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장애인 감옥' 수감 계획? 내용을 들여다 보니

이러다간 '탈시설'만 45년, 그동안 "늙어 죽겠다"... 장애인단체들이 노숙 농성 돌입한 이유

등록 2019.04.19 22:46수정 2019.04.1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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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에서는 2015년 3월 13일에 나왔어요. 자유와 생각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자립을 선택했어요. 시설은 생각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에요. 일상적 생각이요. 일상적으로 하는 생각들마저 내 의지랄까 그런 걸 품을 수 없도록 해요. 뭔가를 하고 싶어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안 된다는 대답이 되돌아오리란 걸 이미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예 체념부터 하게 되는.

꽃동네에서의 생활은 감옥살이 같았어요. 마음대로 먹고 일어나고 그럴 수 없잖아요.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그러는 게 보통은 당연한 자유인데." (영은, 책 <나, 함께 산다>에서 발췌)


중증장애인인 상우와 영은은 장애인 수용 시설인 충북 음성의 꽃동네에서 20~30년을 살다가 지난 2015년 '탈시설'을 선택했다. 이들은 2015년 같이 탈시설해 사랑을 키워오다가 2018년 7월부터 서울 창동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시설에서 나와서 "매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던 상우, "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는 영은은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이들은 오는 5월 6일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관련 기사: 아주 특별한 결혼식... 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방식).

탈시설. 장애인이 수용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자립해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은 단어다. '탈시설'은 소설과 영화 <도가니>의 배경이 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던 2005년 즈음부터 화두였다. 장애인들도 시설에 고립된 채로 지내는 게 아니라 지역 사회로 나와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2019년 올해는 장애인들이 직접 탈시설을 선언한 지 10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다. 2009년 석암재단 산하의 베데스다 요양원에서 장애 수당을 빼돌려 국가 보조금을 횡령한 일이 일어났다. 그 해 6월 4일 베데스다 요양원의 입소자 8명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비리 장애인 거주 시설을 벗어나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농성에 들어갔다.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올해야말로 탈시설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해라고 말한다.

장애인의 탈시설은 현 정부의 국정 과제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기준에도 부합한다. 지난 4월 15일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에서 발표한 자료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및 탈시설 기본방향'은 "장애인의 탈시설 및 자립은 장애인 정책의 시대적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하며 아래와 같이 명시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대규모 시설 폐쇄, 탈시설 정책 법 제도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현 정부에서도 국민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맞춤형 사회보장의 일환으로 '탈시설 등 지역 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장애인들이 모두 '탈시설'하려면 몇 년이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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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후문에 설치된 농성장. ⓒ 유지영

 
'펄럭'

지난 12일 서울시청 후문에 푸른색 천막이 들어섰다. 서울시에서 발표한 제2기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을 두고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제2기 서울시 장애인 감옥 수감 계획'이라고 비판하면서 노숙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제2기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에 따르면, 서울시는 현재 시에 존재하는 장애인 거주시설 45개소의 중증장애인 2567명의 '단계적' 탈시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5년 동안 약 300명이 탈시설을 하게 된다. 또 탈시설 이후 자립생활을 위한 주택 지원 및 복합 서비스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서울시는 거주 시설 이용인에 탈시설 정보 제공 및 자립지원계획 수립 의무화와 거주시설 변환 시범운영을 신규 안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예산 계획을 들여다보면 이 안은 현재 '비예산'과 '미정'으로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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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에 마련된 '제2기 서울시 장애인 감옥 수감계획 폐기 및 중증 장애인 지역 사회 권리 쟁취' 노숙 농성장. ⓒ 유지영

  
5일 차에 접어드는 지난 16일 서울시청 후문의 농성장을 찾았다. 서울시의 계획이 '감옥 수감 계획'이라 말하며 노숙 농성에 돌입한 이유가 뭔지 물어보기 위해서다. 농성장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대표가 있었다.

박 대표는 "5년에 300명씩 나오게 되면 서울시의 장애인들이 모두 시설에서 나오는데 45년이 걸린다"며 "그렇기 때문에 1년에 300명씩 (탈시설) 계획을 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1년에 300명씩 탈시설을 해도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의 수가 많아 10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5년 동안 300명의 '탈시설'을 말하는 서울시 장애인 인권 증진 계획을 두고 "나이 들어 죽은 후에나 가능한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시설은 그 자체가 인권의 사각지대"라며 "인간의 자율과 독립, 즉 개인적인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순히 장애인을 시설에서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사회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 국가가 보호해준다고 해놓고 한 방에 여러 명이 들어가는 집단적 생활을 죽을 때까지 해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좋겠어요? 비장애인들과 달리 장애인들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전혀 마련돼있지 않아요. 지역 사회에 나오려면 집이 필요하고 지원이 필요한데 그걸 안 만들어주니 못 나와요.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로 나왔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같은 두려움은 이제 사실상 다 사라졌다고 봅니다. 오히려 주택을 제대로 공급하고 활동지원 서비스를 제대로 해주면 다 나올 수 있습니다. 당사자의 의지가 없다느니 부모들이 반대한다느니 이런 건 다 (탈시설) 속도를 늦추기 위한 핑계에 불과합니다."


장애인의 의지 역시 굳건하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거주 시설에 있는 장애인 중 55%가 탈시설을 희망하고 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20년까지 300명을 탈시설하라는 주장과 탈시설한 장애인에 대한 2년 간 활동지원 서비스 24시간 지원 체계를 마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 대표는 "서울시가 답변을 줄 때까지 농성을 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인권 #탈시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차별철폐의날 #장애인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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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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