '낙태죄'가 여성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꼭 들어야 할 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죠? 저는 앞서 심쌤이 큰아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계속 궁금해지는데요. 어땠나요?
"제 아이의 이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가 지각을 하든 말든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잠깐 아이와의 대화 형식을 빌려 말해 볼게요.

"네가 책에서 본 게 낙태의 전부는 아니야. 대부분은 뱃속에서 다 자란 아기를 그렇게 조각조각 내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하는데?"
"아기가 처음부터 큰 상태로 뱃속에 짠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거든. 아주 작은 세포가 점점 변화하면서 태아의 모양을 가지게 돼. 그래서 처음 몇 주 동안은 작은 세포 모양에 가까워. 그때 여러 방법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거지."
"근데 그래도 생명을 없애는 거 아니야?"

"응, 맞아. 그렇게 볼 수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잖아."
"어떤 이유?"
"여성은 임신을 원하지 않았는데 같이 섹스를 한 남성이 콘돔을 안 썼을 때라든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아이를 키울 수 없다거나, 또 피임을 철저히 했는데도 임신이 됐다든가, 성폭력으로 임신이 되었다든가 또..."
"아, 나도 하나 알아, 아기 키우는 건 너무 힘든데 (도움을 못 받고) 혼자 해야 되는거."
"오, 그렇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엄마가 힘들어 보였어?"
"아니? 나도 동생 돌봐야 돼서 진짜 엄청 스트레스 받거든."
"아하하하... 그래, 맞아. 아기를 낳는 일도 키우는 일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무조건 낳으라는 말을 쉽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근데 이럴 때 임신한 사람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막 아기를 낳으라고 해봐. 너라면 낳을 수 있겠어?"

"아니이? 난 애초에 임신 안 할 건데?"
"그치? 그 사람들도 너랑 같은 마음이었을지 몰라. 그런데 임신이 되었다면 마음이 어땠을까? 게다가 당사자의 마음과 상황도 모르면서 무조건 임신을 중단하면 법을 어기는 거고, 죄라고 한다면?"
"음... 근데, 왜 죄라고 하면 안 돼?"
"오, 좋은 질문인데? 사실 인간에게는 자기 몸과 삶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거든. 이건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아주아주 기본적인 권리야."

"나도 있어?"
"너도 있지! 예를 들어 나중에 너가 커서 결혼을 할지 말지, 아기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도 이런 권리를 사용하는 거야. 물론 책임도 져야하지. 마찬가지로 너가 임신을 했을 때도 스스로 생각해서 낳을 것인지 임신을 중단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임신중단은 무조건 죄!'라고 정해 놓으면 우리가 사람으로서 우리 삶을 꾸려 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기는 거야. 그건 법이 강제로 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돼. 물론 신중하게."

"근데 태아의 생명도 소중한 건 맞자나."
"맞지!! 당연하지. 임신중단이 죄가 아니라고 해서 태아가 소중하지 않다는 뜻은 아냐. 그건 다른 문제야. 반대로 임신중단을 죄라고 정한다고 해서 태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고 볼 수도 없고. 임신중단이 죄냐 아니냐는 오히려 여성은 임신을 하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출산 도구로 보느냐 아니면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


짧게 정리한 게 이 정도였어요."

- 6학년 아이와 3학년 아이가 생각하는 게 비슷하다는 게 신기하네요. 그런데 이렇게만 들어도 지각했을 것 같은 각인데요?
"아이와의 대화가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중요한 이야기가 더 남았어요. 그건 다음 대화에서 이어 나가 볼게요. 이상 심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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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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