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와 박근혜정부의 무능부패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 95회] 세월호는 출항 때부터 사고를 예비하고 있었다

등록 2019.05.07 16:22수정 2019.05.0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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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 및 어선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 전남도청

2014년 4월 16일 경기도 안산 소재 단원고 2학년 325명과 교사 14명이 수학여행을 떠났다. 행선지는 제주, 교통편은 인천에서 출발하는 청해진해운 소속 세월호였다. 이 배에는 민간인들도 함께 탔다.

세월호는 항해도중 진도 맹골수도에서 좌초하는 변을 당하였다. 조난 신호를 받고 달려온 해경은 배가 가라앉던 1시간 30분 동안 허둥대기만 하여, 제 발로 탈출한 이준석 선장 등 선원과 일부 승객만 구조하고, 304명은 고스란히 수장되었다. 온 국민이 TV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난 참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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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 및 어선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 전남도청

 
세월호는 출항 때부터 사고를 예비하고 있었다.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된 이 배를 도입한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로 이름을 바꾸고, 이명박 정부가 선령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 해주면서 노후 선박인데도 운항을 계속할 수 있었다. 여기에 출항할 때 화물은 적재기준치보다 1,065톤을 초과하는 과적상태였다. 당일뿐만 아니라 늘상 그렇게 하면서 돈벌이에만 급급했고, 해양경찰서 등 관계기관과는 '관피아', '해피아' 등 유착관계여서 눈감아 주었다. 해난 사고는 예비되었으나 어디에도 통제기관은 없었다.

세월호 침몰이 인재였다면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관재였다. 화급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해양경찰은 그동안 '거래'해온 구조선을 부르느라 골든타임을 놓치고, 저임금의 임시직으로 채용된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늘어놓아 탈출의 기회까지 빼앗았다. 선장이 속옷바람으로 탈출하고 선원들이 뒤를 따르고, 해경이 그들만을 구조할 때 인근의 민간인들이 그나마 몇 사람을 구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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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애원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던 중 한 실종자 가족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다. ⓒ 이희훈

국민이 더욱 분노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때문이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임무인 데도, 그 시각 대통령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고, 행방 또한 묘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서실장(김기춘)은 "청와대는 재난구조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자 정부는 청해진해운 선주 유병언을 희생양으로 찍었다. 유병언의 탈세ㆍ배임ㆍ횡령 등 탈법과 비리가 속속 드러났다. 그리고 그는 어디론가 행방을 감췄다. 검ㆍ경과 군인들까지 수천 명이 동원되어 쫓았으나 향방이 묘연했다. 여러 날 후 그는 어느 과수원 잡초 속에서 유골로 발견되었다. 유골의 진위를 놓고도 사람들은 의문점을 보일만큼 불신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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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 요구사항 듣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피해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 하도록 모든 분들에게 부탁을 했다"며 "지금 심정이 어떤 의로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깝고 애가 타고 한순간 한순간 참담하시겠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구조 소식을 함께 기다리시기 바란다"고 위로했다. ⓒ 유성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둘러싸고 정부 여당의 태도는 대단히 미온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유족들의 거듭되는 면담 요청을 매몰차게 거부하고, 집권세력은 유족들을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어렵사리 국회에서 제정한 세월호 특별법은 정부가 마련한 대통령령에서 무용지물로 만들고자 했다.

정부는 해경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청을 신설하는 등 모든 책임을 세월호 측과 해경에 떠넘겼다. 하지만 세월호참사의 배경은 '관피아'로 상징되는 부패한 관리들과 업자의 유착 그리고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사후 진상규명에 대한 책임회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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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살려내라" 3일 오후 서울 청계천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실종자 무사귀환을 위한 국민촛불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 이희훈

 
많은 국민이 촛불을 들거나 서명을 하면서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물리력으로 대처하거나 거액의 보상(배상)으로 국민의 시선을 돌리고자 했다. 족벌신문들은 '세월호 피로증'을 부각시키면서 국민의 관심을 떨어내고자 하고, 일베회원들은 유족과 시민들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는 야만성을 보였다.

세월호 유족과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에 텐트를 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성의있는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진상은폐와 유가족 이간ㆍ분리에 힘을 쏟았다. 정부는 '박근혜 7시간'의 행적을 은폐하고자 각종 조작을 일삼고 유족들이 마치 보상금을 노리고 장기간 농성하는 것처럼 여론을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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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0416' 세월호 광장 시설물 철거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참사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 활동을 위한 시설물(2014년 7월 설치)들이 자진철거 되고 있다. 철거 후 합동분향소 자리에는 '기억, 안전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오는 4월 12일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 권우성

유족과 시민들은 5년 동안 각종 집회와 농성을 통해 사건의 완전한 진상을 규명하는 것만이 앞으로 유사한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광화문과 팽목항에서 힘겨운 세월을 보내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은 2019년 4월, 서울 광화문 광장을 지키던 세월호 천막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작은 공간의 목조 전시관이 세워졌다. "아픈 공간을 넘어 재난 없는 나라를 만들자"는 염원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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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년 8개월간 서울 광화문광장을 지킨 세월호 천막이 떠난 자리 12일 서울시의 추모시설인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문을 열었다. 이 공간은 79.98㎡(약 24평) 규모의 목조 건물로 전시실 2개와 시민참여공간, 안내공간으로 구성된다. ⓒ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는 온갖 비리와 비정상의 종합세트와도 같았고, 사후 대처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상징하였다.


청해진해운이 각종 비리와 부실한 상태에서 20년 간이나 인천 - 제주 황금노선을 독점한 배경과 이를 가능케 해준 '뒷배'의 실체,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보고라인과 박근혜 대통령의 역할 특히 '골든타임' 7시간의 행적 등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성역없이 밝혀져야 꽃다운 젊은이들이 영원한 안식에 들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현대사_100년의_혈사와_통사 #세월호참사 #안산_단원고 #세월호 #청해진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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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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