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오라잍112화

"결혼도 안 했는데... 나 죽으면 누가 기억해줄까?"

[애도하는 법] 우리가 기억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이유

등록 2019.04.21 19:56수정 2019.04.2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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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애도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어떤 위로를 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 했던 기억이 한번쯤 있을 텐데요. 기획 '애도하는 법'을 통해 나의 애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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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추모의 중요한 의미는 기억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오래도록 기억하는 일, 아니면 기억하게 하는 일. ⓒ pixabay

 
지난 설 전날에 친구가 죽었다. 그 며칠 전 친구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의식이 없는데 예후까지 좋지 않다는 소식에 친구들이 중환자실 앞에 모였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차례차례 면회했다. 인공호흡기와 여러 기계를 단 친구의 손은 따뜻했다. 혹시나 해서 손을 꼬집었지만, 반응은 없었다. 모니터의 그래프와 숫자만 친구가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사투를 벌이던 친구는 가족과 친구들 곁을 떠났다. 명절 연휴여서 영안실이 썰렁할까 봐 많은 친구가 자리를 지켰다. 잔뜩 가라앉은 자리라 대화도 없이 술잔만 채웠고. 그러다 생각난 얼굴들이 있었다.


"아, A도 이맘때 죽었는데."
"맞아. 그러고 보니 B는 벌써 10년이 넘었어."
 

그제야 우리 곁을 떠난 친구들이 더 있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병으로 혹은 사고로 먼저 간 친구들. 그때도 산 친구들은 영안실에서 죽은 친구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고, 죽은 친구의 가족들에게는 잊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한동안은 기일마다 친구를 찾아가기도 했고 그랬던 것 같다.

애도, 그리고 추모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일까? 살다 보니 애도의 마음이 옅어졌고, 먼저 떠난 친구들을 싹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죽으면 언젠가는 잊히겠구나,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삶이라는 게 쉽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교과서에 실릴 만한 사람이면 모를까.

발인 후에 죽은 친구 어머니가 한 말씀이 귀에 박혔다.

"결혼도 안 했는데 내가 죽으면 누가 아들을 기억해 줄까."

우리가 기억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도는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고, 추모는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 정도는 누구나 머리로 잘 알고 있지만, 죽음이 특별한 경험으로 닥친다면 아마 가슴으로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령 부모나 가족 혹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기억 저장소가 가진 장점 혹은 단점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면 그 슬픔과 기억이 옅어지거나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애도와 추모의 중요한 의미는 기억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오래도록 기억하는 일, 아니면 기억하게 하는 일.

지난 3월 초 광주에 볼일이 있어 다녀왔다. 일정을 마치고 '국립 5.18 민주묘지'에 들렀고 그 근처 망월동 묘역에도 갔다. 망월동 묘역. 5월 광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지명이지만 지금은 '광주 시립묘지 제3 묘역'으로 불린다. 그곳은 5.18 희생자들이 '국립 5.18 민주묘지'로 이장하기 전에 묻혔던 곳이기도 했고, 이한열 열사 등 80년대와 1990년대에 희생당한 민주열사들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거기에 내가 아는 사람도 묻혔다.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대학 동기였던 그 형은 1989년 어느 바닷가에서 의문사했다. 오랜만에 가본 형의 무덤엔 오래전처럼 유리 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후배들이나 참배객들이 쓴 편지나 선물이 들어 있었다. "형, 저 ○○예요. 너무 오랜만에 와서 미안해요", "열사님의 정신 이어받겠습니다. 18학번 ○○○"라고 적힌 쪽지가 얼핏 보였다.

뭐가 두려운 걸까

죽은 지 30년이 된 형을 아직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이 찾아온다는 건 형 이야기가 누군가로부터 전해져 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한열 열사 묘역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많았다. 영화 < 1987 >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이 열사를 기억하고 열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망월동 묘역을 생각하니 진정한 애도와 추모의 마음은 기억하는 걸 넘어서 후세에 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존재했다는 걸 알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고 어떻게 행동했다고 전하는 것도 필요하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부정하는 노인들이 뉴스에 자주 나온다. 그들은 법적으로 책임진 오래전 일을 왜 다시 꺼내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광주를 향해 비정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보니 문득 광화문광장이 떠올랐다. 나는 5년 전 4월 광화문에 있었다. 광화문광장에 있었다는 게 아니고 근처 건물에서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어쩌면 광장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출근할 때, 점심 먹을 때, 퇴근할 때 광장을 지났으니까.

광장에는 부모들이 있었다. 수학여행 떠난 아이를 세월호 참사로 잃은 아비와 어미들. 그들을 향해 "산 사람은 좀 살자!" "지겹지도 않냐!"라고 손가락질하고, 곡기를 끊은 어느 아빠 앞에서 짜장면과 피자를 먹는 참담함도 직접 봤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일이었을까? 세상의 그 어떤 지우개로도 지울 수 없는 일인데.

5년 전 진도 앞바다와 광화문광장 그리고 39년 전 광주를 희화화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세월호 5주기를 앞두고는 "그만 좀 우려 먹어라", "징하게 해쳐 먹는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다른 이의 생명을 향해 글로 옮기기도 끔찍한 말을 내뱉는, 생명의 귀함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다. 

그들에게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읽은 건 내 오해일까? 어쩌면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 가시를 세우는 걸지도 모른다. 그들이 묻어 버리고 가라앉힌 일들이 드러날까 두렵고, 숨긴 그 일들을 기억하고 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두려운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애도와 추모는 누군가에게 두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기도 두렵고 드러나서 전해지는 건 더더욱 두려운 진실. 기억하고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다는 건 그만큼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도 쏟아져 나오는 진실, 시간이 지나도 계속되는 애도와 추모가 그들에게는 두려움일 수밖에.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
 

감성빈 '심연, 군상 2019' 현대사의 아픔과 기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 감성빈


최근 그림 그리는 조각가 감성빈의 전시회 '낙타'에 다녀왔다.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그림과 조각에 담은 전시회다. 한 그림이 눈을 사로잡았다. 군중들이 모여 뭔가를 슬프게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의 어떤 기억을 형상화한 것일까? 작가는 마산 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모티브로 했다고 했지만, 다른 기억으로 치환해서 해석할 수 있다고도 했다. 난 5년 전 바다가 생각났다.
 
"어긋난 삶은 우리에게 무게를 던져 주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마치 낙타의 혹과 같은 그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지요."

감성빈 작가의 말에서 나는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를 생각했다.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과 그 죽음을 기억하고 전하려는 의지는 어쩌면 우리가 쉽게 내려놓지 말고 계속 지고 가야 할 무게 아닐까 싶다.

아픈 현대사를 기억하고 전하는 사람들에게서 낙타의 모습을 발견했다. 무게에 짓눌려 모래에 파묻혀 있기보다는 뜨거운 사막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다른 사람들이 그 무거운 혹을 대신 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걸어간다면 그 무게를 잘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애도 #추모 #5.18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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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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