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수화, 알아듣지 못하는 농인도 많다"

[강원 산불 피해지역, 속초를 가다 ②] 체계적인 시스템이 부재한 방송 수어통역

등록 2019.04.24 14:51수정 2019.04.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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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복지법 제22조(정보에의 접근) (2)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방송국의 장 등 민간 사업자에게 뉴스와 국가적 주요 사항의 중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또는 폐쇄자막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또는 자막해설 등을 방영하도록 요청하여야 한다. 

·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40조의2(재난방송 등의 주관방송사) ③ 제1항에 따른 주관방송사는 다음 각호의 조처를 하여야 한다. 2. 노약자, 심신장애인 및 외국인 등 재난 취약계층을 고려한 재난 정보전달시스템의 구축해야 한다.

 
우리 법은 재난 상황에서 방송국이 수어 통역과 같은 전달수단을 갖춰야 할 것을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속초 산불 당시, 불길이 거세게 번졌던 4일 밤에서 5일 새벽 사이에 수어 통역을 제공한 방송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지상파 방송국의 수어 통역 부재가 지적된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김철환 활동가 ⓒ 함민정


수어 통역사 그때그때 수급해 운용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에서 활동하는 김철환씨를 만났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시청각장애인들의 권리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시민단체다. 김씨는 그간 지속해서 수어 통역과 관련해 재난주관방송사인 KBS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김씨는 "방송국에서 수어 통역 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김씨에 따르면 현재 방송국은 속초 화재처럼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방송사와 계약된 수어 통역사의 인력풀을 활용한다. 책임을 져야 할 방송사는 뒤로 물러나 있고 수어 통역사 개인에게 인력 충원을 맡겨두는 구조다. 안정된 체계 없이 필요한 수어 통역사를 그때그때 수급해서 운용하는 것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긴급 상황에서 수어 통역사를 구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수어 통역사를 구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취재에 응한 한 수어 통역사는 방송국의 무책임함을 비판했다. 

"소개해 달라고 하면 소개한 사람만 믿고 방송에 투입한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수어 통역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겠어요?"

무책임한 인력관리 시스템이 통역의 질적 하락까지 부른다는 것이다. 속초 화재 현장에서 만났던 속초 수화통역센터장 조연주씨도 비슷한 답변을 했다. 

"방송에서 나온 수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농인도 많다." 

현 방송 뉴스에서 수어 번역은 '문자식 수화'로 이루어진다. 문자식 수화는 한국어 문장을 수화로 옮겨 놓은 방식이다. 반면 농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화는 '한국 수어'다. 단어를 하나의 수화로 표현해 이해하기 쉽다. 한국 수어에 능숙하지 못한 통역사가 뉴스에 나오면 문자식 수어로 통역된다. 농인들에게 뉴스 전달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통역사 지정제도 필요"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는 화면이 깔끔해야 한다며 수어 통역을 넣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재난 상황에서 농인들이 소외되는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방송국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 KBS < 뉴스9 >


김철환씨는 방송사가 책임지고 수어 통역사 인력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법원에는 '지정 수어 통역사'가 있어요. 법원에서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을 몇 명 지정해 청각장애인이 법정에 섰을 때, 차례로 연락을 하는 거죠. 그게 지정 통역사제도입니다. 인력풀을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죠." 

김씨가 주장하는 지정 수어 통역사 제도는 방송국에 수어 통역사를 24시간 대기시키라는 뜻은 아니다. 응급 상황 시 수어 통역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재난 통역 전문 '인력풀'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다. 김씨는 "사실 KBS가 스스로 제기해야 하는 문제죠.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사이고, 재난 방송 주관사잖아요"라고 덧붙였다.

"상징성 있는 KBS 뉴스9 수어 통역 해야"

김철환씨는 이전에도 방송국의 수어 통역에 대한 책임을 물은 적이 있다. 

"동계올림픽 때 방송에서 수어 통역을 안 했어요. 현장에서조차 수어 통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방송사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 장애인분들이 저희한테 많이 토로한 게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왜 수어로 못 보냐'였어요. 다행히 인권위원회가 우리 손을 들어줘서 방송사에 제안했죠.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세계인의 축제기 때문에 장애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요. 그제야 KBS는 수어 통역을 시작했어요." 

그의 최근 관심은 KBS의 9시 뉴스에 수어 통역을 도입하는 일이다. 현재 9시 뉴스에는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는다. 

"KBS는 9시 뉴스에 많은 정보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화면이 깔끔해야 한다며 수어 통역을 넣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재난 상황에서 농인들이 소외되는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방송국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KBS의 <뉴스9> 는 상징성이 있잖아요. 수신료를 내고 '전 국민'이 보는 뉴스라는 상징성이요." 

김씨는 공영방송 메인뉴스의 수어 통역 부재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 위치를 보여준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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