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경찰서 의자를 지키는 이유... 태극기부대와 몸싸움도

[현장] 퀴어축제 사수 분투기... 시민 290명 경찰서에서 릴레이 노숙

등록 2019.04.30 19:33수정 2019.04.30 22:10
8
원고료로 응원
 
a

집회 신고 장소인 남대문경찰서 안 로비. ⓒ 유지영

 
서울 남대문경찰서 로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의자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여기 앉은 사람은 가장 먼저 집회를 신고할 수 있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서울퀴어문화축제(아래 퀴어축제) 집회 신고를 하려고 자원자들이 지난 25일부터 24시간 교대로 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러분의 시간을 조금 보태주세요"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아래 조직위)는 6월 1일 열리는 퀴어축제 집회 신고를 받는 남대문경찰서, 종로경찰서, 서울지방경찰청 세 곳에서 일종의 '24시간 농성'을 해왔다.

조직위측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세종대로를 지나 광화문 앞을 돌아 종로대로로 나가는 행진을 사수하기 위해서다. 조직위에 따르면 "퀴어축제 참가자들이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 앞 도로를 행진하는 건 큰 의미가 있"다. 또 광화문 광장 앞 세종대로는 올해가 아니면 퍼레이드를 할 수 없다. 2020년 광화문 광장이 재조성 공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충돌할 가능성이다.

한채윤 서울퀴어퍼레이드 기획단장은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동성애) 혐오 세력 쪽에서 퀴어 퍼레이드 행렬이 광화문 쪽으로 죽어도 지나갈 수 없다고 나왔다"라며 "집회 신고를 하면 경로도 확보하고 경찰의 보호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는 25일 입장문을 내고 "'동성애음란퀴어축제' 본부가 행진코스로 광화문 세종로를 장악하겠다고 한다"며 "경찰이 이를 허락할 경우 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직위는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진 코스를 지키기 위해 여러분의 시간을 조금 보태어 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조직위는 이 글에서 "퍼레이드 코스를 지키고자 1번으로 집회 신고를 하려고 대기하기 시작했다, 25일 자정 12시 30분부터 24시간 내내 대기석을 지켜야 한다"라며 자원자를 모집했다. 집회신고를 위해 자원자를 모집한 건 2015년 이래 올해가 두 번째다.


이 공지가 나간 후 약 290여 명의 참여자가 줄서기에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자원한 사람들은 짧게는 2시간, 길게는 한나절을 세 곳 경찰서 민원실에 앉아 있었다. 한채윤 단장은 "올해 퍼레이드가 중구와 종로구를 넘나들기 때문에 중구의 남대문경찰서와 종로구의 종로경찰서, 그리고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줄서기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 단장은 이어 줄서기에 동참한 290여 명의 시민들에게 "줄서기에 동참해주시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지방에서도 줄서기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와주시거나 아르바이트 끝나고 피곤한데도 줄을 서주셨다"라며 "그저 감사하고 감동일 뿐"이라고 밝혔다.

6월 1일 집회신고 수리여부는 5월 1일에 결정난다.

태극기부대와 자리 싸움 소동도
 
a

쇠사슬로 몸을 감고 있는 태극기집회 참여자들. ⓒ 강누리


한편 줄서기 5일째인 30일 오전 6시 25분쯤 남대문경찰서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로비 오른쪽 자리에 앉아있던 퀴어축제 자원자가 잠깐 일어서자마자 태극기집회 신고를 하려고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밀치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

태극기집회 참여자는 앉자마자 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꼼짝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다가가 말을 걸어도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라면서 마스크로 입을,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그의 배낭에는 '대한애국당'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퀴어축제 측과 태극기집회 측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자 경찰이 중재에 나섰다. 태극기집회 참여자 중 한 중년 남성은 경찰과 대화를 마치고 퀴어축제 집회 신고를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다가와 "오해가 있었다, 우리는 대한문에서 태극기집회를 계속 열어야 한다"라며 "여러분은 6월 1일에 광화문에서 집회 잘 하시길 바란다, 우리가 1순위 자리를 내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리를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힘 싸움이 있었고 고소를 하셨기 때문에 나도 경찰 조사를 받겠다"면서 사과했다. 태극기집회 참여자들은 이내 차례로 남대문경찰서에서 빠져나갔다.

한채윤 단장은 남대문경찰서에서 있었던 몸싸움을 두고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몸싸움은 대한문 앞에서 토요일마다 집회하시는 소위 태극기부대에 속하는 분들과 생긴 것"이라며 "더 이상 충돌 없이 (집회) 신고가 무사히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퀴어문화축제 #줄서기 #남대문경찰서 몸싸움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창녀에서 루이15세의 여자가 된 여인... 끝은 잔혹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