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야만의 세상"... 도로로 뛰어든 휠체어

[현장] 장애인 단체 '장애등급 진짜 폐지 없는' 장애인의 날 기념식 규탄

등록 2019.04.18 14:43수정 2019.04.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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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63빌딩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입장 저지를 받은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이를 규탄하며 도로 점거 및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가운데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 강연주

 
 

18일 오전, 63빌딩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입장 저지를 받은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이를 규탄하며 도로 점거 및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강연주

 
"장애인의 날이잖아. 그니까 이날 만큼은 우리(장애인)를 들여보내 달라고. 저 안에 있는 장애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데. 왜 같은 장애인인데 우리는 못 들어간다는 거야. 들여보내달라고!"

18일 오전 9시 50분. 여의도 63빌딩에 위치한 갤러리아 면세점 정문 앞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 두 명이 경찰들 앞에서 가로막혔다. '진짜 폐지 장애등급제'라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은 여성과 회색 정장을 입은 남성 중 경찰은 남성을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고 여성은 막았다. 해당 여성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센터협의회 공동 회장이다.

그 순간 이형숙 회장이 휠체어를 끌고 차도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주변에 있던 두 명의 장애인도 휠체어를 타고 도로에 올라섰다. 곧 다른 장애인들 합세했고 곧장 수십 명의 경찰이 그들을 둘러쌌다. 경적을 울리는 차들, 고성을 지르며 몸싸움을 벌이는 장애인들과 수십 명의 경찰들로 도로는 혼잡했다.

"장애인들 안에서 또 장애인들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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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 '장애인의 날 기념식'규탄 및 도로 점거 18일 오전, 63빌딩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입장 저지를 받은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이를 규탄하며 도로 점거 및 농성을 이어갔다. ⓒ 강연주

이날 보건복지부는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제39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했다. 기념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보건복지부 권덕철 차관, 장애인복지 분야 유공자, 장애인 단체 임직원, 장애인과 가족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도로를 점거한 장애인들은 기념식이 열리기 한 시간 전 건물 앞에서 '2019년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주최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없는 제39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 규탄 대회'에 참석한 뒤 기념식장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낙연 총리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이 회장이 총리를 만나겠다며 우선 기념식장으로 들어가려다가 경찰에 가로막힌 것이다. 이 회장은 "기념식에 초대장이 필요한 줄은 몰랐다, 당연히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도로로 뛰어든 후 이형숙 회장은 경찰에 둘러싸인 채 항의했다.


"9시 반부터 경찰이 입구를 막고 못 들어가게 하더라. 초대권 있는 사람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거다. 국가는 이렇게 대놓고 장애인들을 차별하려고 장애인의 날을 만들었나. 누굴 위한 초대권인가. 사회에서도 차별 받는데 장애인의 날에도 이런 차별 받는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분통하고 속상하다. 경찰도, 국가도, 왜 우리를 가로막나."

이날 63빌딩 안에서 열린 기념식은 법인으로 등록된 장애인 단체 기관장들에게 초대권이 발부됐다. 이형숙 회장은 법인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장애인들 안에서도 우리를 분리, 배제하는 이 야만의 세상을 규탄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8일 오전, 63빌딩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입장 저지를 받은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이를 규탄하며 도로 점거 및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좌측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회장. ⓒ 강연주

  
이형숙 회장은 "왜 우리는 지금 코앞에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날 수 없나"라며 "장애인을 위해서 국가의 수장들이 가야 할 곳은 저렇게 화려하게 잘 차려진 곳이 아니다, 그들은 장애인이 차별 받고 있는 현장에 가서 현실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용기 서울시장애인자립센터협의회 공동회장은 '본래 어떤 집회를 하려고 했냐'는 <오마이뉴스>의 물음에 "오는 7월에 폐지되는 장애등급제와 관련해 정책 개선을 요구하려고 했다"라며 "시행까지 3개월도 안 남았는데 아직 구체적 대안도, 심지어 예산조차 편성되지 않은 상태다"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해결책을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덧붙여 장애인 탈시설과 권리 확충에 대한 얘기도 직접 만나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보는 것처럼 우리를 입구에서부터 차단했다"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관계자 "합리적인 예산안 짜겠다"
 

18일 오전, 63빌딩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입장 저지를 받은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이를 규탄하며 도로 점거 및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강연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은 도로에서 약 한 시간 반 가량 집회를 이어갔다. 이들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하라", "(장애인) 거주시설은 감옥이다, 장애인 시설 폐지하라!", "시설에서 살기 싫다, 나와서 살고 싶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권병기 과장은 "기념식이 열리는 동안 앞에서 농성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하지만 이 행사는 장애인총연합회 소속 분들이 최대한 많은 장애인 관계자 분들을 초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어 "당사자 분들의 심경도 이해가 되지만 모든 분을 초대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기대에 못 미쳤더라도 조금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등급제에 대한 답변도 있었다. 그는 "5월까지 장애인 등급제 폐지 관련 민간 협의체를 장애인 대표 분들을 중심으로 구성할 예정이다"라며 "이들과 10차례 이상 협의를 하며 더 나은 정책을 마련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합리적인 예산안도 짤 계획이다, 이후 예산을 추가 확보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장애인 #장애인의날 #이낙연 #박능후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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