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남북정상회담 지켜본 성주 소성리와 김천 주민들의 마음을 아시나요?

사드 배치 2년, 경북 김천에서 보내는 편지

등록 2019.04.17 10:26수정 2019.04.1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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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산하가 봄이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은 아직 수줍은데 벚꽃은 가지마다 꽃,꽃,꽃이다. 봄을 시샘한다는 꽃샘바람은 어쩌면 꽃 빛을 더 짙고 선명하게 하려는 자연의 법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가져본다. 꽃샘바람이 다소 억울할 법하다.

실로 오랜만에 온 나라 8천만 겨레가 봄을 노래하고 평화를 노래하던 지난해 봄, 4월. 그때는 꽃 빛 따라 눈을 쫓기보다는 TV에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남북 정상회담 소식에 온몸의 세포들을 열어두었다.

'평화' 70년 대결을 끝내고 분단의 선을 넘어 남북 8천만 겨레가 자유롭게 오고가는 평화. 그 평화만이 성주 소성리 임시 사드기지에 똬리 튼 사드 발사대와 사드 레이더를 제 나라 미국으로 돌려보낼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기에 온몸과 온 마음으로 바람을 안고 4월을 보냈었다.

2017년 탄핵 당한 정부가 북핵을 핑계로, 그리고 사드 배치의 법적·절차적 정당성을 말하던 정부가 또다시 같은 이유로 발사대 4기마저 배치해 버렸다. 

그럼에도 2018년 4월과 여름은 희망이었다. 남북정상회담과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순간들에 온 겨레의 몸과 마음이 몰입된 4월은 우리에게도 희망이었다. 하지만 끝끝내 또다시 이곳 성주 소성리에는 미군들을 위한 편의시설 공사를 강행하겠다며 우리나라 경찰의 비호 하에 공사 차량들이 들어왔고 마을 앞길과 진밭교 위에서 목숨을 건 주민들을 철저히 조롱하고 짓밟았다. 
 

2017년 9월 7일 문재인 정부의 사드 추가 배치 당시 성주 소성리 상황 ⓒ 소성리 종합상황실

 
남북정상회담으로 온 겨레가 다시 평화를 희망하며 터질 듯한 기쁨으로 춤추는데, 일본의 오키나와 주민들처럼 성주 소성리와 김천의 우리는 대한민국의 제 2국민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안고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존을 요구하고 민주를 요구하고 평화를 요구하는 모든 투쟁 현장이 늘 그래왔듯이, 우리들의 평화의 몸짓에 돌아온 것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공무집행 방해죄 등등. 몇백만 원에 이르는 벌금과 징역 1년 6개월 등의 구형이었다.

온통 불법 덩어리 사드를 막아선 정당한 행위를 몇천 명의 경찰이 폭력으로 몰아내는 과정에서 오로지 물리적 힘은 경찰의 일방적 행위였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온몸으로 당했던 우리들은, 범법자로 법정에 세워졌다.

소성리에서 우리들이 마주한 유일한 헌법은 이것이었다. 이 겹겹으로 가해진 폭력은 도무지 형언할 길이 없다. 


밤 12시 자정을 기해 비가 쏟아지는 마을 앞길에서 8천이 넘는 경찰에 의해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맨 몸뚱어리 위로 가해지던 폭력적 진압은 아침 햇살 아래에서도 한 치의 부끄럼 없이 이어졌다. 그러한 폭력도 모자라서일까? 주민들과 지킴들 앞으로 고소고발장을 날려 그 폭력의 끝을 탈탈 털어내는 경찰들은 과연 그날의 현장에서 지켜본 대로 미군을 지키는 경찰이지 우리나라 국민의 편은 도무지 아니다.

폭력의 기억은 온몸에 스며들어 아직 그대로이다. 지난 삼일절을 기해 법적인 사면이 일부 있었지만 벌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고, 아직 재판이 진행되는 이도 있다. 그리고 처벌받은 이들의 마음의 짐을 나누어 가지지 못하는 미안함과 속상함으로 하루에도 열두 번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이들이 그 자리 그 시간에 그대로인 채 살고 있다. 
 

사드 배치 반대 소성리 평화행동 ⓒ 참여연대

 
전쟁꾼 미국의 헛기침 한번에도 비틀거리는 남북관계. 북핵과 미사일 시험이 멈춘지도 1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미국의 패권에 흔들리는 북미 관계. 그렇게 꽃피려던 평화가 숨 멈춘 틈에 성주 소성리 사드 임시기지는 세 겹 네 겹의 가시철조망을 두른 채 미군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다시 4월, 국방부는 공사를 예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미군을 지키는 한국군 편의시설을 위한 공사라고 한다. 

어림없는 짓을 또다시 하려거든 법적·절차적 합법성을 갖추라는 것. 북한이 민족 공멸을 초래할 것을 뻔히 알고서도 남한 땅 어딘가로 핵·미사일을 날리고 그 핵미사일을 요행히도 사드가 막는다고 한다면, 그렇게 백 보 만 보 양보하더라도 외국으로부터 무기를 들여오고 우리 땅을 내어주는 데에 따른 법적인 절차를 따르라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 명시된 대로만 하라는 것이다. 이 땅 소성리도 대한민국 땅 아닌가 말이다! 

되돌릴 수 없는 평화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힘들지만 진정성 깊은 그 걸음에 우리 성주 소성리, 김천 그리고 원불교가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멀리에서라도 나란히 함께 가리라 내미는 손을 이번에는 꼭 잡아주기를 바란다. 1936년의 윤동주 시인의 마음으로 내미는 우리들의 손을, 꼭 함께 잡고 가기를 소망한다.

저쪽으로 황토 실은 이 땅 봄바람이 
호인의 물레바퀴처럼 돌아 지나고 
아롱진 4월 태양의 손길이 
벽을 등진 설운 가슴마다 올올이 만진다.
지도 째기 놀음에 늬 땅인 줄 모르는 
애 둘이 한 뼘 손가락이 짧음을 한(恨) 함이여 
아서라! 가뜩이나 엷은 평화가 
깨어질까 근심스럽다.

- 양지쪽, 1936, 윤동주
 

사드 반대 평화활동 후원주점 '소성리에 평화의 봄을' ⓒ 참여연대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종희는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드 #THAAD #성주 #소성리 #주한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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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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