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을 주목한다, 새로운 '빅딜'을 위해

[주장] 북러정상회담에 바란다... "완벽한 결말" 향한 아이디어

등록 2019.04.19 12:04수정 2019.04.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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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 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AP/조선중앙통신


소문만 무성했던 북러정상회담이 공식 발표됐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보도문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4월 하반기에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푸틴이 4월 26~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포럼에 참석하기에 앞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정은을 만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푸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모두 만나게 되는 최초의 외국 정상이 된다. 푸틴은 2000년 7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러시아 정상이 평양을 방문한 것은 구소련 시기를 포함해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푸틴의 북미관계 중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다서다를 반복했던 북미 미사일 협상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는 북한의 위성 발사 문제였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도 위성 발사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우주발사체도 장거리 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다면서 포기를 종용했었다.

이때 푸틴이 내놓은 중재안이 '대리 발사'였다. 러시아가 북한의 위성을 대리로 발사해주는 문제를 김정일과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이다. 그리고 푸틴은 기자회견을 통해 회담 결과를 공개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다른 나라가 위성 발사를 지원하면 장거리 로켓 개발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북미 협상은 급물살을 탔지만, 미국의 정권 교체 및 부시 행정부의 북미 미사일 협상 중단 선언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북핵, 러시아로의 이전·폐기 논의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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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으로 훈련 참관하는 김정은 위원장 (서울=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6일 공군 제1017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의 비행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17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TV가 공개한 것으로, 김 위원장이 김광혁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맨 왼쪽) 등과 함께 망원경으로 비행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19.4.17 ⓒ 연합뉴스

 
오늘날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간에는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북핵 폐기 방법론이다. 지난해 5월 존 볼턴 안보보좌관은 북한이 핵을 미국에 넘겨야 한다고 요구해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산 바 있다. 1차 북미정상회담 후속 논의를 위해 지난해 7월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도 비슷한 요구를 했고 북한은 "강도적 요구"라고 맞받아친 바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 정의' 문건을 건넸는데, 여기에는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에 넘겨달라는 요구도 포함돼 있었다. 김정은이 최근 시정연설에서 "미국은 전혀 실현불가능한 방법에 대해서만 머리를 굴리고 회담장에 왔다"라고 비난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 지점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푸틴이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중재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는 북미간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드는 데에 대단히 유용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중재안의 핵심은 북핵을 러시아로 이전·폐기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푸틴이 북러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의 의사를 타진하고, 그 직후 한국·미국·중국 등과도 협의하는 과정을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트럼프와 직접 논의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물론 이러한 중재안에는 미국의 핵심적인 상응조치들도 포함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1월 31일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나에게는 같은 시간에 마지막 핵무기가 북한 땅을 떠나고 제재가 해제되며 대사관 국기가 내걸리고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완벽한 결말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핵이 외부로 이전이 완료되는 시기에 제재 해제, 북미수교,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빅딜'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하노이에선 결말은 고사하고 머리말조차 쓰지 못했다. 미국이 북핵을 자신에게 넘기고 북핵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그리고 이중용도 프로그램까지 폐기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한 탓이 컸다. 북한 역시 비핵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와 핵물질 폐기 방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결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완벽한 결말"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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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다녀온 비건 대표 외교부 방문 지난 2월초 북한 평양에서 2박 3일간 실무협상을 벌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협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2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를 방문해 강경화 장관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이러한 북미간의 입장 차이와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볼 때,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빅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로의 북핵 이전과 이에 대한 동시적 상응조치로 제재 해제, 평화협정 체결, 북미수교 등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빅딜'은 꽉 막힌 한반도 비핵평화 논의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

러시아는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고 국경도 접하고 있으며 철도·도로도 연결돼 있다. 또한 세계에서 핵폐기 경험이 가장 많은 나라이고, 핵무기와 핵물질을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는 특수 차량과 장비도 보유하고 있다. 안전한 폐기를 위해서는 핵무기를 만든 북한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이들이 러시아로 가서 함께 그 작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3월 하순 비건과 일상적으로 대북정책과 관련해 소통해온 미국의 한 인사에게 이 아이디어를 설명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에게도 전달해줬으면 한다고 부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인사는 "매우 흥미로운 아이디어"라며 "그렇게 하겠다"라고 답했다. 

그 이후의 진행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비건은 최근 러시아를 방문해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협의하기도 했다. 본 해법을 공론화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상상을 해본다.

"2020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미중 정상들이 모여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식을 가졌다. 네 정상은 곧바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푸틴 대통령의 영접을 받으며 북한의 마지막 핵무기를 실고 나온 러시아의 특별열차를 맞이했다. 같은 시각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선 대북 제재를 완전히 해제하기로 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관계가 정상화됐다고 선언했고, 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이렇게 화답했다. '70년 동안의 조미간의 적대 관계를 평화 관계로 전환시킨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제 국가 핵무력의 완전한 폐기를 엄숙히 선포한다.'"
#비핵화 #북러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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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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