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가구점, 카센터... 15개 직업 끝에 만난 '업'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 음악인 장사익 ①

등록 2019.05.05 14:12수정 2019.05.1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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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인생을 알고 노래하는 음악인 장사익 ⓒ 종로문화재단


꾹꾹 눌러 담아 숨겨두었던 가슴 속 한(恨)은 절절한 목소리에 봉인 해제되어 꽃떨기 같은 눈물로 떨어져 내린다. 인생의 진한 맛이 배어있는 그의 노래에는 화려한 기교와 정해진 공식을 뛰어넘는 힘이 있다. 데뷔 이래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로 평가받으며, 대중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온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로 노래 인생 25주년이자 고희(古稀)를 맞아 앨범 <자화상>을 발매하고,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집대성해나가고 있는 음악인 장사익을 지난 4월 9일에 만났다.

그의 목소리에는 대중들의 축 처진 어깨를 토닥이며, 지난 회한을 툭툭 털고 일어나게 만드는 치유의 힘이 있다. 때문에 그가 노래하는 곳이 어디든, 그곳은 곧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무대에서 내려와 자연인으로 돌아간 그가 머무는 곳은 인왕산 자락과 북한산이 만나는 종로구 홍지동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2층 거실에 있는 통유리 밖으로 펼쳐진 절경을 바라보며, 인터뷰 사이사이 노래자락을 뽑아냈다. 너른 가슴으로 자신을 품어준 대자연에 보내는 답가였다.

"돌이켜보면 운명이었는데 그땐 몰랐다"
 

홍지동 가택 밖으로 펼쳐진 절경을 바라보며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사익 ⓒ 김연정

 
"요즘 사람들은 꽃이 펴 있어도 훑어만 보고 지나가기 바쁘잖아요. 핸드폰 백번 들여다볼 때, 꽃 한 번 쳐다보려나 몰라요. 이런 데 살다보면 바람 소리도 듣고, 날아드는 새들도 보면서 자연과 사시사철 함께 하는 거죠. 봄이면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져 새 파랗고, 가을에는 낙엽이 울긋불긋하고, 겨울에는 온 세상이 하얗게 물 들어서 크리스마스카드랑 똑같아요. 나 혼자 보기 아까워요. 이렇게 자연을 보고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어요."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서 태어나 보낸 유년기 시절, 그의 소리를 품어준 것도 산이었다. 소년 장사익은 산을 놀이터 삼아 웅변 연습을 하곤 했다.

"우리 때만 해도 3·1절 같은 날에 공부 좀 하는 애들한테 '이 연사가 외칩니다!' 하면서 웅변 시키고 그랬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원고를 주시면서 웅변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잘 하려면 목청이 좋아야 한다기에 학교 가기 전에 산에 올라가서 소리를 질러대곤 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5년간을 매일매일 연습했죠. 지금 돌아보면 노래할 운명이었다 싶어요. 그런데 그때는 음악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죠."

열다섯의 나이에 상경한 그는 선린상고를 다니며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의 노래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변성기를 잘 넘기고, 목청이 트이면서 유행가를 곧잘 불렀어요. 그 덕에 소풍 같은 행사가 있을 때에는 앞에 불려나가서 노래도 많이 했죠."

노래를 좋아했기에 보험회사에 취업한 이후에도 가수를 향한 꿈을 접기는 어려웠다. 노래에 대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가요학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훈아와 남진 등 기라성 같은 원로가수들을 가르쳤던 고(故) 한동훈 작곡가가 그의 스승이었다.
 
"한 선생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가면서 3년간 음악을 제대로 배웠어요. 발성 연습부터 시작해서 노래의 감정 선을 살리는 법을 익혔죠. 그렇게 일주일간 연습한 곡을 릴테이프에 녹음해서 토요일에 다시 들어보곤 했어요. 우리나라 대중가요는 그때 다 섭렵했죠."


그렇게 음악과 충실히 보낸 3년을 뒤로 하고 군에 입대한 그는 출중한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문화선전대로 활동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제대 후에도 노래에 대한 끈은 쉽사리 놓을 수 없었지만, 스스로의 자질에 대한 회의감과 어려운 여건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가수의 꿈에서 일보 후퇴해 다시금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운명을 받아들이다

음악인으로 정착하기까지 그가 돌아온 길은 너무도 멀었다. 전자회사, 가구점 등을 거쳐 매제의 카센터에서 일하기까지 열다섯 개의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나 열여섯 번째 업(業)으로 음악을 선택하면서 그의 방랑도 끝이 났다. 이광수 사물놀이패에서 태평소 주자로 활약하던 그는 공연 뒤풀이 때마다 갈고 닦은 노래 솜씨를 선보이며 주목받게 된다. 구성진 노랫소리에 푹 빠진 이들은 연신 가수를 권했고, 그가 부른 '대전 부르스'에 감동한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공연을 적극 제안하면서 무대에 오르게 된다.

1994년 11월 신촌의 소극장에서 펼쳐진 첫 공연은 이틀간 800명에 달하는 관객이 몰리면서 대성황을 이뤘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 여섯이었다. 지천명(知天命)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스스로의 나아갈 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된 셈이다. 이듬해엔 그의 대표곡인 '찔레꽃'이 담긴 데뷔 앨범 <하늘 가는 길>을 발매하고, 데뷔한 지 2년만인 96년 11월에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전석을 매진시키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그때만 해도 세종문화회관은 이미자나 패티김 같은 일류가수들이 아니면 못 서는 무대였어요. 데뷔도 꿈같았지만, 신인에 무명이었던 제가 그 무대에 선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죠. 저를 키워준 곳이라 그런지 지금도 그 무대가 고향처럼 편해요. '2년에 한 번씩은 여기서 꼭 공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주제를 바꿔가면서 공연을 이어왔죠. 그렇게 지금까지 열네 번 공연을 했네요. 세종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고, 외국 투어도 가고 그랬죠."

비단 세종문화회관뿐만 아니라, 그의 공연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열리기만 했다하면 빠르게 매진되기로 유명하다. 부모님에게는 가장 큰 효도 선물이자, 교포들에게는 향수병을 달래주는 특효약으로 정평이 난 까닭이다. 그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져오는 뜨거운 삶의 온기에 관객들은 열광한다.

"당신 노래 듣고 나니까 사이다 들이킨 것처럼 시원하다"
 

홍지동 저택 앞의 정원 앞에 선 음악인 장사익 ⓒ 종로문화재단

 
"지금 가수들 보면, 세상 나오면서부터 가르치기 시작해서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잖아요. 그러면서 인생을 배우는 거죠. 그런데 나는 인생을 많이 배운 다음에 노래한 사람이잖아요. 누가 할 이야기가 더 많겠어요? 내가 더 많지요. 요즘 울고 싶은데 못 울고, 속에 다 쌓아두고 사는 사람 많잖아요. 그런데 하찮은 내 노래 듣고 사정없이 우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에요.

미국 공연하고 나오니까 어떤 관객은 '당신 노래 듣고 나니까 사이다 한 스무 병은 들이킨 것처럼 시원하다'고 하는 거예요. 울면 개운하잖아요. 요즘 얼마나 살기 팍팍해요. 그런데 공연장 들어가서 박수치면서 한바탕 놀고 후련하게 울고 나오면, 깨끗한 도화지가 또 하나 마련되는 거예요. 그런 힘으로 세상 나가서 또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가는 거죠. 그런 게 예술의 힘이지요."


어떠한 공식과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음악으로 새로운 경지를 열면서 그는 다른 대중가수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다. 재즈 드러머이자 타악기 연주자로 유명한 에드훠(Add 4)의 전 멤버 김대환은 그의 음악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데뷔하기 전인 93년에 찾아간 적이 있었거든요. 노래를 한 번 해보라고 하셔서 송아지를 불렀었어요. 송~아지 하면서 노래를 했더니 '너 속으로 박자 세고 있잖아. 그거 좀 벗어봐!'라고 조언해주셨죠. 그때부터 노래를 해체시켰어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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