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고문값으로 받은 돈, 김홍일은 이렇게 썼다

민주화운동보상금으로 1999년 유영장학회 설립... "인재 키우는 게 5.18 정신"

등록 2019.04.22 11:33수정 2019.04.2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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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유영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 김홍일 전 의원. 이때를 마지막으로 그는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 유영장학회

 
그들은 사정을 보지 않고 두들겨 팼다.  교묘하게 급소는 피해가며 사람을 때리는 기술이 있는 줄 그 때 현장에서 경험했다. 구타에 이어 '머리박기' '깍지 끼기' 등 각종 고문이 이어졌다. 나는 혼절을 거듭하며 수없이 외마디 소리만을 내뱉었다.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어서 죽여주시오."
- 김홍일 자전 에세이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 중에서

지난 20일 타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고 김홍일 전 국회의원은 평생 고문 후유증을 겪었다. 김 전 의원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 5월 17일에 보안사에 의해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10일째 고문이 이어지자 견딜 수 없어 책상 위에 올라가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떨어져 자해를 기도했다"고 밝혔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죽지 않았다"고 당시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고문 후유증으로 다리를 심하게 절었고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파킨슨병으로 거동조차 불편한 몸이 됐다. 훗날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선정돼 그나마 명예회복은 할 수 있었지만,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그럼에도 김 전 의원은 고문당한 처참한 경험을 희망으로 바꾸는 일을 도모한다. 고문당한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장학회를 설립한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보상금으로 받은 1억2400만원을 종잣돈 삼아 지난 1999년 7월 '재단법인 유영장회'를 설립했다. 김 전 의원은 설립 때부터 현재까지 이사장을 맡아왔다.

유영장학회 설립 당시 김 전 의원은 "5.18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바로 인재를 키워 인권과 복지를 향상시키는 길"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노력하는 청소년들의 권리와 복지 증진을 위해 보상금을 기탁, 장학재단을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영장학회'라는 이름은 자신이 국회의원 2선을 지낸 전남 목포의 '유'달산과 '영'산강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유영장학회는 지난 2001년 2월 첫 장학금을 지급한 이후 올해로 19번째 장학금 수여식을 가졌으며, 매년 10~16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유영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 윤혜라 여사. ⓒ 유영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은 지난 2013년 목포 삼학도에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개관한 뒤로는 이곳에서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김홍일 전 의원은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열리는 장학금 수여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유영장학회 이두성 사무처장은 "김 전 의원이 거동조차 어렵게 돼 지난 2003년을 마지막으로 장학금 수여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부인 윤혜라 여사가 매년 목포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윤혜라 여사는 지난 2016년 제16회 장학금 수여식에서 "부친이신 김대중 고 전 대통령 때부터 인연이 깊은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수여식을 하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유영장학회 기금은 5·18 보상금 1억여 원으로 시작해 2000년대 초반 7억1천4천만원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설립자인 김 전 의원이 대외활동을 못하면서 15년 가까이 장학기금은 늘지 않고 있다. 이 사무처장은 "이자로 장학금을 주고 있는데 이자가 줄어드니 장학금 지급액도 줄어들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고 김홍일 전 국회의원의 빈소는 목포에도 마련됐다. 목포분향소는 지난 21일 목포 삼학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 설치돼 23일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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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삼학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 설치된 김홍일 전 의원의 목포분향소. ⓒ 이영주

 
#김홍일 #김대중 #유영장학회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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