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고 무모하다는 불법체류, 남들은 모르는 속사정

'외국인 노동자'로 살면서 깨달은 것들,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등록 2019.05.02 10:37수정 2019.05.0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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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을 밟으러 유학길에 오르는 남편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8년 전, 나는 '현지 취업'을 꿈꿨다. 유학생들이 흔히 받는 학생 비자가 아니라 다른 비자를 받게 된 건 내게 일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남편이 미국 학교에 문의하면서 이뤄진 일이었다.

보통 유학생들이 받는 학생 비자의 경우 배우자는 학업도, 취업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유학생 커뮤니티에선 소위 '시체 비자'라고 불린다. 그런데 나는 학생 비자가 아니어서 돈을 내고 취업 허가증을 받으면, 남편이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어느 직종에서든 일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좌절된 '현지취업'의 꿈
 

한국에서 영어전공으로 마친 대학교, 대학원 학력과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밖에 없는 나에게 미국의 이 작은 동네는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 pixabay

 
도착하자마자 돈을 내고 취업 허가증을 받았다. 단돈 700만 원만 손에 쥐고 떠나온 길이었기에 취업 허가증을 받는데 들어가는 400달러(한화 46만 원)를 내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취업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영어전공으로 마친 대학교, 대학원 학력과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밖에 없는 나에게 미국의 이 작은 동네는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눈을 낮춰 학교 건물 청소 자리에서부터 요양원 빨래 담당 직원, 은행 창구 직원, 건설업체 경리직까지 직종과 급여 수준을 가리지 않고 50군데 넘게 지원서를 넣었지만 좀처럼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때 도서관에서 면접 요청을 해왔다. 공공도서관 시급 자리에 넣은 지원서를 보고 온 연락이었다. 하지만 미국 도서관 시스템을 전혀 모른 채 무턱대고 간 면접장에서 나는 횡설수설하다가 '멘탈'이 털린 채 돌아왔다. 

그렇게 나의 현지 취업의 꿈은 좌절되었다. 곧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취업 허가증은 만료되었고, 가지고 온 돈도 거의 모두 소진되었다. 남편은 학기 중 강의를 하는 대가로 학교에서 월급을 받았다. 방학 중엔 학교 내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나의 취업허가증을 갱신하려면 다시 400달러를 내야 했는데, 그만한 여유를 내기 쉽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무자격, 무경력 외국인 여성의 선택지

아이가 태어나기 전후로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영어 과외를 원하는 한국인 자녀들을 찾는 것이었다. 소위 '캐시잡'(바로 현금을 받는 일자리)이라고 불리는 일이라도 해야 매달 남는 것 없이 똑 떨어지는 생활비에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아이가 걸을 수 있을 때쯤부터는 현지 상황에 맞는 새로운 경험을 쌓아야겠단 생각에 무턱대고 대안 교육기관을 찾았다. 무학력자나 중·고등학교 중퇴자들에게 수업을 제공하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게 해주는 무상 교육기관이었다. 외국에서 학사, 석사까지 했지만 현지에선 아무 쓸모 없는 학력의 소유자인 나에게 이 학교는 기꺼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곳에서 제공하는 돌봄방에 아이를 맡겨놓고 하루 5시간씩 1년 반 가까이 수업을 들었다. 그 결과 미국 고등학교 졸업에 해당하는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고, 보육교사 자격증 준비반에도 등록할 수 있었다.

실습, 자격증, 허가증, 모두 결국 돈 문제

학교에서 제공하는 보육교사 자격증 준비반은 무료였지만 480시간의 실습 시간을 채우는 건 각자의 몫이었다. 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몇 시간씩 걸려 왕복해야 했던 나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꾸역꾸역 실습 시간 350시간 남짓을 채워가던 중 우리 가족에게 중고차가 생겼다. 남편이 학교에서 받은 월급 중 미국 정부에 낸 세금의 환급분이 중고차 한 대는 살 수 있을 만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차가 생겼으니 수월해지겠구나 했는데 또 다른 어려움에 부닥쳤다. 보육교사 자격증 심사를 위해 공인 인증기관에서 평가를 받으려면 450달러를 내야 했다. 그동안 실습하던 보육 기관에서는 정식으로 채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격 평가를 하게 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결국 취업 허가증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몇 년 만에 다시 400달러를 내고 취업 허가증을 신청했다. 이번에도 400달러를 내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 여파로 취업 허가가 나는데 예전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이때 알았다. 

6월에 낸 신청서를 10월 중순이 되어서야 통과시키는 바람에 나는 남들이 8월에 취업했다가 그만두고 빠져나간 보육교사 자리를 채우는 꼴이 되었다. 미국 보육 기관에 왜 끊임없이 공석이 생기는지 직접 일해보면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낯선 나라에서 일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도, 일을 그만두게 되는 계기도 따지고 보면 모두 '돈' 문제였다.

불법체류자들의 처지가 코앞에 닥친 내 일이 되었다
 

남편이 졸업 전에 미국에서 자리를 얻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다. 그것도 희소질환 진단을 받은 아이다. 이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갈 일이 막막하고 두려운 상황이다.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 되니 이 땅의 수백만 불법체류자들의 처지가 바로 코앞에 닥친 내 일이 되었다. ⓒ pixabay

 
지난해 10월 중순 내 손에 들어온 취업허가증은 올해 8월에 만료된다. 올여름에 졸업하는 남편의 비자가 8월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기혼 외국인 여성에겐 우여곡절 끝에 취업에 성공해도 독립적으로 법적 체류 지위를 가질 권리가 없다. 

남편이 졸업 전에 미국에서 자리를 얻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다. 그것도 희소질환 진단을 받은 아이다. 이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갈 일이 막막하고 두려운 상황이다.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 되니 이 땅의 수백만 불법체류자들의 처지가 바로 코앞에 닥친 내 일이 되었다. 

아이는 이곳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갖고 있으니 아이를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한국에 들어가서 돈을 보낼까, 남편을 한국에 보내고 아이와 숨어 살며 캐시잡으로 생계를 유지할까 등 여기저기로 번져가는 생각을 주체할 수 없어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남미 여러 나라에서 가난과 폭력에 지쳐 아이들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국경을 넘게 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다 붙잡혀 수용소에 갇힌 뒤 가족과 분리된 채 몇 개월씩 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불법체류, 불법 이민이란 게 처음부터 어떤 악의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생각에 가 닿았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며 특히 자녀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 아이들의 삶과 미래까지 걸린 일일 터였다. 그동안 머리로만 알던 그런 일들이 비로소 내 것이 되어 와닿는 순간이었다.

어디서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다면 불법을 자처할 사람은 없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와 나중에야 자신이 불법체류자임을 알게 된 언론인 호세 안토니오 바르가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불법일 수 없다." 

그리고 한국의 인권활동가 류은숙은 이렇게 말한다. 

"이주는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여정이다." 

어디서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다면 불법을 자처할 사람은 없다. 지금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가면 존엄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긍정적인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위험하고 무모하다는 걸 알면서도 '불법체류'를 떠올렸다. 

무경력, 무자격 외국인 여성으로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숱한 시간과 돈을 바쳐야 했던 내가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무경력, 무자격 기혼 여성으로 노동 시장의 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희소질환으로 인해 생김이 다른 내 아이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어디서나 싸울 태세를 갖추고 날카로운 자세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고국은 과연 내 아이에게 안전할까. 아이를 위해 여기 남으면 나라는 존재는 정말로 불법이 되는 걸까. 

정규직,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파견, 용역, 일용직, 시간제, 해고노동자, 그리고 불법 외국인 노동자. 당장 올여름 나의 신분과 거주지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없이 많은 말로 구분 지어진 노동의 세계를 생각해본다. 내가 모국을 떠난 사이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들어와 사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 중엔 지금의 나와 같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불법체류자로, 불법 노동자로 남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숱한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도 그 어려운 결심을 해내야 했을 사람들이 부디 무사히 하루 치의 노동을 마치고 하루 치의 평안을 얻었기를 바란다. 나도, 그들도 부디 존엄을 지키는 삶을 찾아 끊임없이 용기 내 살아가기를.
#불법체류 #노동절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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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활동가로 살고 싶은 사람. 아이의 선천성 희소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T 증후군)'을 계기로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다.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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