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놀다 납치된 아이... "국가의 사과라도 받겠다"

[서평] 잊혀선 안 될 역사를 기록한 책 '소년들의 섬'

등록 2019.04.19 15:37수정 2019.04.1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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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을 구경하기에 딱 좋은 4월. 꽃을 즐길 수 있는 주요 거리들엔 완연한 봄을 맞이하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기자의 고향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부도로 가는 길도 주말에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일 게 눈에 보입니다. 이 지역은 서울 근교에 있는데다 꽃구경도 하고, 바다내음도 맡고, 해산물 요리도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저도 고향집을 방문할 때면 가족들과 종종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가는 길목 선감도라는 곳에 선감학원이라는 소년 수용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1982년까지 운영됐다고 하니 충격이었습니다. 지난해 <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가 쓴 <소년들의 섬>이라는 책을 통해서 뒤늦게 알았습니다. 평소 종종 다니던 곳에 이토록 잔혹한 국가폭력의 역사가 있었다니… 가까운 주변에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 표지 ⓒ 생각나눔

 
책을 읽으며 인터넷 검색창에 '선감도'를 입력하니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뜻있는 사람들이 선감도 수용소의 잊혀진 아픔을 기억해내고 진실을 밝히려 노력해 왔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일본 식민지 말기에 만들어져 1982년까지 운영된 선감학원은 4.3이나 5.18과 같은 국가폭력 사건들만큼 폭넓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뼈아픈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민선 기자는 선감학원에서의 인권유린 속에서도 살아 남았던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의 여전히 고통스러운 인생이야기와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어렵게 듣고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아픈 역사가 오롯이 담긴 책이어서 수월하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름은 학원, 현실은 수용소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나쁜 짓을 할 것 같은 8~18세 소년들을 잡아다가 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소년 감화원이라는 이름의 수용소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 잔인한 인권유린 시설을 해방 후에도 없애지 않은 채 군사독재 시절까지도 운영했습니다. 박정희 독재 시절엔 사회를 정화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납치하기도 하고, 미아보호소에서 막무가내로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선감도로 끌려온 아이들은 강제노동과 폭력(성폭력)에 시달리며 죄수처럼 살았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너무 어린 시절부터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기에 지옥같았던 수용소를 벗어나서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수용소를 나와서도 아무런 기반 없이 혼자 힘으로 세상을 버텨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기억을 힘겹게 떠올리며 저자의 인터뷰에 응했을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책장 한장을 넘기는게 미안할 지경입니다.

수용소에서 그리고 이후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이 책 한 권을 읽고서 감히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삶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이야기에 더 주목하고 싶습니다. 뒤늦게 비극적 역사를 알게 됐지만 지금부터라도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선감학원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에 기억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이 사건의 진실이 조금이라도 알려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이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왔던 역사학자 정진각 소장은 처절하게 삶을 이어온 피해자들에게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에서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정 소장의 노력만으로는 힘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 책을 읽고 선감학원에 대해 알게 된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정 소장과 뜻을 모은 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폭력 사건들 만큼 논의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나 경기도는 선감학원의 비극이 국가에 의한 폭력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이 없다.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 또한 거의 없었다. 정 소장을 비롯한 뜻있는 사람들이 선감학원의 비극을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기 위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선감학원의 비극 대부분은 아직도 피해자들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20쪽)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찾을 수 없다니

1963년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열 살 남짓 된 쌍둥이 형제 중 형은 이듬해 작은 꽃신 하나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왜 끌려왔는지도 모른 채. 관도 없이 묻혔던 형의 유골이 발굴됐을 때 유골을 받아든 사람은 가까스로 생존해 이제는 환갑이 넘은 쌍둥이 동생이었습니다. 동생이 기억하는 선감학원은 굶주림과 지독한 매질이었습니다. 형이 죽은 후 동생은 운좋게 선감학원에서 나오게 됐지만 이후의 삶도 그리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선감학원을 겪은 뒤에는 기를 펴고 살 수가 없었어요. 늘 불안한 거에요. 그러다 보니 앞장설 일이 생겨도 나설 수가 없고, 사람 사귀는 것도 두렵고."(47쪽)

동생은 구두닦이, 식당 종업원, 막노동, 운전 등 평생을 성실히 일했지만 사글셋방에서 살고 가족도 없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했던 당시에도 허드렛 일이라도 찾아 일해야 당장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파괴해버린 국가폭력 사건인데 가해자도 책임자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 더욱 원망스럽습니다.

서울에 있는 삼촌 집에 가다가 남루한 옷차림을 이유로 경찰에 납치되듯 끌려갔던 한일영씨의 인생도 상상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어머니와 삼촌이 버젓이 있었음에도 경찰에게 잡혀 아동보호소에 들어간 후 선감도로 이송된 한일영씨 역시 강제 노동, 굶주림, 폭력을 겪으며 지옥같은 고통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동상이 걸려도 제대로 치료 받지도 못해 발가락이 떨어져나가도 발을 자르지 않아 다행이라 여겨야 했던 삶…

선감학원에 수용된 지 3년 만에 한일영씨는 죽음을 무릅쓰고 이웃 섬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섬 주민들은 선감도에서 탈출해 온 소년들을 겁박해 노예로 부렸습니다. 악귀와 같은 독재 정권 아래 국민들이 어떻게 악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선감도 주변 지역 주민들은 소년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삼았습니다. 탈출했던 이웃 섬에서 노예생활을 한 지 1년 만에 한일영씨는 다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13살에 찾아가던 삼촌집에 18살이 돼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스님으로 살아가고 있는 곽은수씨는 부모와 형제가 있었음에도 어느 날 친구들과 놀다가 갑자기 나타난 차에 실려 수원시청으로 끌려갔습니다. 곽은수씨는 공무원에게 납치돼 선감학원에 수용된 경우였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졌던 폭력입니다. 물리적 구타뿐만 아니라 선배들로부터 성폭행까지… 그는 선감학원을 '약한 이는 고통속에서 죽거나 고통을 못이겨 도망치다 죽는 동물들의 세계'였다고 말합니다.

곽은수씨는 잡혀간 지 8년만에 선감도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겐 호적도, 주민등록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탈출한 지 5년만에 선감학원을 찾아가 엄청난 매질을 당하고 성장증명서를 받아와 호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 적응해 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삶을 이어가다 절에서 만난 스님들의 도움을 통해 성직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돌아보다 비장하게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 누구 때문에 내 인생이 곤두박질쳤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그때, 그 사람들이 나를 잡아가지 않았다면! 그 생각이 안 떠나니까 속에서 뜨거운 게 막 올라와서 괴롭고, 그럴 때마다 찾아서 복수하고 싶고…다 용서하고 살면 되지 않겠느냐? 그게 아니에요…너무 비참하잖아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죠.

지금도 꿈속에서 '기상'이라는 소리를 들어요. '제2반 인원보고' 하고 소리 질러서 같이 자던 스님들 깨우기도 하고요. 공무원한테 붙잡혀 오는 꿈도 꾸고, 선착순 하는 꿈도 꾸고요. 국가에서 저지른 일이니, 국가로부터 사과라도 받아야겠어요."(155쪽)

기억을 넘어 진실로

이분들 이외에도 인터뷰에 응한 선감학원 생존자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악독한 국가 아래서 시민은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자문하게 되는 역사입니다. 저자는 선감도에 끌려온 소년들이 걸었을 길을 걸으며, 길의 끝자락에 있는 박물관에서 작은 꽃신을 보며 선감학원의 진실을 확인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어 할 수 있는 것은 생존자들을 만나 증언을 듣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민선 기자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나서 후련해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며 포기하기 않고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바라는 것처럼 이 책이 우리 역사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오늘을 살아가는 생존자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선감학원이라는 잔혹한 국가폭력의 진상이 시민들에게 더욱 알려지고, 진실이 규명되는 것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배상이 이루어 지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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