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빈곤 13만명' 오명 벗은 영국... 한국도 가능할까

16일 '여성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 정책을 위한 토론회' 열려... 생리대 무상 지급 논의

등록 2019.04.16 16:34수정 2019.04.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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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만 7천 명. 생리대가 없어 학교에 가지 못했던 영국 여학생들의 숫자(2017년 기준)다. 10명 중 한 명의 학생은 생리대를 살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는 의미다. 이른바 '생리 빈곤'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생리용품 업체의 조사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영국 젊은 여성 중 약 25%는 생리대를 살 여력이 없어 휴지를 대신 사용하거나, 속옷을 겹쳐 입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오는 9월부터 무의미해진다. 지난 3월 13일, 영국 정부가 '생리 빈곤'(period poverty)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월부터 중등학교와 대학교의 여학생들에게 생리대 등 관련 용품을 무상지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영국 전역에서 '생리 빈곤'을 없애야 한다는 시위가 일어난 것에 대한 정부의 응답이다.
 

16일 시의회 의원회관 제2대회의실에서 '여성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 정책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 강연주

 

영국의 '통 큰 결정'은 16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제2대회의실에서 열린 '여성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 정책을 위한 토론회'에서 킴 굴드(Kim Gould) 주한영국대사관 정치 서기관이 언급한 사례다.

킴 서기관은 "여학생들의 자체적인 캠페인을 통해 생리빈곤 문제가 사회문제화 될 수 있었다"며 "스코틀랜드를 시작으로 영국 정부도 무상생리대 조치를 발표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 청소년들이 월경과 관련해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도 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생리 빈곤'은 어느 정도일까.

안전한 생리대는 평등하지 않다
  
"2016년 깔창생리대 사연이 소개된 이후 생리대를 선별적 복지 물품이 아닌 공공재로서 국가가 지원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논의된 바가 없다. 실질적인 지원과 정책 수립을 위해 논의와 행동이 절실한 상황이다."

토론회를 주관한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 비례대표)의 말이다. 지난 2016년,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생리대 대신 신발 깔창을 사용했다는 저소득층 소녀의 사연에 따라 한국에서도 생리대 문제가 대두된 바 있다.

이후 한국에서도 정부 차원에서의 대책이 이뤄졌다. 올해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의 생리대 구입비 부담을 덜어주고자 올해 초부터 '생리대 바우처(이용권)'제도를 도입했다. 현물로 주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선호제품을 직접 선택해 구입할 수 있도록 이용권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원 금액은 월 1만 500원으로, 연간 최대 12만 6000원이 지원된다.


하지만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저소득층 중심의 복지는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발언자였던 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도 "생리대에 대한 선별적 복지는 당사자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줄 수 있다"며 "생리대를 구매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소득 기준을 두어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낙인과 다름없다"고 언급했다.

한국의 생리대 시장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생리대 시장 점유율 1위인 유한킴벌리의 경우 2010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신제품과 리뉴얼제품을 출시하면서 102차례에 걸쳐 제품 가격을 평균 8.4%, 최대 77.9% 인상한 것으로 밝혀졌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 같은 기간 동안 국내 생리대(18개)의 평균 가격 상승률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두 배에 이른다. 2010년 7월 대비 2017년 7월 전체 소비자물가는 13.2% 올랐지만, 생리대값은 26.3% 상승했다.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한국에서는 안전하게 월경하려면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며 "고가의 한국 생리대 시장 아래서 생리대 구입이 부담스러운 것은 10대나 기초생활수급자, 한 부모 가정만은 아니다. 월경의 공공성을 보다 확대하는 월경·생리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생리대,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로
 

16일 시의회 의원회관 제2대회의실에서 '여성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 정책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 강연주

 

이러한 지적에 따라 한국의 생리대 지원 정책도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복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2018년에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저소득층에 한정하지 않는 공공 생리대 정책이 시작됐다. 같은 해 10월부터는 서울시가 11개 공공기관 내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 비치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올해부터 200개 공공기관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또한 강남구 초중고등학교 23곳에 '생리대 자판기'가 첫 도입된다. 이외에도 서울시 내 자치구에서도 비상용 생리대 비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전국 최초로 '지역 내 모든 여성 청소년'에게 무상 생리대를 지급하는 곳도 있다. 경기도 여주시의회다. 해당 조례를 대표 발의한 최종미 더불어민주당 여주시의원은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은 선별적, 차별적 정책에 노출되는 점을 꺼려하고 있다"며 "여성청소년이라면 누구라도 보편적 복지를 누리게 함으로써 조그만 행복을 차별 없이 누리게 하자는 것이 목표"라며 조례 통과의 의의를 밝혔다.

오현주 정의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은 "서울시 재정자립도는 2019년 기준 78.4%다. 여주시의 세 배가 넘는다"라며 "이런 상태서 서울시가 생리대를 전면적으로 지급하는 보편복지정책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생리는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신체적 현상이다"라며 "따라서 이제 선별적 복지를 넘어 보편적 복지로, 비상시기를 대비하는 것을 넘어 일상적인 삶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생리대 보편복지를 논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 도중, 생리대 무상공급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도 제기됐다. '공공재인 전기와 수도도 비용을 지불하는데, 왜 생리대를 무상공급 해야 하냐'는 물음이었다.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전기와 수도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생리대는 그런 방식의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생리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건강'과 '존엄성'에 대한 영역이다. 그렇기에 복지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날 토론회를 마친 킴 굴드 서기관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국내에서 시행되는 생리대 관련 복지 정책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논의가 더 확장돼야 한다. 정책을 주기적으로 평가하면서 단계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생리대 보편적 복지 논의와 관련해 "이는 여성의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 문제다. 생리적인 현상으로 학교에 갈 수 없는 것은 이를 침해하는 일"이라며 "생리대 복지 제도의 도입과 함께 학생들에게도 교육을 통해 이 제도가 왜 도입돼야 하는지 인지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 #생리대 #복지 #인권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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