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죽을 때 난 웃고 남들이 울어야 해, 그렇게 살아"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 문학평론가 겸 크리에이터 이어령 인터뷰 ②

등록 2019.04.21 19:53수정 2019.05.1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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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종로문화를 수호해야한다고 역설하는 이어령 선생 ⓒ 종로문화재단


(이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이어령 선생은 평창동을 아우르는 종로의 역사적 상징성을 설명하며, 문화적 정체성의 뿌리와 본질에 대한 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로문화를 이야기하려면, 서울 전체를 알아야 해요. 서울에 중심이 있으면, 동서남북이 있을 거 아니에요. 동서남북을 표시하는 게 바로 문이잖아요. 유교의 오덕(五德)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방위에 맞추고 4대문의 이름을 지었는데 동쪽문은 인(仁)을 일으키는 문이라 하여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문은 의(義)를 돈독히 하는 문이라 하여 돈의문(敦義門), 남쪽문은 예(禮)를 숭상하는 문이라 하여 숭례문(崇禮門), 그리고 북쪽문이 지(智)를 기른다고 해서 흥지문(弘智門) 이에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다 모였는데 신(信)이 빠졌잖아요. 그게 보신각(普信閣) 이야. 보신각이 있어야 다섯 대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한 가운데 딱 신(信)이 있는 거잖아. 4대문의 중심에는 문을 못 세우니까 네 문으로 들어와서 모여지는 중심이 배꼽이죠, 그 중심이 종각인 거예요. 그래서 종로가 중심 중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통상 거리를 잴 때 종각에 있던 원표를 기준으로 재거든요. 흔히 종로를 정치1번지라고 하지만 잘못 붙인 거예요. 한국문화 1번지라고 해야 맞지요. 정치와 나라의 체제는 바뀌어도 문화는 이곳에 지속적으로 쌓여왔으니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한 왕조가 오백년 이상 유지된 건 세계적으로도 드물어요. 수도가 계속 여기에 있었고, 그 중심지로 종로가 있잖아요.

사람들이 왜 시위를 할 때 광화문에 모이겠어요? 거기가 바로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옴파로스(Omphalos)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정치·경제·사회와 다른 문화적 유산으로서 온 국민이 소유하고 있는 게 바로 이 '종로문화'에요.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한테는 고향이 두 개야. 태어난 고향이 하나 있고, 전 국민들이 지렛대를 삼아서 온 역사문화로서 기억하는 고향이 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종로문화는 국민들이 다 같이 나누고 소중히 가꿔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는 우리가 태어난 생물학적 고향에 대한 회귀본능과 그리움만큼이나, 잊고 있던 정신적 고향을 돌아보고,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서울 사는 사람은 두 종류의 모순을 갖고 살아요.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이 있는가 하면, '서울민국'이라는 부정적인식도 있어요. 물론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는 지방 분권이 필요하지만, 문화는 안 그렇다는 거지. 지금 아테네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아테네는 아테네잖아. 우리가 로마라고 하면, 이탈리아의 수도가 아니라 옛날 로마의 문화적 수도로서 기억하듯이 말이에요. 문화적 가치는 영구불멸해요. 그래서 종로문화를 이야기할 때는 하나의 행정구역으로만 바라보면 안 되는 거예요. 지역성과 더불어 총체적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메타문화, 즉 문화의 문화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종로문화'라는 말이 붙었을 때는 모든 담론이 달라져야 해요."

그는 또한 종로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고, 흩어져 있는 예인들에 대한 파악과 교류를 위해 '문화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내가 문화부장관 시절에 문화지도를 제작하려다가 말았는데 사실 그걸 전국적으로 만들려고 했었어요. 지하자원 분포도 같은 건 있는데 문화지도는 없어요. 여기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정리를 하다보면, 어디에 밀집되어 있는가도 다 보이잖아. 고인이 된 분이나 현재 활동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고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개개인이 노력해서 만든 것들을 잘 이어주는 끈이 필요하다고 봐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
 

창조적 비전을 제시해온 이어령 선생 ⓒ 종로문화재단

 
올 1월, 한 매체를 통해 갑작스럽게 전해진 이어령 선생의 암 투병 소식에 대중들은 함께 안타까워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보다 한 발짝 먼저 내다보고, 늘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었던 참어른의 부재를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던 까닭이었다. 강연과 글을 통해 많은 어록을 남긴 그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꼭 기억하고 실천했으면 하는 가르침이 무엇인가 물었다.

라틴어로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셀레브TV에서도 언급해 화제가 된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라는 말과 궤를 같이 하는 이야기였다. 이 한 문장은 단순한 클릭만으로 끝나지 않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자기 앞의 생을 내다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인생 대선배가 전하는 이야기 속에는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삶의 진리가 담겨 있었다.  

"허망한 이야기야.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가 죽는 거 누가 몰라?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봐도 다 아는 이야기야. 왜 당연한 소리를 했는데 영상 조회 수가 50만 건을 넘겼겠어.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이야기하니까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거지.

새 생명이 태어나면 축하한다고 하지만, 걔 어떻게 될 거야? 또 하나의 죽음이 생긴 거잖아. 사실 울어야지. 사람들은 박수치고 좋다고 웃고 그러는데 애는 울면서 태어나잖아. 애가 똑똑하다니까. 태어날 때 나는 울고, 남들은 다 웃었어. 탄생을 환영해준 거야. 죽을 때 '이만큼 잘 살았으니 됐다' 하고 나는 웃고, 주변 사람들이 다 슬퍼해. 이게 인간 최대의 가치야. 그게 바로 메멘토 모리에요.

그런데 그게 반대로 된 세상이니 큰일이라는 이야기지. 사람들이 죽음을 잊고, 젊음을 잊어버린 시대 속에 살잖아. 요즘은 나는 웃고 태어나는데 남들은 왜 태어났냐고 그래서 저 출산이야. 내가 웃고 태어날 때 남들이 울고, 내가 슬퍼하면서 죽어갈 때 남들이 잘 죽었다고 박수치면 최악이라는 거야. 인생 복잡하게 살지 말아요.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예요."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또렷한 어조로 이어간 이야기 속에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화두가 담겨져 있었다. 결코 가볍게 소비되거나 잊힐 수 없는 그의 말과 글은 유효기간 없는 가르침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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