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올라온 준영이, 5년째 주인 없는 생일상 차립니다"

[인터뷰] 세월호 단원고 희생학생 부모 오홍진, 임영애 부부

등록 2019.04.24 10:38수정 2019.04.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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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영이 어머니 임영애씨는 교복을 입은 준영이 모습, 차가운 바다에서 올라 왔을 때의 준영이 모습, 군에 간 준영이를 상상해 클레이 인형을 만들었다. ⓒ 이재환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은 오작동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언론은 '전원구조'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오보를 냈다. 국민과 희생자 부모들은 침몰하는 세월호를 무기력하게 바라만 볼 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5년이 지났지만 결코 희미해질 수 없는 기억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지금도 줄기차게 그 일을 이쯤에서 덮자고, 이제는 잊자며 '망각'을 부추긴다. 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시도일까. 최근 일부 정치인들은 그날의 기억을 전면 부정하고, 모독하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필명 산만언니)는 지난 12일 <딴지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그 일에 대해 '지겹다. 그만하자'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도 당신들도 아니고 사고를 겪은 당사자들"이라고 적었다. 그 당사자 중 하나인 안산 단원고 희생학생 유가족들은 지금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쉼 없이 뛰고 있다.

유가족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 달라,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 한다. 단원고 2학년 5반 오준영 학생의 아버지 오홍진씨는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5년하고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많은 분들이 유가족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조금 더 다가와서 이야기하길 바란다. 되살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함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단순하게 마음속의 이야기를 해서 후련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위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4월 23일은 준영이 생일, 비록 주인공은 없지만...  

그의 아들 준영이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8일 만인 지난 2014년 4월 23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준영이의 생일이었다. 세월호 304명의 희생자 중 149번째로 돌아온 준영이는 지금은 부모님의 '가슴' 속에 살고 있다.


준영이 '엄마아빠' 오홍진(58)·임영애(50)씨는 지난해 12월 충남 홍성군으로 이사를 왔다. 지난 16일 5주기 홍성 세월호 추모제에서 준영이 아빠 오홍진씨를 만났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23일이 준영이 생일인데, 그날 볼까요"라고 말했다.

준영이 생일인 지난 23일 홍성 내포신도시 준영이네 집에서 '준영이 부모님'을 만났다. 준영이 집은 곳곳에 준영이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 준영이가 지금 당장 입고 뛰어도 될 옷가지들, 책상, 컴퓨터, 모든 것이 그대로지만 준영이만 없다. 이날도 준영이 엄마는 주인공 없는 생일상을 차리고 준영이의 생일을 축하했다. '준영이 엄마' 임영애씨는 "준영이가 보고 싶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준영이 부모님(임영애, 오홍진)이다. ⓒ 이재환

 
- 지난해 12월 안산에서 홍성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임영애: 홍성에 이사 오기는 했지만 대부분 안산이나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제(22일)는 차명진 의원 고소건 때문에 서울에 갔다. 지금도 안산에서 살 때와 똑같이 살고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많은 분들을 만나고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나라도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차명진 전 의원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처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징하게 해 처먹는다"는 글을 올려 공분을 샀다. - 기자 말)

- 요즘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생일>이 화제다. 영화를 혹시 보셨는지 궁금하다.
임영애: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 준영이는 오전 11시 40분에 태어났고, 자신의 생일날 오전 11시 40분에 (바다에서) 올라왔다. 그래서 더 영화를 못 보고 있다. 유가족들에게 4월은 힘을 내야 하는 시기이다. 아픔에 빠져 살다 보면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잡히는 생일 간담회에 갈 수가 없다. 영화는 좀더 시간이 지나면 볼 생각이다.

- 오늘(4월 23일)은 준영이 생일이다. 오늘 아침, 준영이 생일상을 차린 것을 페이스북을 통해서 봤다.
임영애: 생일상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준영이는 자신의 생일날 올라 왔다. 준영이의 생일인데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음식이라도 차리며 시간을 보내고, 그것에 몰입하고 싶었다. 또, 준영이가 생일 미역국을 먹고 싶어서 올라 왔는데 엄마와 아빠, 동생이 모두 울고 있으면 준영이가 너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지난 2015년부터 준영이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주인공 없는 생일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준영이 부모님이 23일 아침에 차린 주인공 없는 생일상이다. 단원고 2학년 5반 오준영. 생일 축하한다. 잊지 않을게. ⓒ 오홍진.

  
"준영이가 보고 싶을 때가 가장 힘들어"

- 매순간 힘들겠지만, 그래도 가장 힘든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임영애: 준영이가 보고 싶을 때가 가장 힘들다. 순간순간 너무 힘들다. 그 그리움 때문에 차명진 의원 같은 사람들의 말은 잘 들리지도 않는다. 설령 들린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심장이 끊어질 정도로 아프진 않다. 그럴 여력도 없다. 지금도 준영이가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다. 아직도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과 준영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고 아프다. 물론 차명진 의원의 발언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단죄할 필요가 있다.

오홍진: 오늘 같은 날이면 준영이가 특히 더 보고 싶다. 집 옆에는 홍성고등학교가 있다. 가방을 메고 뛰어 오는 학생을 보면 준영이로 착각할 때가 있다. 눈앞에 준영이가 수시로 떠오른다. 준영이 사진을 지금도 늘 지니고 다닌다.

- 세월호 사건의 재조사를 촉구하는 4.16가족협회의 국민청원이 20만을 훌쩍 넘었다. 국민들의 호응이 컸는데...
오홍진: 문재인 대통령이 좀더 확고한 답을 내 달라는 차원에서 국민청원을 한 것이다. 검찰이 세월호 사건을 수사할 필요가 있다. 굳이 청원을 통하지 않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의지를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문재인 정부 3년차인 지금도 지리멸렬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적어도 대통령이 직접 진상규명을 위해 나서야 한다. 수사권 보장과 같은 조치를 통해 특조위의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 요즘 세월호 관련 망언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이 유난히 눈에 띄고 있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나.
오홍진: 할 말이 너무 많다. 세월호 유가족들 전체의 의견은 아니고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고 싶다. 나를 손가락질하고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제발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 5년 동안 우리(유가족)가 한 행동에서 잘 못된 부분, 생각이 짧아서 한 실수에 대해 질타를 한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 홍성에서는 4.16 이후부터 세월호 추모문화제를 진행해 오고 있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혹시 있나.
오홍진: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다. 지난 2016년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홍성에 처음 와 봤다. 세월호 관련 분향소가 설치되고 학생들이 조문을 하며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했다.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고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홍성 세월호 촛불 가족들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세월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꾸만 그날을 회상하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들 때가 있다. (세월호 촛불지기들이) 우리와 이야기 할 때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편안한 이웃주민으로 스스럼없이 대화 나누고, 만나서 차도 마시고, 식사도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홍성에서 열리는 세월호 집회뿐 아니라 홍성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동참할 생각이다.

임영애: 세월호 엄마아빠가 된 이후,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내가 아파서가 아니라 내가 아픈 이야기를 해서 상대방이 아파할까봐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런 벽을 허물 수 있는 것이 바로 공감이다. 나는 세월호 가족이다. 이 사회를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다. 홍성 주민들에게는 고맙고, 끝까지 함께하자고 말하고 싶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 달라"

-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해 달라.
임영애: 사건 직후에는 솔직히 나와 세월호 부모들만 아픈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분들이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아팠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당사자니까, 좀 더 아프니까, 그런 이유로 그들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자식을 지키지 못해 죄책감을 가졌던 것처럼 국민들도 희생자들을 지켜주지 못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슬픔에서 끝나지 않고, 그 공감능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리 아이는 돌아 올 수 없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나라가 안전한 나라가 될 때까지 잊지 않고, 우리와 함께 행동해 주길 바란다.

오홍진: 국민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필요할 때 우리와 함께 행동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나눠주고 있는 세월호 리본은 이제 더 이상 세월호 만의 리본이 아니다. 대한민국 안전의 리본이다. 앞으로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오준영 #세월호 #단원고 부모 #오홍진 임영애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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