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한옥 수선 사진, 왜 그랬냐면

[인터뷰]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글 쓴 이현화씨

등록 2019.04.23 21:25수정 2019.04.2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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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한옥 수선기 책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가 화제다. 언론에 나온 제목만 봐도 그렇다. '오래된 한옥 고쳐 쓰려면 이 집처럼… 실감나는 한옥 수선기'(뉴스1), '오래된 한옥 고치며… 새로운 삶을 만들다'(문화일보), '옛집의 시간 잇는다는 생각으로 낡은 것 사용'(국민일보), '어떻게 살까? 고민하게 만든 책'(채널예스), '80세 한옥의 변신, 혜화1117 "140개 창으로 열린 집"'(한국일보), '옛집의 시간을 잇는 마음으로 한옥을 수선했습니다'(국민일보)까지.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겉표지. ⓒ 혜화1117

 
사실 이 책은 이현화씨가 지난해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작은 한옥 수선기'를 새로 고쳐 펴낸 저작이다. 이씨가 우연치 않게 작은 한옥을 만나, 나의 집이 되는 과정을 사진작가 황우섭씨와 함께 고스란히 글과 사진으로 옮긴 것. 이씨는 황씨와의 작업을 통해 '이 집에 흐르는 유의미한 시간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고 했다.

[관련기사 : 이현화씨 연재기사 '작은 한옥 수선기http://omn.kr/1iu15]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황우섭(좌) 사진, 이현화(우) 글. 이현화씨는 혼자 인터뷰 한 것을 못내 아쉬워 했다. ⓒ 이현화 제공

 
나는 이현화씨 책을 먼저 보고, 그의 책 추천사를 쓴 김동욱 교수의 책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를 나중에 찾아봤다. 이씨가 '집을 짓는 내내 퇴계 선생의 도산서당을 떠올렸다'고 해서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도산서당 같은 집을 마음에 품었다'고 해서다. 게다가 이씨는 김 교수 책의 편집자였다. 김 교수도 이 책의 추천사에서 말하지 않았나. '이 책의 편집을 맡았던 이 집주인의 그때 경험이 이 한옥의 수선을 둘러싼 궁리에 깔려 있다고 믿는다'라고.


읽어볼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이 작은 한옥을 끝까지 고쳐 써보겠다고 한 그의 응전의 이유를 김 교수의 책에서 조금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말하자면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는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의 원형이었다. 그건 지난 19일 진행한 이씨와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10년 동안 책방 알아봤는데, 내 집이 나타났다

"김 교수의 책을 만든 때는 2012년, 그때만 해도 내가 한옥을 고쳐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만, 출판사를 나와 살림을 겸한 책방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게 내 나이 마흔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을 돌며 여행을 핑계로 책방 할 자리를 보고 다녔다. 결정은 쉽게 나지 않았다. 급할 것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살아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시간은 계속됐다. 그 기간이 10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집을 만났다. 2017년 6월의 일이었다."

서울 종로구 혜화로11가길 17에 위치한 작은 한옥. 좁은 중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씨가 집을 지으면서 강조했던 "이 집 밖으로 절대 나가서는 안 된다"고 한 돌들과 나무들, 기와들 그리고 유리문이 어떻게 다시 이 집으로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문 문고리부터 기와, 화장실 유리문, 주방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단차, 창호 그리고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하늘까지 하나하나 살폈다. 그가 책에 쓴 대로 '한옥에 산다는 건 지붕의 선 위로 펼쳐진 하늘을 내 집 마당에 두고 산다는 것과 같다'고 한 말은 사실이었다. 하늘이 물결치듯 내 눈 앞에서 펼쳐졌다.


"1936년에 지어진 이 집에서 제일 좋았던 건 원형이 잘 남아있다는 거였다. 한옥은 구조 변경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 지붕선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흘러가는 선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이 별로 없었다. 이 집에 남은 원형을 살려서 어떻게 해볼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그렇게 이 집에서 내 집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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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뒤 한 번도 전면 교체하지 않았다는 기와는 자세히 보면 요즘 기와와 만듦새가 다르다. 얼핏 낡아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빌라에의 유혹을 이겨낸 집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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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산다는 건 지붕의 선 위로 펼쳐진 하늘을 내 집 마당에 두고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 황우섭

 
한낱(?) 오래된 지붕선에 반해 80년 된 한옥을 덜컥 계약한 대가는 짐작하는 그대로다. 그의 말을 옮기자면 도전에의 싸움, '응전'이었다.

"이 집이 마음에는 들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책방을 할 자리는 아니었다. 그럼 난 이 집에서 뭘하지? 고민 끝에 계속 책을 만들기로 했다. 생각지도 못한 1인 출판사 대표가 된 거다. 다니던 출판사도 정리해야 하고, 살던 아파트도 정리해야 하고, 대출도 받아야 했다. 2017년 6월부터 나한테 덤벼오는 일들을 오로지 내가 다 쳐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다. 그러니 응전일 수밖에."

집주인이 '이 집에 쌓인 시간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전문가들이 아니라는데도 꼭 방방마다 서까래를 노출해야 했는지(심지어 화장실도!), 꼭 지금은 쓰지 않는 유리를 사용해야 했는지, 내리고 올리는 수고로움을 감당하면서까지 80년 된 헌 기와를 사용해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요즘의 쓸모로 따진다면 미련에 가까운 고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 동네에서만 썼을 것으로 보이는 무늬의 저 기와, 이 집을 지을 당시 혜화동에서 많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빨간 벽돌, 그리고 이 집의 구들장 등등 1936년 이 집을 지을 때 썼던 재료들을 계속 이 집에 남게 하는 것. 이 집의 장소성과 영속성을 지키고 싶었다. 거의 100년 동안 이 집에 유지되어 온 재료들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100년 더 이 집에서 볼 수 있게 하고 싶은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이런 나의 이야기가 모두가 똑같은 거보다 다른 방식을 고민하는 사례로 읽혀진다면 좋겠다."

40년 내공의 사람들이 정성을 쏟아 부은 집

하나부터 열까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산재했지만 이 집에 오면 그저 좋았다. 이씨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이 집에서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 집을 함께 만든 사람들 때문에라도 그러고 싶었단다.

"이 집의 서까래, 창호, 도배, 쪽마루 등은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이 일만 했던 분들의 손길을 거쳤다. 이뿐인가? 기와도 구들장도 하나하나 손으로 옮겨서 다시 쌓고, 깐 것들이다. 물론 그들도 일당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그분들은 작업의 자부심과 만족감, 이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따져보면 40년 내공의 사람들이 쌓은 평생 최고 수준의 기술을 2018년 어느 날, 이 집에 다 쏟아 부은 거다. 그런 사람들이 만든 집에 경외감이 들었다. 그분들이 정성을 다해 만든 집이니 나도 정성을 다해서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성껏 책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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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둥이 썩은 기둥은 새 나무를 밑에 대고 저렇게 나무로 연결한다. 저렇게 붙여놓으면 한몸이 된단다. 볼 때마다 신기하다. ⓒ 황우섭

 
그런 마음이 담긴 책 <외국어 전파담>,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내 고양이 박먼지>,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가 '혜화1117'이란 이름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출판편집자로 전통 건축과 관련한 책도 오래 만들어왔고 20여 년 동안 인문교양서나 문화예술서를 만들었던 사람이니 돈만 있으면 아무나 지을 수 있는 결과물을 내고 싶지 않았다. 책도 마찬가지. 결과물이 누군가는 '별 거 없네' 할지언정, '이게 나의 지금의 나야'라고 보여지려면 나다운 것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의 나는 그저 회사의 '누구'였고,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집을 지으면서 달라졌다. 나다운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게 나다운 거면, 내가 좋은 걸 해야 나다운 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고민의 결과가 지금까지 만든 4권의 책이고 이 한옥이다."

'작은 한옥 수선기'를 책으로 만들기 위해 '새로 다시 써야 했다'는 말을 듣고는 "왜 그러셨어요?" 속엣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기사에 맞는 글이 있고, 책에 맞는 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옥 수선기'를 책으로 만든다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고 싶었다. 황우섭 작가는 사진으로 책 한 권을 만든 거고, 나는 글로 만든 거다. 80년 된 한옥을 모델로 한 황우섭 작가의 작품집에 내 이야기가 얹어서 나온 책이기도 하고, 내 이야기에 사진이 얹어진 것이기도 하다. 표지에 사진 황우섭을, 글 이현화 보다 앞에 배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독자들이 '왜 사진이 앞일까?'를 한번쯤은 생각해 보지 않을까?"

한옥을 수선하는 일도, 책을 짓는 일도 모든 일의 처음과 마지막까지 그의 선택과 결정이 필요하지 않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생의 가장 많은 선택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한 순간이었을 거다. 그러한 선택이 혹시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이 집을 만들면서 제 입 밖으로 한번도 안 꺼낸 말이 '아, 내가 괜히 이 집을 해가지고...' 였다. 그건 뭐랄까,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 같기고 했고. 그런데 선택에 대한 부담보다는 이 상황에서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내 선택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려면 결과가 좋아야 한다. 지금 선택이 옳고 그른지는 모른다. 다만 내가 선택한 게 좋은 결과면 그게 좋은 선택인 거다.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결과가 무엇인지, 어쨌든 최선을 다해서 그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거다. 그것 또한 응전인 거다. 내가 이것을 선택한 순간, 이 선택을 좋은 결과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다."

집에서 고민해야 할 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이씨는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책을 편집할 때를 떠올렸다. 도산서당은 방 한 칸에 부엌, 마루가 전부라고 했다. 너무 작아서 인상적이라고 했다.

"이황은 자기가 평생 쌓아 놓은 재물이 아니라, 평생 쌓아 놓은 학문적 즐거움을 도산서당에서 누리며 살다 갔다. 그때부터 그게 머릿속에 원형같이 남았다. 산다는 건, 즉 자기 공간을 갖는다는 건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향기 같은 게 있어야 하는 거다. 사람의 향기가. 클 필요도 없고, 자기가 누릴 수 있는 만큼만 누리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동욱 교수도 그 책을 쓰면서 '집을 장만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집에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삶을 보낼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나도 나중에 집을 지으면 남에게 보여줄 화려한 집이 아니라 그 집에서 뭘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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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만 남기고 다 바꾼다는 말이 바로 이런 장면을 뜻한다는 걸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기사에 이 사진을 실었을 때 독자들이 충격 받을까 봐 걱정했다는 이현화씨. ⓒ 황우섭

 
이 책의 66페이지 '경계안'을 우연히 보게 된 6학년 딸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한옥을 철거하고 기둥만 남은 한옥 공사 현장이었다.

"엄마, 이럴 거면 왜 집을 수선해? 그냥 새로 짓지?"

아이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미처 못했는데, 김동욱 교수의 책에서 답변이 될 만한 대목을 발견했다.
 
종종 이황은 다른 곳에 보내는 편지에서 집 짓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공사를 막 시작한 어느 날, (제자) 황준량에게 보낸 편지에서 심정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니 때로 혼자 웃습니다.'

화단의 꽃나무들을 설명할 때, 도배 장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서까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집안 곳곳에 숨은 80년 전 재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기분 좋게 웃던 이씨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 작은 한옥이 나의 집이 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이 혼자 웃었을까.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 1936년에 지어진, 작은 한옥 수선기

이현화 지음, 황우섭 사진,
혜화1117, 2019


#이현화 #나의 집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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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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