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오르다 슬쩍... 등산객은 왜 감자밭의 적이 됐나

강원 양양 치마폭포를 찾을 때면 생각나는 그 시절

등록 2019.04.19 16:26수정 2019.04.1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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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폭포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 있는 치마폭포는 1977년에 이름이 지금처럼 붙여졌다. 예전엔 발폭포라 했다. ⓒ 정덕수

 
강원 양양 오색마을은 양양군의 8경 가운데 몇 곳이나 품고 있을까. 오래전 속초가 속한 도천면 떼고, 구룡령 너머는 홍천이 가져가고도 여전히 엄청난 면적을 자랑하는 양양군이다. 설악산과 점봉산을 거쳐 오대산 부근까지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크게 틀어 양양의 산과 골짜기를 빚어놓았다.

그러함에도 오색마을은 여전히 양양 8경 가운데 3개의 절경을 자랑한다. 제2경 대청봉과 제3경 오색령(한계령), 그리고 제4경 주전골까지 모두 오색리가 차지했으니 오색사람이라면 제1경을 내주고도 충분히 자랑스러울 일이다. 제1경을 양양 남대천이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양양군의 군청과 관공서가 밀집된 양양읍의 자존심이 있으니 그냥 인정할 수밖에.

오색마을엔 사실 뭉뚱그려 주전골, 대청봉으로 2경이니 4경이라고 하면 섭섭한 비경들이 곳곳에 자리했다. 폭포만으로 이름을 불러도 한참을 주워섬겨야 하고, 기암과 절경은 바위 하나씩 이름을 붙여줘도 끝이 없다.

괜찮다, 산벚꽃이 있으니

벚꽃이 절정을 이룬 오색마을을 기대하고 찾았다가 하루 이틀 상간으로 못 보게 되더라도 섭섭해 할 일 없다. 산벚꽃은 보통 2~3일 늦게 피기에 산벚이 그려낸 산수화를 마음에 들여앉히면 될 일이다. 산벚꽃은 이번 주말인 19일부터 절정이라고 한다.
    

산벚꽃묘목을 길러 심은 벚나무와 달리 자연 상태에서의 산벚은 잎과 꽃이 동시에 피고 나온다. ⓒ 정덕수

 
오색약수나 오색온천을 찾았을 때 주전골을 둘러볼 시간이 된다면 오색약수 위로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그 정도까지 시간이 안 돼도 괜찮다. 오색온천을 즐긴 뒤 시내버스 종점으로 조금만 걸어가도 제법 세찬 물소리가 들려온다. 20여 미터가 넘는 치마폭포가 바위절벽을 타고 흐르듯 떨어지며 내는 소리다. 1976년까지는 발폭포로 불렸으나 1977년 봄부터 치마폭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바로 위엔 '작은 발폭포'로 불리던 속치마폭포도 있다. 발폭포로 보면 발자국을 그대로 닮은 거 같고, 치마폭포로 보면 치맛단이 넓게 펼쳐진 웨딩드레스를 보는 듯하다.

계곡까지 내려가는 길은 별로 어렵지 않다. 도로에서 경사면을 따라 계단을 설치해 놓아 폭포 앞까지 접근할 수 있다.
  
감자밭은 누가 지키나
 

감자밭 가던 길폭포 상당에 올라서 예전 감자밭을 지키러 다니던 길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감자 싹눈을 떠 밭에 거름을 내고 심었다. ⓒ 정덕수

 
치마폭포를 찾을 때면 어렸을 적 기억이 난다. 입산통제소까지 연결되는 길 위에 감자밭이 있었다. 감자꽃이 피고 감자가 땅 속에서 알을 키워갈 때면 등산객들이 훔쳐갈까봐 종종 감자밭을 지키러 가야 했다.

땡볕 아래서 종일 감자밭에 누가 들어오나 살피는 일은 고역이다. 친구나 형, 동생들은 소를 끌고 풀을 먹이러 감자밭 근처로 나온다. 1970년대 오색약수 주변엔 소를 키우는 집이 다섯 집 있었다. 그중 양씨가 세 집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소를 두 마리 이상 키웠다. 그 외 두 집도 농사를 위해 소를 키웠다.

우리도 1970년 이전엔 오목골에서 소를 키웠으나 몇 년 안 돼 약수터 앞으로 나오며 소는 더 이상 키우지 않았다. 그 다섯 집 가운데 두 집 아들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들에 맨 소를 끌러 가거나, 오후나절 풀을 먹이러 나가곤 했다. 여름방학을 하면 제법 먼 온정골까지 소를 몰고 풀을 먹이러 다녔는데, 종종 우리 감자밭 아래로 소를 끌고 와 매놓고 버들치를 잡거나 물놀이를 하며 놀았다.

그런데 내 친구와 동생들이 우리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 구워 먹다 아버지한테 걸렸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서리 좀 한 걸로 이웃 간에 소란스러워질까 조용히 덮어두려 했는데, 조바심이 난 동생 하나가 그만 부모님한테 이실직고하고 말았다. 이미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알면서 짐짓 모르는 척 나중에 물어봤다.

"형네 아버지 무섭잖아. 분명히 우리 아버지랑 술 한 잔 마시다 뭔가 화날 일이 있으면 감자 훔쳐 구워 먹은 얘기 할 거 같아서 미리 얘기했어. 엄마가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준다고 그랬는데…"

그집 엄마는 아이들에게 "너희 오늘 뭔 일 있지? 솔직히 말하면 다 용서해줄게. 뭘 했는지 말해봐"라고 말했다고 한다. 형제 중 하나는 엄마가 다 알고 묻는 줄 알고 낮에 소 먹이러 가서 한 일을 털어놓고 말았다. 아이가 하는 말에 놀란 엄마가 "너희 둘이 그랬어? 또 누구 없었니" 하고 묻자 "작은 집 형들하고…"까지 고변하고 말았다. 그 통에 그날 저녁 두 집 모두 형제간에 다듬잇돌을 맞들고 벌을 받았단다.

고집이 좀 센 동생 하나는 "엄마,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준다고 했잖아. 왜 이걸 들고 벌을 받아야 돼? 나 안 해!" 하고 반항하는 바람에 회초리로 몇 대 맞고 결국 다듬잇돌까지 들었다고 한다.

자식들 잘못을 빌러 찾아와 술자리까지 같이 하는 자리에서 어른들이 들려준 얘기를 듣던 아버지는 "가(걔)가 고집이 좀 되우 세죠. 그 녀석 엄마가 다듬잇돌 들라고 하면 드는 척하고 잘못했다고 빌지. 괜히 안 들겠다고 해서 매까지 덤으로 얻어"라며 웃으셨다.

당시 순경한테 고변은 안 했지만, 한 번 도둑은 영원한 도둑이다. 지금도 가끔 친구와 세 아우들을 만나면 그 사건 얘길 한다. 들켜서 감자도 못 구워 먹은 것도 억울한데, 소 먹이다 배는 출출하고 감자 서리 좀 했다고 엄마한테 매 맞고 벌까지 받았으니. 당시 일곱 살인가 됐던 그집 막내도 그 사건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마도 평생 못 잊을 얘기 같다.

등산객들의 보급처  
   

감자밭 가던 길치마폭포는 끝청봉과 서북주릉의 독주골이 먼저 독주폭포를 만들고 오색마을까지 흘러와 만들어놓은 폭포다. 치마폭포 위를 가로질러 감자밭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 정덕수

   
감자밭은 사실 등산객들이 들어와 부족한 부식을 충당하는 주요 보급투쟁 장소였다. 밭을 지키다보면 가끔 살그머니 들어와 납작 엎드려 감자를 캐려는 등산객을 만나곤 했다. 그럴 때면 냅다 소리를 쳤다.

"아버지! 여기 감자 도둑 들어왔어요!"

아버지가 감자밭에 계신다면 왜 어린 우리가 놀지도 못하고 그걸 지키러 갔겠나. 좌우간 어벙한 등산객은 그 소리에 줄행랑을 친다. 그렇게 감자밭을 지키다 더우면 멱을 감고 놀던 곳이 치마폭포였다.

폭포 위 절벽에 진달래가 핀 걸 보니 이제 감자 심을 때가 됐나 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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