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받았던 차별, 자식에게 대물림 하는 부모

[주장] 사회가 평등하면 가정이 화목하고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등록 2019.04.22 19:57수정 2019.04.2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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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가족의 달을 앞두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가족'을 주제로 글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명절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폐지가 어렵다면 명절 괴롭힘 대책을 마련하라는 성토도 적지 않다. 조상들에게 감사의 예를 올리며 일 년에 한두 번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 안부와 덕담을 나누는 자리가 폐지 대상으로 호명되고 있다. 원인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삶을 재단하기 시작한다. '취업은 했니' '누구는 정규직이라더라' '결혼 안 하니' 등 마치 당연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걱정과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들을 쏟아낸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아무개를 끌어다 비교하며 훈수를 둔다. '다 잘되라고 하는 것'이라는 걱정과 훈수는 스트레스와 갈등만 유발하다가 결국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쓰게 만들고야 만다. 

그러나 이는 생각해 볼 일이다. 친지들이 쏟아내는 질문들은 '나'가 아닌 '나의 위치'를 향해 있다. 과연 그러한 관심과 질문들이 괴로운 이유가 명절이라는 자리 자체에 있을까. 애초에 그런 위치를 만들어 놓은 사회로부터 비롯한 것은 아닐까. 

이 사회는 어느 대학을 나오고,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결혼은 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위계를 세운다. 또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며 그에 따라 사람에 등급을 매긴다. 우리는 '나'보다는 '내가 설 위치'를 먼저 보고 그 자리를 향해 타인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아간다.

애초에 경쟁권조차 박탈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떤 종교를 믿고, 성적 지향이 어떤지, 장애가 있는지에 따라 어떤 이들은 곧장 이류 시민이 되기도 한다. 이런 구분은 모두 차별에 기반한다. 결과적으로 명절에 만난 친지들의 물음과 훈수는 정상적으로 살지 못할 것에 대한 우려, 차별받으며 살지 말라는 걱정일 것이다. 물론 사회에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런 걱정은 아무 쓸모가 없다. 

사회의 차별은 고스란히 가족 안에서 재현되기도 한다. 여성의 처우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며느리와 사위의 위치는 전혀 다르다. 며느리는 시가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지만 사위에게 고무장갑을 내미는 장모는 적다. 여전히 가족 중 장애인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성적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겪는 청소년들이 있다. 

성 소수자들은 어떤가. 성 소수자들을 향한 왜곡된 시선은 그들을 가족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사회에 존재를 드러내기 어려운 성 소수자들은 최후의 보루인 가족이라는 울타리마저 잃을까 봐 가족들에게 꽁꽁 비밀로 싸매둔다.

고등학생 때 일이다. 같은 반 친구가 시험이 끝난 후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마침 청소 당번이라 늦게까지 남아 있던 내게 친구는 '성적표가 나오면 집에서 쫓겨날 거'라며 두려워했다. 삼 형제 중 막내인 친구는 두 형 모두 서울대에 진학하여 그들과 늘 비교당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친구의 부모는 가난한 탓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그 때문에 멸시당하고 차별받으며 곤궁한 밥벌이를 해야 했다. 자식들에게만큼은 그와 같은 설움을 대물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부부는 자식 셋을 모두 서울대에 보내고자, 버는 돈을 모두 교육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친구는 도저히 형제들과 같은 성적을 낼 수 없었다. 형제들과 비교하며 쏟아진 구박과 질타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나중에는 형제들까지 친구를 비난하고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친구의 꿈은 최대한 빨리 가족에게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한 괴로움은 계속된다. 차별을 대물리지 않겠다던 친구의 부모는 결과적으로 그들 스스로 당신들이 받은 것과 똑같은 차별을 자식에게 대물림했다. 친지들은 걱정을 가장해  차별의 문턱에 선 개인을 저울질한다. 차별받지 않는 삶은 차별이 없어졌을 때 가능하다.

사람에겐 누구나 곁이 필요하다. 아무 바람 없이 곁이 되어줄 존재로 우리는 가족을 떠올릴 수 있다. 가족의 의미가 예전보다 퇴색되었다고 해도 가족의 가치는 그 어떤 관계보다 끈끈하고 단단하다. 가족의 형태와 범위가 변해감에 따라 그 정의는 달라질 수 있겠으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느 어머니는 자식이 성 소수자인 것을 알게 된 후 오랫동안 다녔던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자식을 지옥 불에 떨어지라고 기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은 그렇게 세상에 함께 맞설 곁이 되기도 한다. 가족은 여전히 울타리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그러자면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 그러자면 걱정과 우려의 질문 대신 공감과 지지의 질문으로 바꾸어야 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제는 앞에 하나가 더 붙어야겠다. '만사평등 가화만사성'. 사회가 평등하면 가정이 화목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만사평등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관련기사]
"누구랑 살면 어때?...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마라" ☞ http://omn.kr/1iq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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