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변했다 "스트레스 받는 아이, 학교 밀어넣지 말자"

[교육은 기회다 ②] 한산중학교 4층에 있는 '미래학교'가 특별한 이유

등록 2019.05.12 11:59수정 2019.05.12 11:59
1
원고료로 응원
학교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거나 학업을 중단하면 이를 패배 혹은 실패로 치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도 교육이나 진로의 '끈'을 잡을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는 학생, 부모, 교사들을 만나본다.[편집자말]
"처음 그 마음으로."

이 일곱 글자 위에 "뜻을 이룬 사람들이 일컫는 일곱 자로 된 말"이란 설명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도 역시 이런 설명이 있었다. "인간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여덟 자로 된 말"이라고 했다. "다시 일어서게 하는 아홉 자의 힘"에 해당하는 문장은 "지금도 늦지 않았단다"였다.

계단을 오르다가 보게 된 액자 안에 있는 글귀들이었다. 임상옥 교사(교무부장)는 "학생들이 보면서 꿈에 대한 도전이 늦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작년 캘리그라피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전시물"이라면서 "등굣길에 1층부터 4층까지 계단을 오르면서 아이들이 스스로의 마음 또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한 번 씩 생각해보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문제아들이 아니라 각양각색 아이들이 오는 곳"
 

한산중학교 미래학교 내 계단 벽에 있는 글귀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안해인

 
이 건물 4층에는 '미래학교'가 있다. 서울 강동구 한산 중학교 안에 있는 또 하나의 학교 이름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대안교육을 맡긴 곳으로 2008년 중학교 과정 2개 학급으로 개교했다. 실용음악, 원예, 도자기 공예, 제과제빵, 생활 스포츠 등 다양한 수업을 진로·체험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원래 다니던 학교에 학적을 두고 있는데, 미래학교 교육 과정을 마치면 해당 학력을 인정받아 각자 학교로 돌아가 진급하게 된다.

매년 여덟 차례에 걸쳐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이 학교를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임 교사는 "이른바 문제아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온다'고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각자 다르고 이유가 있다"면서 "더 대안적인 교육 방법을 찾고 있거나 소규모 학급을 원하는 등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온다"고 말했다.

미래학교가 진행하고 있는 '학부모 소통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그 중에는 정식 입학 전에 5∼10일 간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하는 '준비 적응 프로그램'도 있는데, 주어진 과제를 함께 수행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며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임 교사는 "'이런 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 아이가 적응에 힘들어했는데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거 같다'고 하는 어머님도 있다"고 전했다.


이 학교에 보내기 전 걱정은 없었을까? '문제아들이 있는 학교'라는 선입견도 혹시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학교에 오고 나서 학생에게 변화가 있었다면 그건 무엇일까? 미래학교 학부모 중 박○○(42세, 여)씨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실, 처음에는, 엄마로서 걱정 많았지만"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한산중학교 부설 미래학교 ⓒ 안해인


먼저 어머니는 "사실, 위험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 오히려 더 안 좋은 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걱정이 컸다"면서 "이제는 이런 생각이 선입견이란 걸 알게 됐고, 각자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주위에서 '고등학교 가서 공부를 어떻게 따라가느냐'는 식으로 불안하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아이가 마음이 편해야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거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힘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아이가 주위 시선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학교 생활에 두려움이 컸는데, 지금은 너무 밝고 잘 적응하고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일반 교육 틀 안에서 스트레스 받는 아이를 학교에 밀어 넣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교육이기에 지금은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씨와 나눈 일문일답.

- 미래학교로 아이를 보내기 전 했던 걱정이 있었다면?
"'그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어떨까?'란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사실, 위험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오히려 우리 아이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걱정이 컸다. 또 대안학교라는 기관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검증된 기관인지, 커리큘럼은 제대로 수행하는지, 점심이나 시설 등에 대해서도 엄마로서 걱정이 많았다."

- 지금은 생각이 어떤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선입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가졌던 막연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각자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상처가 있다고 해서 다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 모인 학교라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마음이 편해야"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김학윤 한산중학교(미래학교) 교장, 정하영 교감, 임상옥 교사(교무부장) 그리고 미래학교 선생님들. ⓒ 안해인


- 대안 교육에 대한 주위 시선은 어떤가.
"먼저 대안학교가 '부모가 방관한 아이들'이 오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절대 아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아이에게 매우 신경을 많이 쓰며 심리상담도 병행한다. 대안 교육기관은 단지 아이가 일반 학교에서는 얻지 못하는,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기관이다. 또 주위에서 우리 아이가 대안교육을 받는다고 하면 많이들 '그래서 고등학교 가서 공부를 어떻게 따라가…'라며 불안해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마음이 편해야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힘을 얻는 게 중요하다. 일반 교육의 틀 안에서 스트레스 받는 아이를 다시 학교에 밀어 넣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안교육이 아이에게 필요했던 교육이기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 미래학교를 다니면서 느낀 아이의 변화가 있다면?
"우리 아이가 원래 다니던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교우 관계 문제도 있었다. 아이가 원래는 주위 시선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학교 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컸는데 지금은 너무 밝다. 잘 적응하고 선생님과도 소통도 잘 하면서 훨씬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제과제빵에 흥미를 느낀다고 했는데, 요즘은 집단 상담이나 실용음악, 생활 스포츠 수업도 즐겁다고 하더라.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굉장히 '오픈 마인드'로 다가가 주시는 거 같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단순히 '공부, 공부'만 해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줄 게 아니라 아이가 힘들어하면 자신감을 되찾을 기회도 주고, 다른 환경에서 공부하게 해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대안학교가 한국 입시와는 동떨어진 세계지만, 다양한 걸 접하며 청소년기에 숨 고르며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갖게 해주는 기관이다. 본인도 스트레스 받고, 부모도 만족도가 낮다면 일반 교육을 강행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푸시'만 한다면 점점 아이와 멀어지고 더 큰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어른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감싸줘야"

미래학교에서 취재를 마치고 임상옥 교사와 다시 전화로 학교 액자 안에 있는 글귀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앞서 학교에서 만났을 때 "살아가다 '내 편이 돼 준 학교가 있었다'고, '그래도 여기서 위안을 받아서 괜찮았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길 희망한다"면서 "학생들이 따뜻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 글씨체가 다 다르다. 아이마다 다른 모양과 특성을 갖고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개성으로 잘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귀를 전시했다. 인구 70억 명이 다 같을 수는 없지 않나. 이 사회와 어른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아이들을 감싸줘야 한다. 서로 존중해주고 자기만의 특성을 키워 나가는 것, 그런 생각을 아이들 뿐 아니라 주위 어른들과 사회도 가져야 한다. 아이들이 멋진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교육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