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잘 풀리는 친구들의 공통점

[30대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조금만 더 일찍 배웠더라면

등록 2019.04.27 00:20수정 2019.04.2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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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에 접어드니 지나온 시간이 이제야 제대로 보입니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방황하던 삼십 대의 나에게 들려주고픈, 지나갔지만 늦진 않은 후회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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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던 한 후배는 마흔을 앞두고 진로 고민을 하더니 느닷없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 unsplash

 
마흔 중후반인 또래 동료들과 대화하다 보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 그래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데 그 무언가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고들 한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후배나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탄식하며 말한다.

"왜 좀 더 일찍 안 배웠을까요?"


평균 수명이 늘어나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사회적 퇴직 연령은 앞당겨진 현실. 길어진 노후에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지는 모두의 고민거리다. 비혼인 나도 남은 생의 생계는 어떻게 꾸려갈지, 만족스러운 삶의 질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종종 생각하고, 그럴 때마다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던 한 후배는 마흔을 앞두고 진로 고민을 하더니 느닷없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업무 스트레스에 치이는 일상에서 큰 위안이 된 커피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졌다고 할 때만 해도 흘려들었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얼굴이 피더니 어느 날 자격증을 턱 하니 땄다. 이후에는 커피 전문점에서 실무 경험을 쌓다가 마흔을 넘긴 지금은 대구에서 꽤 능력 있는 바리스타 교육 강사로 일하고 있다.

시간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클래식과 미술에 조예가 깊은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관련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그게 몇 년이 되니 남들에게 알려줄 정도의 지식으로 쌓였고, 이제는 어떤 그림 앞에 서든 자동판매기처럼 설명이 술술 나온다. 그 친구와 함께 전시를 보러 가면 도슨트가 해설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재밌다. 


친구는 미술을 주제로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더니 이번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서 책을 출간하게 됐다. 일찌감치 친구의 재능을 알아본 출판사는 친구에게 클래식 관련 책도 써보자고 미리 침을 발라두었다고 한다. 마흔이 넘어 늦게 피기 시작한 친구의 인생은 연일 상한가를 갱신 중이다. 두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배우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본보기다.

나는 글 쓰는 게 좋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얻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평생 글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불과 몇 년 전까지 글쓰기를 배워 본 적이 없다. 물론 꼭 글쓰기를 배워야만 하는 건 아니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실무에서 잘 연마된 탁월한 실력가들이 아닌, 비전공자에 재능도 일천한 내 개인만 놓고 하는 이야기다. 글쓰기가 너무 당연해서 배운다는 생각을 못했고, 거만함도 있었다. 이래봬도 글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하는.

그런 내가 글 쓰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가장 글을 쓰기 싫을 때였다. 마흔 넘어 방송작가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을 때만 해도 내가 글을 제법 쓰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근거 없는 착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깨졌다. 나는 방송작가 생태계에서 생존하지 못했다. 도태된 원인을 '애매하고 부담스러운 나이 탓'으로 돌렸지만, 냉정하게 자평하자면 절반 정도는 내 얄팍한 재능의 밑천이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끄러움과 좌절감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고, 쓰기도 싫었다. 마치 지긋지긋한 오랜 결혼생활을 끝내듯 작가질과 이혼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끝내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질문이 나왔다. '나는 왜 글쓰기를 배우지 않았을까? 그렇게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잘 쓰고 싶어 했으면서. 또 이 일로 밥 벌어 먹고 살고 싶으면서.'

마흔, 다시 교실로 가다

돌아보면, 20대에는 눈치 보며 어설프게 선배들을 따라 하며 살아남기 바빴다. 열정은 많았으나 서툴렀다. 그만큼 깨지는 일도 많았다.

30대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단단해져서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도취돼 있었다. 일의 안정기였고, 재미도 있었으며, 성과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성관계든 일이든 생각해 보면 많은 기회와 가능성들이 넘실대던 황금기였다. 그래서 그다지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익숙함을 기대했던 것 같다. 배움이 없는 성실함은 5% 부족했다.

어정쩡한 상태로 마흔을 맞았고, 글쓰기는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데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잘 못해서 괴롭고, 자신이 없어서 두려웠다. 업무 외 시간에 따로 배우는 글쓰기는 일의 연장선이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열정과 호기심이 증발해버린 무미건조한 모습의 전형이었다. "그래도 괜찮아"라는 달콤한 말에 숨어버리면서.

그러다 처음으로 '왜 글쓰기를 배우지 않았을까'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어떤 글쓰기를 배워야 할지 고민하고 찾았다. 글이 지긋지긋해진 타이밍이었으니,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강좌를 찾았다.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이었고, 그 책에 꽂혀서 강좌를 찾다가 만난 게 '감응의 글쓰기' 수업이었다.

20대에서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직업군, 다양한 삶의 층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협소한 틀을 한방에 부셔버릴 만큼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강의실 공기를 꽉 채웠다. 엄청난 내공을 가진 글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수강생들이 책을 읽고 사유한 내용과 방향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더 떨어질 데가 없을 것 같았는데, 형편없는 내 실력은 또 한 번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자극이 됐다.

얼마 전 댄서 리아킴이 KBS2 예능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2>에 나와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세계 최강자의 타이틀을 얻고도 제자리걸음이던 시절 <댄싱9>이라는 tvN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거기서 예상치 못한 초반 탈락으로 또 한 번 나락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게 자극이 됐다고 했다.

딱 그 심정이었다. 무엇보다 왜 써야 하는지,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배웠다. 내가 도전하고 싶고,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명확해지니 쓰고 싶어졌다. 내 인생을 BC(기원전) AD(기원후)로 나눈 듯한 수업이었다.

이왕 배울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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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배우기 시작하면서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끼곤 한다. 지금도 소풍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처럼 글쓰기 수업 개강일이 기다려지고 설렌다. 배움은 좋은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는 나를 글 쓰는 삶으로 한 걸음씩 인도하는 중이다. ⓒ unsplash

 
마침 <오마이뉴스>에 글을 연재할 기회를 얻었다. 청탁을 거절하지 않고 1년 넘게 성실히 쓰다 보니 예전에는 그냥 넘기던 일상도 예사롭게 넘기지 않게 됐다. 여전히 학생 같은 마음으로 스스로를 의심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한 독자로부터 포상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뭔가 이상했는데 부족한 말로 주변인에게 설명하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정리된 기사로 접하니 제게 언어가 생긴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다시 글을 쓰는 게 즐거워지고 좋아졌다. 잘 쓰진 못하지만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목표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제야 비로소 내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덕분에 내 배움은 계속된다. 최근에는 새로운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면서 느낀 한계들이 있었는데, 딱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수업이다.

무언가 배우기 시작하면서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끼곤 한다. 지금도 소풍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처럼 글쓰기 수업 개강일이 기다려지고 설렌다. 배움은 좋은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는 나를 글 쓰는 삶으로 한 걸음씩 인도하는 중이다.

배운다는 건 좋은 일이다. 노후를 위해서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알고 싶어서든, 일을 잘하기 위해서든. 배운 것을 써 먹을 데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일단 배워두면 운신의 폭이 넓어지거나 삶의 질이 아주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더 일찍 배우지 않은 것은, 배움의 기회를 스스로 유기했던 지난날은 어쩐지 조금 아쉽다. 지금보다 머리가 팽팽 돌 때, 기운이 펄펄 할 때, 감각이 팔딱일 때, 마음이 말랑거릴 때 배웠더라면, 좀 더 일찍 손 한 뼘 정도 나아가지 않았을까. 덜 막막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배우기 시작한 게 어디야'라는 위로가 어쩐지 좀 머쓱해서 삼십 대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은 후회다.
덧붙이는 글 '30대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은 격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중년의 후회 #다시 30대가 된다면 #배우지 않은 것은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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