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전 은행나무', '기막힌 모과나무'를 아시나요?

순천만국제정원, 멋진 정원 속에 숨은 눈물과 땀의 스토리

등록 2019.04.23 16:17수정 2019.04.2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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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은 절기상 봄비로 백곡이 윤택하며, 나무에 물이 가장 오른다는 곡우(穀雨)이다. 하지만 국가정원이 있는 순천에서는 '정원의 날'로 다가온다. 이 아름다운 정원이 태어나기까지 눈물과 땀이 흥건한 별별 사연들이 있다.

십여 년 전 생태도시를 내건 순천시는 무분별한 도심 개발에서 순천만을 지키면서 지역경제도 살리기 위해, 순천만과 도심권 사이에 에코벨트가 될 거대한 정원을 만들기로 한다.
 

위풍당당 팽나무 풍덩독 배수펌프장 옆 공원 조성 때 벌목될 운명이던 60년 된 팽나무는 국내에 두 대 뿐인 8NC 굴삭기를 이용해 정원으로 옮겨져,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었다. ⓒ 배주연

당시 노관규 시장은 "순천만 보존을 위해 국제습지센터 조성 사업까지 확정되었는데 도심이 계속 확장되고 있는 부분이 많이 걱정됩니다. 이번 기회에 건너편까지 정원을 조성해서 훗날 어느 시장이 오더라도 순천만 방향으로 더 이상 개발이 되지 않도록 생태 축을 만듭시다(최덕림. <공무원 덕림씨> p.119에서 인용)"라고 하기도.


이에 <독일 정원 이야기>의 저자인 고정희 박사의 조언을 듣던 중에 '정원박람회'에 주목한다. 시비만으론 공사비를 감당하기 버거운데, 정원 조성이라는 국비 항목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국제행사로 국비 지원을 받은 후에 정원으로 개장하기로 한다.

드디어 2009년 4월 17일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이라는 국제 행사로 승인을 받긴 했으나, 2013년 4월 20일에 개막 전까지 준비하기엔 시간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고심 끝에 '재활용'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리사이클링에 업사이클링 결과까지 얻었다.
 

지구정원 1번 소나무 중앙에 보이는 소나무가 정원박람회 조성 중에 첫 번째로 옮겨 심은 나무인 "지구정원 1번 소나무"이다. 헬기로 들어 올리려 해도 움직이지도 않던 소나무에게 막걸리를 바치고서야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 배주연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가 끝나자 그늘막, 가로등, 종사자 복장 등을 가져와 썼다. 해룡산단 조성으로 이주하느라 사라질 마을 50여 동의 주택 목재는 순천만의 갈대와 만나 멋진 쉼터로 환생했다. 순천과 목포 구간 고속도로 공사에서 버려지던 돌과 바위, 88고속도로나 상사댐 주변, 개인 집 등에서 천대받던 나무들은 조경예술로 귀한 존재가 되었다.

국가정원을 둘러보면 "지구정원 1번 소나무", "위풍당당 팽나무", "5분 전 은행나무"처럼 특별한 이름을 가진 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흔한 소나무, 팽나무, 은행나무로만 보일 이 나무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기에, 아는 이들에겐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로 기억된다.

빛의서문 입구 광장에는 "위풍당당 팽나무"가 우뚝 솟아있다. 이 나무는 풍덕동 배수펌프장 옆 공원 조성 때 벌목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 60년 된 나무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살리고자 국내에 두 대 뿐이라는 8NC 굴삭기를 이용해 정원으로 옮겼다.
 

기막힌 모과나무 별량면 대동마을에서 300년을 살던 모과나무는 박람회 관계자가 마을 할머니의 목숨을 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정원으로 이사했다. ⓒ 배주연

 
헬기까지 동원하면서 나무도감원의 중앙에 '모신' "지구정원 1번 소나무"는 상사면 용암마을 묘지 출신이다. 정원박람회 조성 중에 첫 번째로 옮겨 심어 '넘버 원'이 되었다. 신기한 것은 헬기로 들어 올리려 해도 꿈쩍도 않던, 이 황소고집 소나무에게 현장 근로자가 막걸리를 한 잔 바치니 그제야 움직였다나.

"5분 전 은행나무"는 집주인이 건물을 짓느라 30년 된 나무를 베어내기 5분 전에, 박람회 직원이 현장에 찾아가 기증을 설득해 목숨을 구했다. 벌목 위기는 주차공간이 필요한 순천 남부교회의 150년 정원수에게도 찾아왔고, 그는 "새 삶을 찾은 히말라야시다"로 부활했다.


나무도감원에는 두 번이나 벼락을 맞고도 100년 넘게 살아서 "근심 먹는 은행나무"로 불리는 나무도 있다. 벼락을 맞은 은행나무는 소원을 이뤄주고 근심을 없애준다 하니 솔깃하다. 그런데 세 방향으로 뻗은 한 그루로 보이건만, 실제로는 암수가 서로 다른 세 그루가 한 곳에 뿌리를 내린 것이라니 더욱 놀랍다.
 

5분 전 은행나무 우측에 있는 나무가 나무도감원에 식재된 "5분 전 은행나무'로 건물을 짓느라 집주인이 30년 된 나무를 벌목하려던 5분 전에, 박람회 관계자가 기증을 설득해 목숨을 구했다. ⓒ 배주연

 
이 도감원에서 뒤편 산을 보면, 순천의 시화이기도 한 철쭉 100여 종이 식재되어 지금 한창 꽃길로 장관인, 철쭉 정원이 보인다. 이 철쭉길을 올라 수목원 전망지에 가면 국가정원이 한눈에 보인다.

이 길에서 한국정원 방면으로 가다 보면 소망의정원 이정표가 보이고 물소리가 들린다. 조금 걸어가면 폭포수 아래 커다란 바위 위에서 햇볕을 쬐는 세 마리의 두꺼비가 있다. "소원 성취 두꺼비"로 모인 동전은 연말에 수거하여 불우아동을 위해 사용되니, 로마의 트레비분수도 부럽지 않다. 가장 큰 두꺼비의 입 안에 동전을 넣어보길.
 

소원을 비는 관람객 관람객이 소망의정원에 있는 "소원 성취 두꺼비"에게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고 있다. ⓒ 배주연

 
순천만WWT습지로 가면 최평곤 작가의 <들어가는 길>인 세 거인 조형물을 내려다보는 거대 나무를 볼 수 있다. 별량면 대동마을에서 300년 살던 모과나무인데, 박람회장으로 옮기려 할 때 주민들이 반대했다.

관계자가 설득하러 또 다시 마을을 찾던 어느 날, 외진 곳에 쓰러진 마을의 할머니를 발견해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러자 주민들이 기뻐하며 동의해서 "기막힌 모과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나무도감원에 가면 커다란 돌에 노산 이은상의 <나무의 마음>이 있다. 생각해보면 목심(木心)도 모잘라 석심(石心)까지 알아주고, 자연과 서로 도우며 살려한 순천의 인심(人心)이 국가정원을 탄생시켰다.   
 

나무의 마음 국가정원 나무도감원에 자리잡은 노산 이은상이 지은 <나무의 마음>이다. ⓒ 배주연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소 숨 쉬고 뜻도 있고 정도 있지요
 만지고 쓸어주면 춤을 추지만 때리고 꺾으면 눈물 흘리죠
…중략…
나무는 사람마음 알아주는데 사람은 나무마음 왜 몰라주오
나무와 사람들 서로 도우면 금수강산 좋은 나라 빛날 것이오"


앞서 순천시는 2015년에 4월 20일을 '정원의 날'이라 조례로 제정했고, 향후 국가 기념일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난 20일 오후 2시에는 잔디마당에서 정원박람회 당시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 수목기증자, 해설사 등을 초대하여 공로에 감사하는 기념식을 열었다.
 

정원의 날 기념식 4월 20일 잔디정원에서 열린 "정원의 날"에서 정원박람회 당시 활동한 자원봉사자, 해설사, 수목기증자 등의 공로에 감사하며 기념식이 열렸다. 참석자들이 야외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뒤편에 보이는 언덕은 "봉화언덕"이다. ⓒ 배주연

 
허석 시장, 서정진 시의장, 안홍균 AIPH 한국위원장, 송영수 박람회조직위 위원장 등은 마련된 꽃 화분을 현재 활동하는 해설사들에게 전달했다. 이 꽃은 순천 곳곳에서 자라게 된다.

각기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정원으로 모였던, 나무에서 시작된 기증의 선순환이 꽃을 통해 정원 밖으로 이어진다. 참석자들은 튤립 구근을 선물로 받았으며,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정원을 산책하고, 다큐 <다섯 번의 계절: 우돌프의 정원>을 보는 등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순천만국가정원 #정원의 날 #국가정원 특이한 나무 사연 #2019 순천방문의 해 #순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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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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