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원의 불길 미투, 여성해방운동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 99회] 미투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등록 2019.05.11 16:41수정 2019.05.1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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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형법 낙태죄 조항(제269조 1항, 270조 1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한마디로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7년 만에 '4대4'에서 '7대7'로 뒤짚혔다.

1953년 낙태죄가 형법에 포함된 지 66년 만에 형법의 개정을 보게 되었다. 헌재는 단서 조항으로 임신 초기의 낙태 허용 등에 대해서는 국회의 입법으로 넘겼지만 "임신 여성이 겪은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ㆍ경제적 사유에 의한 갈등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낙태를 예외 없이 형사 처벌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처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란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여성을 보호할 때 태아의 생명권도 보호된다는 전제도 분명히 했다.(한겨레, 2019. 4. 12.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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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헌법재판소가 7년 전의 판결을 압도적으로 번복한 데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미투(Me Too) 운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미투 운동은 단순히 성폭행ㆍ성폭력에 대한 고발운동을 넘어 여성차별ㆍ여성혐오 등의 경험을 공개함으로써 남녀평등으로 가고자 하는 한국사회의 여성해방운동의 일환이다. 여성들이 1919년 3ㆍ1혁명에서 사상 처음, 조직적ㆍ집단적으로 참여한 이래 100년 만에 보다 수준 높은 차원에서 궐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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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29일 오후 JTBC뉴스룸에 출연해 검찰내 성추행 피해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 JTBC 화면

 
서지현 현직 검사가 2018년 1월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검찰 내의 안태근 범죄자를 비롯하여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미투 운동을 촉발시켰다. 서지현이 터뜨린 불꽃은 곧바로 요원의 불길로 번지고 국민적인 미투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서지현은 "거악(巨惡)을 제거하고자 검사가 되었는데 검찰이 바로 거악이었다."면서 법조사상 최초로 자신이 속한 검찰에 메스를 댔다.

미투 운동은 그동안 음침한 남성사회에서 은폐되어온 성폭력 구조를 깨뜨리는 변혁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시인 고은, 극작가 오태석ㆍ이윤택, 배우 조민기, 조재현, 이영하, 충남지사 안희정, 전 의원 정봉주, 방송인 김생민,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 조재범, 로타 최원석 등 각계의 명사 20여 명이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여기에 '조선일보 방사장' 일가 3명이 명단을 올렸다.
  

한국여성연극협회 관계자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연극계 성폭력 사태를 규탄하며 미투(#Me_Too)운동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2018.03.08 ⓒ 최윤석

 
성폭력 폭로는 연예계 뿐만 아니라 국회ㆍ학계ㆍ관계ㆍ언론계ㆍ스포츠계 등 전방위적으로 전개되었다. 대부분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성폭력은 경제력이나 권력을 가진 남자들의 성적 도착에서 감행되고, 여성을 성적 배설구로 인식하면서 자행되었다.

권력자들의 성폭력 행위는 뿌리가 깊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중앙정보부가 차출해온 미녀들을 상대로 주기적으로 '성파티'를 즐겼다. 전두환 정권 때 부천경찰서 문귀동 경장은 1986년 위장취업을 했다는 이유로 붙잡혀온 권인숙을 강제추행하고, 5공 검찰은 "성까지 혁명의 도구로 이용한다"고 민주화운동을 매도했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별장 성상납 문제는 정치현안이 될 만큼 의혹 덩어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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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이 사건을 재조사 중인 검찰과거사위원회(아래 과거사위)를 향해 "부실 조사, 2차 피해"를 폭로하며 "조사팀 교체"를 요구했다. 피해자 A씨는 9일 오전 대검찰청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과 기자회견을 열어 "진실을 외치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과거사위는 형식적인 조사를 진행해 저를 이 자리까지 나오게 만들었다"라며 이 같이 밝혔다. ⓒ 한국여성의전화

 
여성들의 자기희생적인 미투 운동에도 불구하고 사회 일각의 시각은 여전히 싸늘하거나 적대적이다. '꽃뱀'론이 악의적이라면 '2차피해'는 보다 구조적이다. 성적 피해자를 꽃뱀으로 매도하고, 언론이나 검찰 출두에서 실명ㆍ영상이 보도되고 더러는 피해 사실이 왜곡된다.   

피해자 10명 중 7명은 직장을 떠나고 일상복귀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남성위주 사회의 병폐 현상이다. 범죄자들에 대한 재판과정도 여성 차별이라는 뿌리 깊은 통념의 벽을 깨뜨리기 쉽지 않다. 피해자의 말이 왜곡되거나 의심되고 심지어 옷차림까지 시빗거리로 삼는다.

미투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3ㆍ1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추구했던 가치 중에는 남녀평등과 인간의 존엄성이 꼽힌다. 일방이 다른 일방의 육체를 강박으로 탐욕하는 것은 민주공화주의에 대한 도발이고 인권유린에 속한다. 미투 운동이 여성해방, 나아가서 인간평등의 헌법가치를 구현하려면 남성위주의 가치관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 사안 역시 현재진행형이어서 약간의 공란을 두고 살피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현대사_100년의_혈사와_통사 #미투 #여성해방운동 #METOO #미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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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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