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민주화운동→평화운동의 길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 101회]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②

등록 2019.05.14 16:17수정 2019.05.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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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100주년을 앞둔 24일, 역사 타방을 위해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태극기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2019.2.24 ⓒ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지금 엄중한 역사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3ㆍ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현시점은 역사의 정도(正道)와 정맥(正脈)을 회복하여 남북화해와 민주공화정의 방향으로 발전하느냐, 식민지 잔재와 남북대결, 각종 적폐를 미봉한 채 전제적 퇴행을 거듭하느냐의 갈림길이다.

국가도 하나의 유기체에 속한다.

창업→수성→경장→쇠퇴의 과정을 걷게 된다. 자주독립과 반봉건 민주공화제를 기치로 봉기한 3ㆍ1혁명과 이를 바탕으로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창업이라면,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6ㆍ25공산침략 분쇄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는 수성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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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공연은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방북중인 남측대표단이 지켜봤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금은 경장(更張)의 시기다. 다른 용어로 말하면 개혁이다. 조선왕조가 병자ㆍ정묘 양란을 겪고도 경장을 하지 못한 채 낡은 봉건체제를 유지하다가 결국 왜적에게 국치를 당하고 말았다.

1884년의 갑신정변, 1894년의 동학혁명이나 갑오경장 중에서 하나만이라도 성공했다면 나라가 망하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1884년 갑신정변은 1868년 일본 메이지 유신에 불과 16년 차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이 근대적 국가개혁을 실천할 때 조선왕조는 기껏 왕권이나 강화시키는 칭제건원 따위로 미봉하고 말았다. 경장의 시기에 제대로 개혁을 하지 못하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세계문명사의 성장과 소멸과정을 연구한 아놀드 토인비는 명저 『역사의 연구』에서 "창조적인 엘리트 집단이 부패하면 그 문명권은 몰락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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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외벽에 독립운동가 (왼쪽부터) 여운형, 남자현, 김구, 안중근, 김상옥, 윤봉길, 유관순, 이봉창, 안창호, 이회영의 전신 모습이 대형 현수막에 그려져 내걸려 있다. ⓒ 권우성

우리나라는 독립운동가들의 피어린 투쟁으로 창업이 이루어지고, 민주화운동과 산업화로 어느 정도의 수성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일제잔재ㆍ군사독재잔재, 사대주의세력ㆍ냉전분단세력의 발호로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이들이 남긴 적폐는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 세력의 공동분모는 조선후기 집권층으로서 결국 망국의 주역이고 식민지의 적자인 '노론벽파'의 계열이거나 정신적 상속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위대한 촛불혁명이 기대했던 만큼 성과없이 사위어가고 있다. 6개월 동안 연인원 1,700만 명이 참여하여 세계민주주의 역사의 신기원이라는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던 촛불혁명이다. 국정농단과 비리의 우두머리 중 하나인 이명박씨는 석방되고, 박근혜씨도 석방하라고 아우성이다.
  

박근혜퇴진 촛불대회 박근혜퇴진을 외치면서 2016년 10월 부터 약 6개월 동안 1700만 명이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었다. 박근혜는 탄행되었으나 당시의 구호였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처럼 국민이 주인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인터넷 인용 ⓒ 신민구

 
촛불혁명의 성과로 민주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여전히 힘이 부치는 것 같다. '쿠데타적 수법'으로 자행한 각종 적폐와 비리를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처리하려니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린다. 문재인 정부 3년차에 접어들면서 개혁의지도 묽어지는 듯 하다.


문제는 적폐의 대상이 너무 강고하다는 데 있다.

정치권ㆍ검찰ㆍ사법ㆍ족벌언론ㆍ국정원ㆍ재벌ㆍ대형교회ㆍ수구지식인ㆍ각종 관변단체 등 하나도 개혁을 못하였다. 이들은 강고한 기득권층을 형성하면서 개혁에 발목을 잡고, 요즘은 문재인 정부 타도를 말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사회가 외형적으로는 대단히 다이나믹한 사회인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는 일제강점기, 짧게는 쿠데타세력이 수 십년 동안 기득권층이 되면서 축적된 인적ㆍ물적 기반으로 세력을 키우고 끼리끼리 연대하면서 구조화되었다. 정부의 개혁작업은 거대한 '빙산'은 손도 못 대고 '일각(一角)'만 정리하는 형국이다. 따라서 그들의 본태와 구조는 변함이 없고 지엽말절만 흔들리는, 그래서 '다이나믹 사회'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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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공연은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방북중인 남측대표단이 지켜봤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그들은 민주개혁세력을 좌경ㆍ종북으로 몰고 '개혁의 피로감'을 선동하면서, 조그마한 비리나 실책에는 확대조작한다. 자신들은 황소를 훔치면서도 상대가 계란 하나 훔치는 경우는 대서특필하고 광장을 누빈다.

그렇게 해서 개혁을 실종시키고, 다시 기수를 바꾸어 권력을 찬탈하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세습한다. 필요하면 외세를 끌어들이고, 북쪽과는 뒷거래를 시도한다. 늘 그래왔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혁명적 정화'를 주장하였다. 우리 역사가 창업ㆍ혁명ㆍ쿠데타ㆍ반정ㆍ반란 등을 모두 겪었으나, 한 번도 '혁명적 정화'를 치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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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은 '최순실 태블릿 PC' 속 문건을 공개하면서 박근혜 탄핵의 일등공신이 됐다. ⓒ JTBC 뉴스룸 화면 캡처

해방 후만 해도, 친일매국노를 처리하는 반민특위 활동을 이승만이 분쇄시키고, 4ㆍ19혁명 후 자유당  12년 폭정을 심판할 때 박정희가 5ㆍ16 쿠데타로 뒤엎었다. 박정희 18년 독재의 처리는 전두환의 쿠데타로 덮혀지고, 6월항쟁 후 전두환의 폭정은 3당야합으로 날라갔다. 지금 '이명박근혜'의 헌정유린과 비리ㆍ적폐청산이 다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현대사는 여러 차례 적폐청산과 신생의 기회를 놓치고 수구사대세력에 다시 권력이 돌아갔다. 동학혁명은 좀 더 빨리 남북접이 한 덩어리가 되어 전주성에서 지체하지 말고 상경하여 무능한 왕조를 타도했어야 했다.

3ㆍ1혁명 당시 좀 더 세차게 밀어부쳤으면 어땠을까. 4ㆍ19혁명 때 시민ㆍ학생들이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끌어내어 법정에 세웠어야 했고, 6월항쟁 당시 적어도 전두환과 노태우를 타도했으면, 이후의 현대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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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부산역 대기실에서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 TV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 정민규

촛불혁명이 박근혜의 탄핵만으로 마무리 된 것은 대단히 미흡했다. 그를 뒷받침해온 정치세력과 정당은 문을 닫고 총선거를 다시 실시하여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했다. 우리 국민성인지, 리더들의 실책인지, 혁명과 개혁의 결정적인 시기 '마지막 단계'에서 주춤하거나 발을 빼면서 그때마다 '혁명적 정화'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3ㆍ1혁명의 성과로 태어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자주독립'과 '민주공화'라는 두 테제를 내걸고 수립되었다. 이것은 임시정부의 목표이면서 바로 법통을 승계한 대한민국의 가치로 이어진다. 하지만 '자주독립'은 유엔회원국 중 유일하게 전시작전지휘권이 외국군에게 넘겨진 상태이고, 올 한해에 주한미군 주둔경비(한미방위비분담금)가 1조 389억 원에 달한다. 독일ㆍ일본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두 나라는 전범국가였지만, 우리는 연합국이었다. 이명박근혜 정권 때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산 무기를 구입하였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 김동수

모두가 알고 있듯이, 헌법 제1조는 '민주공화국'이다. 군사독재자들도 이 조항만은 손대지 못하였다. 그동안 '민주'는 4ㆍ19혁명ㆍ반유신투쟁ㆍ부마항쟁ㆍ광주민주화운동ㆍ6월항쟁ㆍ촛불혁명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실천되고 있다. 하지만 '공화'는 아직 초보적인 발걸음도 떼지 못한 실정이다.

거칠게 분류하여, 민주가 정치적 권리라면, 공화는 더불어 사는 공공성과 복지 쪽이다. 세계 두 번째의 빈부양극화, 10%의 부자가 국민총생산량의 43%를 소유하는, 독점현상은 국가적 재앙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

'30-50클럽'에 세계 7번째로 진입했다. 경제수준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저소득층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고소득층의 소득은 크게 증가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소요와 폭동을 불러온다고 했고, 플라톤은 <법률론>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4배 이상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런 주장이 꿈같은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지는, 한국의 빈부 양극화 현상은 너무 지나치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의 경우 너무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혁명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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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철아 잘가그래이.. 아부지는 할말이 없대이" 박 군 아버지의 목소리를 플래카드에 담아나온 6월 항쟁 당시 시위대 ⓒ ⓒ 6월항쟁기념관

한국의 지난 세기 즉 20세기의 전반기는 독립운동의 혈사이고, 후반기는 민주화운동의 통사에 속한다. 그 결과 독립을 쟁취하고 아직 미숙한 수준이지만 민주화를 성취하였다. 21세기 상반기는 남북화해협력과 통일에 이르는 평화운동이 시대가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독립운동→민주화운동→평화운동으로 이어지는 시대가치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하였으면 한다. 독립운동에는 일제와 친일파, 민주화운동에는 독재세력, 평화운동에는 분단ㆍ냉전ㆍ외세의 방해가 따르겠지만, 선열ㆍ선대들의 피어린 투쟁정신을 이어받아 실천한다면 반드시 성공의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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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 평양주민에게 인사하는 남-북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오후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경축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에서 15만명 평양주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현대사_100년의_혈사와_통사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평화운동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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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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