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밝혀진다" 문재인 변호사의 그 약속, 26년 만에 이뤄질까

[스팟인터뷰]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추진하는 박준영 변호사

등록 2019.04.18 21:05수정 2019.04.18 21:05
70
원고료로 응원
a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2월 24일 영화 <재심>을 관람하기 전, 자신이 과거 변호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 장동익씨(가운데), 그의 재심을 추진하는 박준영 변호사(왼쪽)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993년 4월 16일, 교도소에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던 장동익씨 앞으로 문재인 변호사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는 3년 전 부산시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에서 친구 최인철씨와 함께 한 여성을 강간 후 살해한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1심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1심과 2심에서 억울한 재판을 받고 대법원 판결만 기다리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기 바랍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 2013년이 되어서야 옥살이를 끝내고 출소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9년 4월 17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아래 과거사위)는 이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유죄 판결의 핵심 증거였던 두 사람의 자백은 경찰의 고문 끝에 나온 거짓 진술이었고, 사건기록과 증거들이 조작됐다고 밝혔다. 또 장씨와 최씨의 허위자백이 객관적 자료들과 어긋나는데도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경찰의 고문 등 잘못된 수사 관행뿐 아니라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객관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당시 수사 검사는 ▲ 숨진 여성의 몸과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손수건에서 정액반응 양성이 나왔고 ▲ 혈액형 시험 결과 AB형일 수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를 억지로 연결해 AB형인 최씨가 여성을 강간했다고 봤다. 과거사위는 이 일이 "피의자 처벌에만 급급해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소송법의 근본원칙을 외면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피의자가 자백을 번복하면 검사가 자백을 검증하는 기준 등을 세우고, 수사기록의 진실성 등을 확보할 수 있는 절차와 이를 위반한 검사·수사관의 징계 절차를 마련하라고 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경우 수사기관에 관련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이 보관해온 변론기록 등이 중요한 자료였다. 또 눈이 나쁜 장동익씨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과거사위는 이 점도 반영해 중요증거물 기록 보존 방안 등을 마련하고, 장애인 등 법률적 조력이 필요한 이들을 조사할 때 그 과정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자를 반드시 동석시켜 권리 보장할 수 있도록 하라고 덧붙였다.


최인철씨와 장동익씨의 재심을 추진하는 박준영 변호사는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과거사위 권고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만져줬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우리 주장 객관적으로 확인... 피해자 마음도 달래줘"

- 17일 법무부 과거사위에서 낙동강변 살인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재심 추진해온 변호사로서 어떻게 봤나.
"우리가 아무리 밖에서 증거를 찾아 주장해도 공적 기관에서 확인해주고 밝혀주는 것의 의미를 절대 넘어설 수 없다. 이 사건도 많은 언론 보도로 문제점이 부각됐지만 우리가 찾지 못한 증거가 있을 수 있다. 또 우리 주장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줄 의미 있는 활동이 필요한데, 그걸 진상조사단에서 했다."

- 보도자료도 A4용지 22쪽에 달하는데, 조사 결과가 매우 상세하게 담겼더라.
"아주 상세하다. 또 조사를 주도한 이정화 검사가 사람 마음을 많이 만져줬다. 장동익씨가 '검사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따뜻한 사람도 있구나' 하더라."

- 진실을 밝힐 뿐 아니라 피해자들 마음까지 어루만져줬다는 뜻인가.
"그렇다. 물론 (수사나 조사하는 사람은) 여전히 의심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볼 때 공권력 피해자인 게 분명하다면 그땐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 그게 진정한 위로고 회복이다. 그게 법무부 과거사위와 대검 진상조사단의 출범 목적이었는데 이번 조사에서 이뤄졌다.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렇게만이라도 위로해준다는 데에서 위안을 받고 힘을 얻는다.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렸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나 삼례슈퍼 살인사건 피해자들의 경우 재심이 임박했어도 하루하루 고통스러워했다. 이 피해자들의 마음을 만져주면 그들에겐 조금 버틸 힘이 생긴다. 이번 조사단이 그걸 했다."
 
a

박준영 변호사(자료사진) ⓒ 이희훈

 
- 조사 과정에서 새로 드러난 사실들도 있나.
"고문에 대한 확인이 이뤄졌다. 저희가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경찰에서 고문당한 사람의 기사를 찾긴 했는데 사람까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조사단에서 당시 판결문 다 뒤져가며 누구였고, 어떤 방식이었고, 또 누가 고문했는지 등을 확인했다. 우린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검사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제가 놓친 걸 찾아내기도 했다. 수사기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아니까 어떤 문서가 사본인지 확인하려고 감정 받고, 있어야 할 기록이 빠진 부분을 확인하고. 제가 일부 확인한 부분도 있긴 했지만 눈이 다르더라.

고문 정황을 뒷받침하는 전문가 진술도 제가 밖에서 수집한 것보다 더 나아갔다. 아무래도 공적 기관에서 조사한다는 부분에 신뢰가 있어서 치과의사,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이 적극 응했다."

"제도 개선도 권고... 재심 빨리 진행되길"

- 낙동강변 살인사건도 그랬고, 과거사 피해자들의 경우 수사기관에서 고문으로 거짓자백했다가 검찰이나 법원에서 번복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사단도 '피의자가 자백을 번복하면 검사가 그걸 검증할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라'고 권고하긴 했는데,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조금 더 구체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필요한 권고다. 어쨌든 낙동강변 살인사건 등 선례가 있었으니 더 (검찰 등이)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다른 권고들도 의미 있다."

- 장동익씨의 경우 시력이 나빠 범행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했지만 수사과정에서나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적절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조사단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며 장애인 등 법률적 조력이 필요한 이들이 조사를 받거나 그 내용을 확인할 때 믿을 만한 사람을 동석시켜 그들의 권리를 더욱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금도 잘 안 되니까 장애인들이 투쟁하지 않나. 이 사건을 계기로 더 각별하게 제도를 마련하라는 뜻이다. 과거의 잘못을 지적하는 만큼,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법무부 과거사위 권고는 제도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내용도 담아냈다."

-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2017년 5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는데, 과거사위에서 재조사 사건으로 선정하면서 법원이 그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직 기일이 잡히진 않았는데, 하루 빨리 재판이 진행돼 피해자들이 피해를 회복하길 바란다."
#박준영 #문재인 #낙동강변 살인사건
댓글7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