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단돈 만 원에 팔고 벌어진 일

[최소한의 소비 17] 있어야 할 것, 없어도 괜찮더라고요

등록 2019.04.25 20:18수정 2019.04.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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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덜그럭. 탁!"


둘째 녀석의 소리다. 또 화장대 서랍에 장난감을 넣는 중인가 보다. 처음에는 아이가 서랍으로 장난 칠 때마다 부침개를 뒤집는 중에도 안방으로 달려갔다. 서랍을 세게 닫다가 손가락이라도 다칠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달려가는 모성애도 한두 번이다. 이 천둥벌거숭이, 취미가 서랍 사냥이다. 수시로 서랍에 달려드니, 매번 아이의 안위를 돌보기 어려웠다. 묘안을 짜냈다. 아이 안전을 위해 서랍을 통째로 테이프로 발라버렸다. 번뜩이는 투명 테이프 덕분에 둘째 아이는 서랍 장난을 잊었다.

드디어 화장대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큰 아이 차례였다. 아이는 테이프를 볼 때 마다 떼버리기 일쑤였다. 스티커 떼 듯, 테이프를 손톱으로 살살 긁어 쭉 뜯어낼 때마다 재밌다고 까르륵댔다.

​화장대의 진짜 주인인 내가 거울을 보는 시간은, 아침 5분. 두 개구쟁이가 한 뜻으로 화장대를 습격하는 시간은 예측불가. 화장대가 점점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작은 파우치에 스킨, 로션, 선크림, 팩트, 아이섀도와 립스틱을 담았다. 그리고 화장실 수납장 한켠에 놓았다. 화장실에서 화장하기로 결심했다.

찾아보니 화장실의 사전적 의미도, '화장' 하는 방이었다. 변소의 정체가 화장방이었다니, 신선한 반전에 즐거워하며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화장을 한다. 그리고 화장대를 중고로 과감하게 팔아버렸다. 단돈 만 원에.
 

화장대 없이 살기로 했습니다. ⓒ 최다혜

 
화장대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화장대를 샀었다. 하루 겨우 5분 앉으면서도 말이다. 신혼 가구 장만할 때, 화장대는 으레 있어야 하는 가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야만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없는 살림에 TV도 포기하고, 장롱도 포기했다. 하지만 화장대만큼은 지켜냈다. 나의 정체성이 과연 여자다움에 있는 건지 아닌지에 대한 깊은 고민도 없이 말이다.

화장이 여성성의 상징이라는 데 별 생각이 없었다. '엄마도 여자'라는 말을 흔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다움이야말로 출산 후에도 잃지 말아야 할 자존심이라 여겼다. '나=엄마=여자=화장'이란 생각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귀동냥으로 들어온 타인의 생각을 의심 없이 자신에게 들이댄 게 문제였다.

화장대는 수 십 만 원짜리 사치품에 불과했다. 화장하는 시간 짧고, 화장품 개수도 여섯 개 남짓이다. 그리고 '엄마도 여자잖아요'라는 말에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 이제는 여자답게 보단 나답게 살고 싶다. 그렇다. 나는 화장대를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나 화장대를 갖춰야 할 필요가 없었다.

화장대를 만 원에 팔아버린 건, 단순히 덩치 큰 거울 낀 수납장을 버린 것 이상의 결심이다. 앞으로 어떤 물건을 살 때 신중하고 싶다는 표현이다. 유행에 맞춰, 혹은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려고, 남들 다 있으니까, 신제품이라서 구매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남들 있는 건 다 갖춰야 한다'는 생각은 반헌법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대한국민이 아니던가. 집에 들이는 물건 하나하나에도 남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게 헌법 정신에도 맞다. 100명에게 100가지 다른 취향이 있는데, 누구나 같은 종류의 가구를 둘 필요는 없다.  
 

물건이 없으면 더 좋기도 합니다. ⓒ 최다혜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고요?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라는 말에 삐딱하게 반문한다. 때로는 없는 게, 혹은 적은 게 나을 때도 있다. 특히 59㎡로 아담한 우리 집에서 가구 하나하나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공간만 크게 차지하던 화장대가 사라진 안방은 더 넓고 쾌적해졌다.

화장대 뿐만 아니다. TV도 없다. 그리고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4구짜리 가스레인지도 없다. 2구짜리 구형 가스레인지 덕분에 밥상 차리는 시간도 줄고, 식단도 간소해졌다.

거실에 장난감이 없다. 장난감만 종일 놀며 중독증상을 보이던 아이들이 이젠 책도 읽고 부모에게 재잘댄다. 둘째 수유할 때 쓰던 소파를 처분했다. 네 식구가 바닥에 둘러 앉아 도란거리고, 때로는 길게 누워 쉰다. 쭉 뻗은 부모 몸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장난감이다.

돈과 물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불편해 한다. 쓸데없이 예민하다. 요즘 말로 프로 불편러(매사에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내어 주위 사람의 공감을 얻으려는 사람을 이르는 말)다.

덕분에 오랜 시간 가져왔던 편견을 들여다본다. 아직 우리 삶에 남은 화장대 같은 것들을 더 살피고, 빼나갈 수 있다. 불필요한 물건 없이, 사랑하는 것들로만 가득한 집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애쓴 집주인의 달콤한 열매가 아닐까.
 

'없는 것보다 있는게 낫다'라는 말에 반문을 제기한다. 때로는 없는 게 있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적은 물건으로 사는 우리 집은 아담해도 쾌적하다. ⓒ 최다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dahyun0421)에도 실립니다.
#최소한의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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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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