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기억해야 물을 수 있고 진상규명도 될 수 있어"

세월호 참사 준영이 부모, 창원 간담회 ... "잊혀지면 내 혼자 어떻게 싸우지"

등록 2019.04.24 22:40수정 2019.04.2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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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기억'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기억'해야 물을 수 있고 '진실 규명'이 될 수 있다. 4월 16일 그 날을 기억해야 물을 수 있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저도 준영이가 왜 죽었는지 진실만 밝히자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고 나온 것이다. 준영이만 생각하면 이 자리에 설 이유가 없다. 작게라도 기억해 달라. 집에서든 친구들한테든 조금이라도 기억하자고 말해달라."


세월호 참사 때 아들(오준영)을 잃은 엄마(임영애)가 경남 창원에서 시민들을 만나 한 말이다. 엄마는 아이의 아빠(오홍진)와 함께 24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박미혜 변호사의 사회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준영이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되었다가 그해 4월 23일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 날은 준영이 생일날이었다. 엄마·아빠는 아들은 없지만 지금도 해마다 생일상을 차리고 있다. 엊그제도 그랬다.

엄마는 "우리 아이는 박근혜정부에서 버림을 받았다. 정권이 바뀌었다. 그런데 지금도 '기다려'라고 한다. '공감하지만 지겹다'고 한다. 아무 것도 밝혀지지 못했는데 '기다려'라는 말이 이제는 상처다"며 "내 새끼가 죽어갈 때 사람다운 사람이 없었고, 직업윤리를 가진 선장도 없었으며, 국가도 없었다. 밝혀내야 할 물음을 아이가 주고 간 것인데, 누군가는 지겹다고 하지만 엄마니까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꼭 밝혀야 한다고 했던 사람들도 그만 할 때라고 하는 걸 보면서 원망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어떻게 싸우지?' 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엄마는 "저는 4월이 좋다. 4월이면 아이가 올라온 날이다. 그 날 그 아이를 낳고, 탯줄을 끊고 나온 아이가 18년 뒤에 죽음으로 왔다"며 "생일 이야기는 안하고 싶은데, 그렇게 아프면서 생일상을 네 번 차렸다. 아이가 미역국 먹으려고 올라왔는데 엄마·아빠가 울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아이한테 약속했다. 다음 생일날에는 미역국을 맛있게 끓여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누구처럼 저도 지겹다. 진실규명을 방해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조작과 은폐하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한 명이라도 사과를 한다면 지금 당장 그만 두고 싶다. 내 새끼가 배 안에 있는데,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는데, 사람을 구하지 않고 VIP(대통령)한테 보여줄 영상만 찾고 있는데, 아무 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어떻게 그만 둘 것이냐. 그것이 지금까지 싸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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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 준영이 부모인 오홍진(58), 임영애(50)씨는 4월 24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박미혜 변호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윤성효

 
엄마는 "세월호 간담회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간담회가 없어서 서운한 게 아니라 아무 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잊혀지는 게 부모로서 무섭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형 탄핵 이야기가 거론되었다. 엄마는 "박근혜가 탄핵이 되었는데 세월호는 인용이 안됐다. 세월호로 탄핵된 게 아니고, 국정농단으로 된 것이다. 우리가 빠졌다. 저 사람이 감옥에 간 것은 국정농단이지 세월호 책임으로 간 게 아니다"고 했다.

이어 "세월호가 빠졌을 때 우리는 절망감을 느꼈다. 세월호에서 사람 부재의 주인공은 저 사람인데, 정부가 없었는데, 아이들이 죽어가도 대통령이 없었는데, 그것이 탄핵에 인용이 안된 것이다. 그 때 엄마가 느끼는 것은 진실규명이 안 되는 것이구나, 책임자 처벌이 안되는 것이구나, 그런데 어떻게 진실규명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너무 절망해서 울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래도 문재인 정권인데, 그래서 바랐지만 지금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해준다는데 기다려라고 한다. 노숙하거나 싸우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다. 저한테 그것은 가혹한 말이다. 기다려서 304명이 죽었는데, 또 기다리라고 한다. 그 말처럼 무서운 말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지금은 사람으로 못할 짓만 빼고 다 하자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안산의 아침이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입을 열었다. 오씨는 "저는 2014년 4월 16일 이전까지는 반월공단에서 주야로 일하던 노동자였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제가 야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면 아들은 '안산의 아침이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빠는 "그만큼 준영이는 자신도 중요하지만, 부모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살뜰이 챙겼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국가도, 어른도, 언론도 없었던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명진 전 의원과 정진석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차명진이가 아이들에 대해 막말하고 부모들한테 입에 담지 못할 저질스럽고 저급한 표현을 했다. 정진석이 그것에 일조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들한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우리 가족들은 차명진에 대해 고소장 접수했다."

아빠는 "국민이 죽는데 방관만 했던 사람들도 명백한 범죄다. 진실규명을 못하게 하는 사람과 막말하는 사람들도 같은 사람들이고 2차 범죄다"며 "그 사람들은 진상규명해서 책임자 처벌이 되면 박근혜와 동격으로 처벌할 것이다. 그네들의 끝은 반드시 처벌이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와 전면 재수사 요구가 높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벌써 20만명이 넘어섰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은 전국에서 모인 1차 8만 3700명의 서명지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오홍진씨는 "청와대가 반드시 답을 주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반드시 답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희망이고 국민청원에 대한 답이다. 그런 것조차 대통령이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짓을 빼고 모든 것을 동원해서 싸울 것이다"고 했다.

"남에게 비수를 꽂는 사람도 부모가 있을 것이다"

박미혜 변호사는 "세월호에 대한 여러 가지 편견이나 오보 중에서도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보상을 많이 받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오홍진씨는 "이른바 세월호 유가족 특혜니, 특례 입학이니 하는 말들이 많았다. 다 사실 아니다. 보상은 여행자보험과 업체에서 들어놓았던 보험에서 총괄적으로 받았던 것이고 소송으로 묶여 있었던 이자를 포함해서 받은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부모들은 그것을 모아 활동비로 쓴다. 아직도 아이들에 대해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들이 대다수다. 사망신고 하지 않은 아이들 몫으로 다 남겨 놓았다. 부모들은 그것은 통해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비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이 저질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남에게 비수를 꽂는 사람도 부모가 있고 아이가 있을 것이다"며 "이 싸움은 진상조사가 되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다시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진상규명의 끝은 안전 사회다. 책임자 처벌만이 아니라 그래야 아이들한테 덜 미안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가 '연대'에 대해 물었다. 엄마는 "솔직히 말해 2014년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 때문에 안전한 나라, 민주화 된다고 말하더라. 그 때는 기분이 나빴다. 왜 하필 내 아이 때문이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2주기 때까지만 해도 '안전한 사회'도 나한테는 소용이 없고, 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만 알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내가 정말 못된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으로서 세월호 때 사람다운 사람이 없었다고 이야기 하면서 내가 어른답지 않은 어른인 줄 몰랐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간담회 하고 집회 다니면서 배웠다. 진짜 사람답게 됐다. 어른다워졌다. 제일 먼저 한 게 연대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내가 아파 보니까. 당시 어느 신문에 '소외된 세월호·위안부'라는 기사가 났다. 그 때 절실히 알았다."

"같이 아프다며 안아주고 같이 울어주었다"

"저는 평범한 사람으로 일상 생활하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제가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밀양 송전탑 할머니, 장애인, 5·18광주 어머니 등. 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제가 소외된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연대'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같이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사과를 못받고 있다. 밀양 할머니들은 저희들한테 위로를 해주면서, 자식한테 물려줄 땅을 빼앗겼다고, 우리는 자식을 빼앗겼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아프다며 안아주고 같이 울어주고 했다. 처음에는 연대를 몰랐다. 국민과 같이 연대하고 같이 했기에 여기까지 버틴 것이다.

다른 단체하고 달랐다가 아니라, 그 분들과 동행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세월호 부모들이 특별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5·18 어머니들은 '내가 너네들 마음을 안다'고 하셨다. 그 말이 큰 감동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전혀 특별한 게 아니다. 땅과 거름이 되어 함께 한 것이다. 저희는 피붙이도 믿을 수 없는데 국민만 믿고 간다."


엄마는 "청와대 앞으로 가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하면서 경찰과 싸웠다. 앞에 있던 의경이 '저도 준영입니다. 김준영입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데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 의경도 누구의 소중한 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빠와 엄마는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와 전면 재조사가 꼭 필요하다며 국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청년은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처음에는 일부러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며 "2주기 때 서울 광화문에 갔는데 비가 내리는 속에 걸려 있는 영정사진을 보면서 울었다. 그 때부터 세월호 팔찌를 계속 차고 다닌다. 씻을 때도 빼지 않는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

박미혜 변호사는 "1주기 때, 법원에 가면 법정 대기실이 있다. 하루는 배지를 구입해서 통에 놓아두었다. 법정에 들어갈 때만이라도 다른 변호사들이 가져가도록 했다. 그날 배지가 동이 났다"며 "소심하게 호주머니에 넣어 가는 분들도 있었는데, 창원 변호사들은 하나씩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고 했다.

오홍진씨는 "세월호 리본은 처음에는 '기다림'이었고 이후에는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위한 진상규명과 애도의 의미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지금은 안전한 사회로 가는 리본이다. 우리가 지켜야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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