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만난 나> - 베스트 오퍼 -

검토 완료

윤수진(sjhk0324)등록 2019.04.30 17:45
< 베스트 오퍼, The Best Offer>
 
 
개요: 범죄/이탈리아/ 131분
개봉: 2014년 6월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르 (시네마천국)
출연: 제프리 러쉬, 실비아 획스, 짐 스터게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를 만났다. 어릴 적 동네 친구였고 거의 10년 만에 보게 된 그녀. 어릴 때는 선머슴 같다고 생각했는데 스무 살의 그녀는 이목구비가 또렷한 계란형 얼굴에 큰 키, 날씬한 몸매로 우리 또래의 여자가 부러워할 만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화려하게 튀는 옷을 입고 다녀 더욱 눈에 띄었다. 머지않아 그녀의 과에서는 그녀에 대한 수근거림이 시작되었다. 여학교라 남학생이 많은 과랑 미팅을 하거나 MT를 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남학생들의 시선과 관심이 모두 그녀에게 쏠려 그녀는 다른 여학생들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녀와 나는 따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등하교길 같은 방향의 지하철을 탔기에 가끔 애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다른 여학생들의 반응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단지 미팅을 소개팅으로 바꾸었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고 나와 친구들이 교문을 내려갈 때 그녀가 보였다. 학교 앞에는 근사한 차가 있었고 그 안에서 창문이 열리며 차 안 남자의 손짓에 그녀는 짧은 플레어스커트를 팔랑거리며 뛰어가고 있었다. 수다를 떨며 깔깔거리던 우리에게 잠시 정적이 흘렀고 부러운 눈빛으로 그녀가 차에 사뿐 올라탈 때까지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 친구는 그녀가 남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고 아무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남자와 우리들의 남자친구를 비교했고 그녀와 우리를 비교하며 묘하게 기분 나쁜 감정을 떡뽁이로 달랬다. 그 이후에도 그녀는 화려하게 교정을 활보했으며 그녀를 기다리는 차가 자주 바뀐다는 얘기만 종종 떠다녔다.

지하철에서 그녀를 보게 된 어느 날 나는 궁금했던 말을 꺼냈다. "너는 어떤 스타일의 남자가 좋아?" "글쎄...나한테 무언가를 주는 걸 아까워하지 남자?" 그 말을 내가 확실히 알아듣지 못하자 그녀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 난 남자친구랑 밥을 먹을 때 그 음식점에서 제일 비싼 거 먹어, 나한테 얼마를 쓰는가가 나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척도라 생각해." 난 그녀가 남을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그녀와는 대학 졸업 후 만나지 못했고 어떻게 지내는 지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녀는 과연 그녀가 바라는 남자를 만났을까?
 
 
 
 
 
'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최고의 가격은 얼마일까? '
 
 
영화의 제목인 <베스트 오퍼>는 '경매에서 최고의 제시액'을 뜻하는 말이지만 영화에서는 인생과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작품을 만났을 때 제시할 수 있는 최고가는 얼마일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감독인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는 1988년 영화 < 시네마 천국>을 제작해 아카데미, 베니스, 칸 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의 상을 받았었다.


이 영화는 미술 경매를 배경으로 긴장감 있는 스토리와 함께 눈이 호강할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 올드만(제프리 러쉬)의 비밀의 방은 그 위용이 압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나중에 이 빈 공간이 더욱 놀랍고 사무치게 다가온다.


올드먼은 평생을 결벽증과 강박에 갇힌 채 고가의 미술품 경매와 수집에만 매달려 산다. 그 방면에서 이미 최고의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 깐깐하고 차가운 성격의 그는 극소수의 몇몇 사람들과만 교류할 뿐 넓은 대저택에 홀로 지낸다. 경매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화가 친구 빌리(도널드 서덜랜드)를 비밀리에 경매에 참가시켜 원하는 여인의 초상화 작품만을 따로 수집한다. 집안에 금고처럼 만든 비밀의 방 안에서 수집한 그림들을 홀로 감상하는 낙에 산다.

그러던 그에게 자신이 살던 집의 고가구와 미술품을 감정해 달라는 클레어 이벳슨(실비아 획스)의 묘한 전화를 받게 되고 그 집에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미스테리하게 전개된다. 광장공포증과 대인공포증으로 두문불출하며 은둔하는 클레어에게 묘한 동질감과 동시에 보호본능과도 같은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되면서 버질은 자신의 그동안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커다란 사건을 겪게 된다. 여기에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속여 온 채 오랫동안 자신만 몰랐던 치밀한 계획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커다란 충격에 빠지게 된다. 모든 것을 잃고 경찰서 앞까지 갔다가 차마 들어가서 신고하지 않는 버질은 클레어가 말했던 프라하에서의 추억의 장소 카페 <Night and day>를 찾아가 버질을 기다린다.
 
 
 
 
올리버는 예술품에서 위조품을 정확하게 걸러내듯이 인생에서도 진품을 정확히 감별할 자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영화 마지막에서 클레어를 기다리며 자신은 진품을 선택했다는 가느다란 믿음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의 진품 위조품에 대한, 슬프지만 치열한 질문을 한다.


작품에서는 진품 위조품을 구별할 수 있지만 사랑이나 관계에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대학교 때 그녀가 그렇듯 상대방이 그녀에게 최고의 금액을 제시했다 치더라도 그것이 과연 사랑일까? 물건과 달리 사랑은 그것을 유지시켜 주는 힘이 없다면 그 제시액은 의미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사랑에 진실이니 위조니 하는 그런 접근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사랑이 진품이라고 믿는 수 밖 에는 없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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