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연구자들이 조선의 세계지도에 주목하는 이유

[지도와 인간사] 강리도를 바라보는 국내와 국외의 시선 차이

등록 2019.05.06 17:47수정 2019.05.06 17:55
0
원고료주기
 

Felipe저 세계사 ⓒ 김선흥


2015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한국 지도학 발달사>(이하 <지도학>으로 약칭)를 펴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국토교통부 산하의 공공기관인 만큼 여기에서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 1402년 조선 시대에 제작된 세계지도)를 어떻개 소개·평가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지도학>은 강리도에 대해 총 9쪽을 할애하고 있다(집필자는 배우성 교수다). 그 가운데 강리도에 대한 평가는 한 페이지 남짓에 걸쳐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내용이 온통 강리도의 결함을 지적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몽골 연구자들이 강리도에 주목하는 이유

강리도는 몽골 세계대제국의 지리적 초상화다. 강리도가 세계사의 사료로서 가치가 높은 까닭 중의 하나도 바로 몽골세계제국의 시대를 증언하는 거의 유일하고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시각적 문헌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지도학>은 이상하다. '몽골'로부터 강리도 평가를 시작하면서도 그러한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강리도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곧바로 강리도의 단점을 나열한다.
 
"몽골은 명의 환관 정화가 배를 띄우기 훨씬 전부터 구대륙 전체의 윤곽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리도는 몽골제국의 지리지식 수준을 정확히 반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지 않은 오류들이 눈에 띈다. 중원대륙이 과도하게 강조돼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족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 밖의 오류들은 대부분 성교광피도의 원도가 되었을 이슬람계통 지리지식에서 온 것이다. 특히 구대륙의 해양에 관한 정보는 내륙에 관한 정보에 비해 현저히 부실하다."

성교광피도는 사라지고 전해오지 않는다. 지금 아무도 그것을 본 사람이 없다. 따라서 거기에 어떤 지리지식이 담겨 있는지 확인할 수 없으며, 거기에 반영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슬람 지리 지식은 더욱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우리는 강리도와 중국의 광여도 등을 통해 그것들을 추론해 볼 뿐이다. 그런데 이 글은 확인되지 않는 내용을 근거로 강리도의 오류를 단정하고 있는 셈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세계학계에서 이미 정립된 강리도의 독보적인 가치와 우수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강리도가 몽골제국시대의 지리적 시야를 반영하는 거의 유일한 현존 지도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의의가 매우 크다. 최근 서양의 세계사책들이 몽골 시대를 다루는 장에서 강리도를 조명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은 그런 까닭이다.

또한 저명한 몽골사 학자들이 강리도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까닭에서일 것이다. 이를테면 강리도 연구서를 단행본으로 펴낸 교토 대학의 미야 노리코도 몽골사 연구가이다. 강리도의 서역 지명 연구를 개척한 스기야마(교토대) 역시 널리 알려진 몽골사의 권위자이다. 서양의 몽골사학자들에게도 강리도는 단골 주제이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사적 맥락속에서 강리도가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시사해 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그들의 강리도 논평을 들어보자.

먼저 미야 노리코의 <몽골 제국이 낳은 세계도>(モンゴル帝國が生んだ世界圖, 2007)를 보자. 이 책은 강리도 하나에 대해 약 300쪽에 걸쳐 서술하고 있는 유일한 단행본 학술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2010)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다. 사실 강리도는 '몽골이 낳고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이다. 미야 노리코는 강리도는 "보는 사람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 준다"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강리도는 13~14세기 무렵, 전무후무하게 광대한 영역을 장악하고 있던 몽골 제국의 세계인식이 투영되어 있다… 유럽의 지도사에서 아프리카를 하나의 대륙으로 그린 것은 희망봉을 처음 통과한 바르톨로뮤 디아스(1451~1500)의 항해, 즉 1489년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1320~1330년대, 늦어도 1402년 단계에 이미 바다로 빙 둘러싸인 아프리카를 알고 있었다. 이 지도는 유럽의 대항해시대보다 아득히 앞선,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역사상 최고(最古)의 <아프리카·유라시아>전도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앞서 언급한 스기야마는 강리도에 나타난 대지평은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며 강리도가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간단히 뒤엎는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확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서 볼수록 충격적인 메시지"라고 평한다. 그는 또한 강리도는 경계가 없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아라는 광대하고 전혀 새로운 세계의 출현을 증언하는 지도라고 강조한다. 

영국의 사학자 피터 잭슨(Peter Jackson)은 <몽골과 서양>(THE MONGOLS AND THE WEST)에서 "13세기 말과 14세기에 중국에서 나온 지도들은 일정 부분 무슬림 지도제작자들이 제공한 정보에 기초했을 것인데, 1330년경 원나라의 이택민 지도는 전해오지 않지만 거기에 포함된 내용이 훗날 몇몇 지도에 재현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조선의 1402 세계지도인 강리도"라고 설명하고 강리도는 "15세기 말까지 서양에서 나온 어떤 지도보다도 우월하다"라고 평가한다. 

이슬람 관점으로 바라본 강리도

우리의 <지도학>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설명을 더 들어 보자.
 
"몽골제국의 지리지인 대원일통지에도 이런 한계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대원일통지의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 관한 설명에는 이슬람 계통의 지식이 활용되었다… 문제는 대원일통지 편찬을 주도했던 한족지식인들에게도 있었다… 적어도 강리도는 대원일통지의 한계를 계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원나라 지리학에 이슬람의 지리정보가 반영됐을 것이고 그것이 강리도에 담겨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문제는 그런 측면을 세계학계에서는 문명간의 교류 및 지식의 교환·축적이라는 차원에서 조명하는 데 반해 우리의 <지도학>은 오직 강리도를 폄하하는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이다. 

유라시아의 동서를 연결한 몽골 제국에서 무슬림은 문화와 과학지식 교류의 주역이었다. 강리도에는 당연히 이슬람 지리학과 정보가 삼투돼 있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관점에서는 강리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슬람 문명과 과학사를 다루는 훌륭한 전문 사이트가 있다. 영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1001 Inventions>이다. 

여기에서 이슬람 문명권의 기념비적인 옛 지도 13개를 소개하고 있는데 강리도(아래)가 포함돼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이슬람 문명의 관점에서도 강리도가 획기적인 지도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리도이슬람 사이트 ⓒ 1001 inventions.com

 
이슬람 문명에 대한 캠브리지 총서 중의 하나인 <몽골 유라시아에 있어서의 문화와 정복>(Culture and Conquest in Mongol Eurasia, Thomas Allen 저, 2001)은 몽골 제국시대에 유라시아 땅에서 벌어진 인적, 문화적, 지적 소통과 교환 및 교류를 탐구한 역저이다.

이 책은 동방에 건너와 살았던 서방인, 그리고 서방에 건너가 살았던 동방인을 나열하고 있다. 그 중에 동방에서 활동했던 사양인들을 보면, 이태리인(상인, 의사, 사절, 악사, 성직자, 행정가), 프랑스인 및 오늘날의 화란지역인(성직자, 사절, 대장장이, 하인), 그리스인(군인), 독일인(광부, 포병), 스칸디나비아인(상인, 군인), 러시아인(왕족, 대장장이, 사절, 성직자, 군인, 미장이), 헝가리인(하인) 등이다.

아울러 동아시아에 건너온 서역인들 중에 다수를 차지한 것은 아랍인과 페르시아인이었다. 직종과 신분도 무척 다양했다. 즉, 레슬러, 행정가, 음악가, 번역가, 가수, 필경사, 상인, 직물공, 사절, 경리, 천문학자, 건축가, 의사, 제당공, 군인, 동물 사육사, 성직자, 지리학자, 포병, 역사가, 카펫 제조공 등이었다.

이처럼 몽골 평화의 시대에 유라시아의 동과 서에서 사람들이 자유로이 왕래하고 혼거함에 따라 지리지식과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졌을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 책은 당시의 세계 지도 실물은 모두 사라졌는데 다행히 훗날의 지도에 그 내용이 살아 남아 있으며,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한국의 강리도라고 짚는다.

이 책에 의하면 강리도에서 매우 놀라운 점은 유럽과 지중해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며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프리카가 처음으로 제대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책은 독일 국명도 나타나 있다고 설명한다.이러한 내용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세계 학계의 공통 인식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지도학>은 왜 그런 내용은 언급하지 않는 것일까?

서로 다른 문명간의 접촉과 교환의 결과로 원나라에는 놀랄 정도로 자세하고 많은 지리지식이 축적됐다. 그러한 세계사적 유산이 강리도에 집약돼 있는 것이다. 서양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탐험 항해 이전에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과 아시아에 대한 지리지식이 거의 없었다. 서양은 일찍이 아랍의 철학, 의학, 과학등은 접촉했지만 아랍의 지리문헌에 대해서는 17세기에 와서야 접하게 됐다. 그것이 15세기까지의 서양지도가 강리도에 비해 낙후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강리도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
 

이상으로 우리는 몽골 및 이슬람 문명사의 석학들이 강리도의 의의와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 우리의 <지도학>이 말하는 결점 투성이의 강리도와 나라밖에서 보는 강리도 사이에는 왜 이처럼 커다란 간극이 놓여 있는 것일까? 실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세계사적 맥락을 도외시하고서는 강리도의 의의와 가치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강리도에는 앞서 본 것처럼 거대한 몽골제국의 지리적 시야와 황금시대를 자랑했던 선진 이슬람문화가 담겨 있다. 조선의 주체적인 세계관이 또한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세계관의 확장과 혼융은 중화관이라는 단면경으로는 포착될 수 없다. 그런데 <지도학>은 '말할 것도 없이' 한족의 세계관이 강리도에 반영되었다는 점을 강조해 마지 않는다. 그것을 단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과 가치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강리도에는 아직 해독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 수면 아래 빙산처럼 감추어져 있다. 강리도에 대한 국내의 독자적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우리 학자들이 스스로 말한다. 국외의 연구 성과 마저도 국내에 소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고무적인 소식도 있다. 최근에 지도의 역사와 관련해 주목을 받는 한국 출신의 학자가 한 명 출현하였다. 박현희 뉴욕 시립대학 교수(예일대 박사, 역사학)이다. 그의 역저 <중국과 이슬람의 세계지도>(Mapping the Chinese and Islamic Worlds: Cross-Cultural Exchange in Pre-Modern Asia, 2012)는 강리도를 이슬람 지도역사와 관련해서 조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가 지난 해에 <아시아역사저널>(Journal of Asian history)에 발표한 논고에는 강리도의 최대 미스터리 중의 하나인 아프리카 형상의 원천을 이슬람 지도의 역사 속에서 탐색하는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다음 호에서는 그런 내용과 더불어 박현희의 강리도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피의자와 성관계 검사'가 보여준 절대 권력의 민낯
  2. 2 조국 PC 속 인턴증명서 파일은 서울대 인권법센터발
  3. 3 김세연 '동반 불출마' 사실상 거부한 나경원... 패스트트랙 때문?
  4. 4 김남길 "이젠 저도 건물주 됐으면 좋겠어요"
  5. 5 '까불이' 정체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동백이의 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