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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보의 외로움 뒤늦게 깨달은 작은 바보들의 '울음'

[김유경의 영화만평] 모멸감 없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노무현과 바보들>

19.04.26 10:15최종업데이트19.04.2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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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바보들> 포스터 ⓒ 오키넷

 
최근 개봉한 다큐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의 앵글은 '바보들'의 웃픔과 짠함을 조명한다. 큰 바보 노무현과 작은 바보 노사모 회원들이 갈마들며 화면을 채운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고 어쩌다 헤어지는가가 펼쳐진다.

2000년 16대 총선 때 부산 출마를 선택하여 미끄러진 '바보 노무현'의 웃픈 마음이 실감난다. 그 바보가 좋아 만사 제쳐놓고 2002년 국민참여경선에서부터 16대 대통령 당선까지 '노풍'을 이끈 노사모의 짠한 심정이 메아리친다.
 
영화는 노사모 회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작은 바보라는 실상을 밝힌다. 당장 안 하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를 못 할 것 같아서 노후가 보장된 빵빵한 직장을 아예 그만두고 참여한 청년, 그토록 열망하며 준비한 신문기자 입사 시험일이 노사모 행사와 겹치자 시험을 포기한 대학생, 회사 운영을 밀쳐두고 노사모 행사를 쫓다가 수십 억의 빚더미에 올라앉은 CEO 등등이다. 통념대로라면, 그 바보짓은 비범한 미친 짓이다.
 
그러니까 그런 바보는 사전적 정의가 아니다. 지능이 떨어지거나, 못나고 어리석어서 이 땅의 지역주의와 특권의식 극복을 겨냥한 게 아니다. 누구든 해야 할 일이기에 "시대의 첫차, 구시대의 막차"에 사심 없이 올라탄 것이다.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의 그 바보짓으로 새 역사를 만들었지만, 내달 23일은 큰 바보의 10주기다. "산맥이 없는 봉화산 같은 존재"인 큰 바보를 탄탄한 주류 기득권 계층, 즉 산맥이 누른 탓이다.
 

<노무현과 바보들> 스틸컷. ⓒ ㈜ 바보들


그 눌림을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는 모멸감이라 일컫는다. 모멸감은 모욕과 경멸에 멍듦이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주류 출신 평검사들이 비주류 출신 대통령에게 보인 가차없는 비열함이 한 요인이다. 서슴없이 막무가내로 덮어씌우는 실패한 경제 프레임과 빨갱이 프레임도 치명적이다. 그 와중에서 큰 바보에게 가장 큰 타격은 "자기를 그토록 따랐고 지지했고 응원했던" 작은 바보들의 외면이었으리라.
 
그 외로움을 뒤늦게 깨달은 작은 바보들이 운다. 화면에서 길모퉁이를 돌려다 풀을 뽑는 큰 바보의 마지막 실루엣을 보며 나도 복받쳐 운다. 우는 그들도 나도 안다. 바보들의 순수성에 바탕한 노무현 참여정부의 근간이 이해타산의 토양을 거느린 산맥의 휘둘림에 취약했다는 것을. 큰 바보가 명색이 권력을 쥐었더라도 작은 바보들이 산맥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했다는 것을. 10년이 흐른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국내외 통계를 제 입맛대로 왜곡해 경제가 곧 망할 것처럼 짜깁기한 가짜뉴스 인용을 일삼는 일, 강원도 산불 진압을 잘 했어도 산불정부라고 폄하하며 재난 대비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을 방해하는 일, 한반도 평화정착을 향한 문재인 정부의 고투에 대해 위로는커녕 김정은의 대변인이라는 막말을 두 차례나 쏟아내며 색깔론을 지피는 일, 공권력 개혁에 필요한 공수처 설치 법안 등 개혁안들을 건마다 물리치는 일 등등.
 
너나없이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노풍을 일으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노사모나 촛불혁명이 좋은 예다. 물론 그러한 역사 만들기는 지금도 가능하고 진행 중이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에게 모멸감을 안겨 죽음에 이르게 한 산맥의 실세는 여전히 건재하면서 국민이 주인공인 국민 주권 국가 지향을 가로막는다. 그건 헌법 제1조 1・2항 위배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노무현과 바보들>의 메시지는 그 두 조항을 상기시킨다. 함께하는 참여, 즉 바보들의 행진에 다시금 힘을 실어야 하는 이유다. 힘없는 국민의 변호인이던 노무현 대통령을 판사의 시각으로 대했다는 노사모의 짠함이 모멸감 없는 민주주의를 지향하게 한다. 물론 난 노사모도 문사모도 아니다. 한 국민으로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할 뿐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과 바보들 바보 노무현 노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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