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첫인상은 멀뚱했는데... 날 이주하게 만든 '대전'

[대전, 그곳을 알고싶다] 다양성이 살아있는 생태도시를 향해

등록 2019.05.02 13:30수정 2019.05.0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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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대전 뿌리공원 전경. 자료사진. ⓒ 이정호


3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의 일이다. 서울에 살며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었으나 학교든, 공부든, 어지러운 사회든 모든 게 내게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던 젊은 날이었다.

어느 날 나는 카이스트 학생이었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대전역에 내렸다. 그리고 어렵사리 통화한 친구가 일러준 대로 역에서 길을 건너 버스정거장에 섰다. 한여름의 해는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정거장에서 몸은 말라가는 파뿌리였으나 마음은 이유 없이 비장한 한 철 메뚜기였다. 버스도 어느 그늘에서 퍼부리고 쉬는지 오지 않았다. 그때 대전의 표정은 참 멀뚱했다. '너 뭐 하러 온 겨? 예서 뭐하는 겨?' 이런 표정이었다. 


대전의 첫인상

족히 반나절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걸려 올라탄 버스는 하염없이 달렸다. 기사 아저씨는 느리게 감기는 충청도 사투리로 중얼거렸지만 버스는 거칠었다. 도심을 벗어나자 열린 창문으로 흙먼지가 밀려들었다. 도로는 바둑판의 줄처럼 잘 깔려있었지만 건물은 없고 온통 흙바닥이었다. 아마도 둔산에 택지를 개발하던 초기여서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전이었던 듯 싶다. 대전이라는 도시의 첫인상은 그렇게 좀 거칠었다. 

그리고 15년 후, 그 친구는 서울에서 연구원생활을 하고 있었고 나는 대전 외곽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참 인연은 알 수 없다. 그사이 대전은 커졌다. 둔산을 지나 대덕까지, 가수원을 지나 도안까지 빼곡하게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채워졌다. 

<모털 엔진>이라는 영화에는 견인도시들이 등장한다. 먼 미래, 황폐해진 지구에서 인류는 바퀴를 달고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도시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 도시들은 자신보다 작은 도시를 만나면 작살을 쏘아 사냥한다. 이렇게 작은 도시들을 집어삼킨 큰 도시는 이를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 이 세계에서는 도시가 도시를 사냥하고 이들이 달리는 대지는 대부분 불모지로 변해있다. 

과학적이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이 영화의 설정은 현대사회에서 쇠를 먹는 불가사리처럼 무지막지하게 증식하는 대도시들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서울이라고 하는 거대도시가 있고 수도권이라는 불리는 도시 군집이 형성되어 있다. 이 좁은 지역에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으며 대부분의 기반시설들이 집중되어있다. 영화일지언정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 중소도시와 농촌을 불모지로 상징한들 크게 이의를 제기할 근거를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대전이 앞으로 어떤 도시로 변화해갈지 생각해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대전을 토대로 살아가고 있는 시민 개개인의 삶을 디자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전 또한 '모털 엔진'의 대도시처럼, 현재 우리나라의 수도권처럼 더 크게 몸집을 불리고, 더 많은 에너지를 써대면서 사람과 사람들 사이를 압축해가는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변화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제대로 예측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전은 대전역이 생기면서 성장해 광역시가 된 만큼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가 짧다는 사실은 그로 인해 열등하다는 결론이 아니다. 짧은 역사를 뒤집어 보면 우리 손으로 만들어갈 역사가 더 많이 남았다는 말이면서 우리가 꿈꾸는 도시로 가장 먼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풍부하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이 도시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문화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이 정치, 군사력뿐 아니라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까지 가지게 된 배경으로 신대륙으로 몰려든 이민자들을 꼽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여러 문화를 가지고 미국을 찾았다. 저자는 이민자들을 '에너지가 넘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다양성을 양분으로 하는 창의성이 발현되었으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와 반대의 예로 일본을 꼽고 있다. 오래된 문화를 가지고 있으나 지정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가 바로 현대 일본사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도시로 성장한 대전은 토착민보다 전국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사는 도시이다. 위의 지적처럼 대전은 다양성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전국 각지의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과학으로 다져진 굳은 터전을 가지고 있고 문화와 예술이 격렬하게 소용돌이 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시민의 삶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 도시는 어떻게 성장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모이고 큰돈이 움직이는 거대 기업이나 공장을 유치하는데 전념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문화적 자양분을 일궈가면서 모든 생명이 어울려 사는 생태적 환경을 추구해야하는지. 거대도시를 따라잡기 위해 양적 팽창에 온 힘을 쏟아야하는지, 아니면 거대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탄력적인 역할을 하면서 균형을 갖춘 환경을 만들어야하는지. 경제적 가치에 전념해야하는지, 아니면 행복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 고민해야하는지. 

대전이라는 이름의 대망

대망(大望)이라는 말은 흔히 정치권에서 대권(大權)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우리 대전이 꿈꾸는 대망은 다양성이 살아있는 생태도시로 성장해나가는 일이다. 가장 먼저 삶의 가치를 도시생활에 실현하는 일이 바로 도시로서 추구할 수 있는 대권이다. 이제 대전은 대권을 꿈꾸어야 한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과 다름 아니다. 서로 배려하고 모든 생명이 어울려 잘 사는 도시는 떠나기 싫은 도시이다. 떠날지라도 다시 돌아오고 싶은 도시이고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도시이다. 모여서 서로서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도시이다. 이것이 바로 도시의 대망이다. 

30년 전, 나를 뚱하게 맞았던 대전은 어느새 삶의 터전이 되었고 여기서 자란 딸아이에게는 타지에서 매번 돌아오는 곳이 되었다. 노골적이지 않지만 뭉근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맞아주는 고향이 된 것이다. 

이 기획은 대전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자리이다. 대전작가회의가 중심이 되어 시민과 문화예술인들의 기억에 대전은 어떻게 자리 잡고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삶의 배경이 되고 있는지 풀어놓는 것이다. 이제 편안하게 대전을 읽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1998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과속방지턱을 베고 눕다>  <포이톨로기> 
<밍글맹글>, 과학에세이 <과학인문학>, 소설집  <폴픽> 등을 썼습니다. 현재 대전작가회의 회원입니다.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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