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줄에 묶여 화마 못 피한 강아지? 오보에 두 번 운 산불 이재민

[이면N] 집 모두 탔는데 댓글 뭇매까지... "기자는 그러면 안 되지 않나"

등록 2019.04.29 07:32수정 2019.08.0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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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이면을 봅니다. 그 이면엔 또 다른 뉴스가 있습니다. [이면N]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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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동해안 산불로 피해를 입은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 이재민 고인숙씨는 25일 오후 속초시 장사동에 위치한 집터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SBS 기사를 보여주며 "흰돌이가 목줄에 묶여 화마를 못 피한 것도, 불길에 발이 그을린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김성욱


"이 녀석, 이 녀석이 우리 집 개거든. 아니 지금 집도 다 타가지고 속상해 죽겠는데 강아지는 방치해놓고 지들만 도망갔다고 욕을 하니까 아휴, 억울하죠. 우린 불 나고 바로 목줄부터 풀어주고 짐차에 싣고 다녔는데... 기사가 틀린 건데 '쓰레기'라고 하고, 시골 노인네들이라 그렇다고들 하니까..."

지난 4일 발생한 고성·속초 산불로 집이 모두 불에 탄 고인숙(61)씨가 핸드폰에 저장된 기사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목줄에 묶여 화마 못 피한 강아지, 불길에 그을린 발'이란 제목의 5일자 SBS 기사였다. 고씨는 이 기사의 주인공 '흰돌이'의 견주다.

흰돌이 사진을 처음으로 보도한 곳은 <연합뉴스>였다. '목줄에 묶여 화마 피하지 못한 강아지'란 제목으로 "5일 오전 전날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속초시 장사동의 한 마을에서 발을 불에 그을린 강아지 한 마리가 목줄에 묶여있다"고 전했다. 이어 SBS가 이 보도를 "속초시 장사동의 한 마을에서 발을 불에 그을린 강아지 한 마리가 목줄에 묶여있다"고 받아썼다.

SBS가 네이버에 전송한 이 기사에는 1200개 이상의 공감과 5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주인은 뭐했나', '욕 나온다, 같이 대피를 했어야지', '시골 노인들 생명 경시가 심하다' 등 개 주인을 비판하는 댓글이 주였다. 앞서 <연합뉴스> 기사에 네이버 기준 4개의 댓글이 달렸던 점을 감안하면, SBS 보도가 화제를 키운 셈이었다.

그리고 <한국일보>가 '목줄이라도 풀어주세요... 속초 산불에 그을린 강아지' , <경향신문>이 '목줄이라도 풀어주지'···속초 화마로 발 까맣게 그을려진 강아지' 등 보도로 역시 가세했다. 이중 1300개 이상의 공감과 500여 개의 댓글이 달린 <한국일보> 5일치 기사는 12일자로 제목과 본문 내용이 수정됐고, 해당 사진이 내려간 채 고씨 측 입장이 실렸다.

고씨는 25일 오후 속초시 장사동에 위치한 집터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흰돌이가 목줄에 묶여 화마를 못 피한 것도, 불길에 발이 그을린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화재 문자를 받고 곧장 개 목줄을 풀어줬고, 해당 사진은 화재 다음날인 5일 불이 다 꺼진 뒤 임시 숙소를 알아보느라 개를 묶어놓은 사이 찍힌 거라고 했다. 까맣게 된 개의 다리도 불에 그을린 게 아니라 당시 집 주변에 엎질러진 오일을 밟아 묻은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본 흰돌이는 다리는 물론 몸 전체에 특별한 상처나 화상 자국 없이 건강한 모습이었다.

"불 나던 날 밤, 차에 태워 함께 다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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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와 흰돌이. ⓒ 김성욱


- 기사들엔 "목줄에 묶여 화마를 못 피했다"고 났다.
"아이고... 전혀 아니다. 화재 문자 받고 우리 집 바깥 양반이 개 목줄부터 풀어줬다. 그러고 나서 아들과 남편이 같이 집 주변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땐 아직 집에 불이 붙기 전이니까... 정말 조마조마했다. 저기서부터 뻘겋게 불이 다가오는데, 바람이 이쪽으로 불었다가 저쪽으로 불었다가, 하도 도깨비불이라서... 결국 우리 집에도 불이 붙어버렸다. 공무원들이 나와서 빨리 여기서 피하라고 하더라. 중요한 서류도 못 챙기고 이대로 몸만 나왔다. 목줄 풀어줬던 흰돌이가 아직 집 주변에 있는 걸 발견하고 얼른 짐차 뒷칸에 태웠다. 그렇게 첫날 밤은 흰돌이를 태우고 계속 집 주변만 빙빙 돌면서 밤을 샜다. 우리 집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밤새 흰돌이와 함께 탔다는 흰색 포터 차량을 가리키며 고씨가 말했다. 고씨네 가족이 지난 2013년부터 살아온 집은 전소됐다. 집터는 이미 철거가 끝난 뒤라 휑했다. 올해로 3살이라는 흰돌이는 전에 키우던 어미 개가 낳은 새끼라고 했다.

"그런 애를 버리고 그냥 가겠어요? 아휴... 사진에서 흰돌이 몸이 검은 건 불 나던 밤 연기 때문이에요. 그날 연기가 어찌나 심했는지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나중에 정신 좀 추스르고 목욕 시켰더니 금세 하얘졌잖아요. 아마 불 다 꺼진 다음날(5일)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기자가 사진을 찍어간 것 같아요. 당장 잠 잘 데를 구해야 하니까 주변 숙소를 알아보러 다니는 그 사이에. 개를 데리고 다닐 수가 없으니까 집 앞에 묶어놨던 거죠. 아 근데 그걸 주인한테 한번 확인도 안 하고 '목줄에 묶여서 불을 못 피했다'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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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가 언론에 보도된 흰돌이 사진을 들어보이며 흰돌이와 비교하고 있다. ⓒ 김성욱


- 기사엔 "발이 불길에 그을렸다"고도 나왔다.
"우리 집 양반이 공사 일을 해서 집에 목재니 오일이니 자재들이 많다. 불이 붙으면 안 되니 급한 대로 오일통들을 한쪽에다 치워놨는데, 그게 하도 난리통이니 엎질러졌나 보더라. 나중에 흰돌이가 그 엎어진 오일을 밟은 거다. 사진 잘 봐라. 그게 불에 탄 자국처럼 보이나? 기름 묻은 거 딱 보면 아는데. 만약에 다리가 그 정도로 새까맣게 탔으면 흰돌이가 어떻게 걸어 다니고 저렇게 절뚝거리지도 않고 멀쩡하겠나."

옆에서 얘기를 듣던 아들 홍종욱(33)씨도 거들었다.

"아니 불에 그을렸으면 털이 타고 살이 빨갈 텐데, 그것도 한번 생각 안 해보고... 잘못된 기사 하나 때문에 사람을 이렇게 욕먹게 할 수가 있는 겁니까."

"기자는 그러면 안 되지 않는가, 불 난 집에 기름 붓나"     

- 기사와 댓글들 보고 놀랐겠다.
"기사 나가고 이틀인가 삼일인가 지나고 딸과 아들이 알려줘서 알았다. '엄마, 흰돌이가 뉴스에 나왔는데 엄마가 엄청 욕 먹고 있어'라는 거다. 무슨 소린가 했다. 황당하더라. 댓글이 좀 심해서 자식들은 경찰에 신고하라고 이렇게 자료까지 다 만들어왔다. 하지만 우리 집 아저씨가 시끄럽게 일 만들지 말라고 해서 그렇게까진 안 했다.

댓글 단 사람들은 뭐 그럴 수도 있다. 다 동물 사랑하는 마음 아니겠나. 하지만 기자는 그러면 안 되지 않나. 어떻게 된 상황인지 똑바로 알고 취재를 해서 글을 올리든지 해야지... 주인이 없으면 다시 걸음을 하더라도 자세히 알고 써야 맞는 거 아닌가. 여기 사람들은 지금 집이고 살림살이고 다 티서 앞길이 막막해 죽겠구만. 불 난 집에 기름 붓는 것도 아니고..."

자식들이 기사와 댓글들을 스크랩해 만든 자료 30여 장을 매만지며 고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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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가 당시 스크랩해 둔 한 비난 댓글을 펼쳐 보이고 있다. ⓒ 김성욱


- 지금은 어디서 생활하나.
"주변 리조트에 방을 얻어서 살고 있다. 밥 때 되면 개 밥 주러 온다. 불편하냐고? 당연한 걸 묻나. 그치만 어쩌겠나. 불편한 걸로 따지면 아직도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불편하게 있다. 불 나고 나서 한 열흘간은 하도 악몽을 꾸고 진정이 안 돼서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이제는 좀 괜찮아졌지만... 자식들이 걱정하니 최대한 밝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속초 토박이인 그는 평생 이렇게 큰 불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희망했다.

"바라는 거라면... 글쎄 제가 말주변이 없어 놔서... 그냥 어쨌든 불을 우리가 낸 게 아니잖아요. 우린 그냥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어디 불이 나서 집이 다 탔는데, 정부든 한전이든 빨리 보상이 나오고 다시 집 지을 수 있게 됐으면 하는 거죠 뭐. 일단 사람이 먹고 자고 할 집이 있어놔야 빨리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든 할 테니까... 그거만 기다릴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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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가 전소된 집터를 뒤로 하고 서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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