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폐막식, 장사익이 애국가 3키 올려서 부른 이유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 음악인 장사익 ②

등록 2019.05.05 14:12수정 2019.05.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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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노래가 곧 인생이라는 음악인 장사익 ⓒ 종로문화재단


(1편에서 이어집니다)  

많은 대중들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지만, 그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법이 없다. 지금까지 노래해올 수 있었던 공을 항상 자신이 아닌 타인들에게 돌린다.

"절차나 순서도 없이 뜬금없이 나와서 제 노래를 하는데 이렇게 뜨겁게 반응해주니 그저 행복하죠. 부모님부터 가족들, 친구들 모두 저한테 다 베풀고, 희생만 하다 빈껍데기로 간 것 같아요. 전에 부산에 있는 성베네딕토 수녀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어떤 수녀님이 저를 위해 매일 기도하신다는 거예요. 또 언젠가는 절에 갔더니 어떤 스님이 저를 위해 매일 빈다고 하시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빌어주는 덕분으로 이렇게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하루는 공연 하고 사인을 하는데 구십 가까이 된 할머님이 '건강해야 돼. 그래서 노래 더 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런 고마운 이야기가 또 어디 있어요. 전에 공연 보러 온 어떤 아주머니는 암에 걸려 오늘 내일 하는데 아들한테 마지막으로 제 공연을 보고 싶다고 부탁해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런 분들 뵐 때마다 세상 나와서 노래하는 게 제일 보람 있구나 싶어요."


갑자기 찾아온 좌절
  

인생을 노래하는 음악인 장사익 ⓒ 종로문화재단


인생을 노래하며 관객들과 활발히 만나왔던 그는 2016년 초 성대 수술로 8개월 동안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마냥 좌절하지만은 않았다. 수없이 실패하고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패기로 꼿꼿이 일어섰다.

"백 미터 선수가 달리다가 다리가 뚝 부러진 거랑 마찬가지죠. 깜짝 놀라서 앞이 안 보이더라고요. 노래 없는 인생은 저한테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때 직장생활 하던 시절을 떠올렸어요. 이런저런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내가 못 나고, 부족해서 그렇지!' 하면서 툭툭 털고 일어나곤 했거든요. 그 긍정의 힘 때문에 오늘날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이라는 게 봄·여름·가을·겨울이 다 있는데 꽃 피는 봄만 노래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화려한 것만 알면 생명력을 잃어요. 모든 일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빨리 올라가면 또 빨리 떨어지기 마련이잖아요. 사실 무대 뒤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렇게 나란히 앉아있으면, 우리 다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노래하는 장사익과 자연인인 나, 이렇게 두 개의 존재가 같이 있는 거예요. 무대 내려와서도 그걸 헷갈려 하면 안 돼요."

다시 발성을 연습하면서 소리를 갈고 닦은 그는 모두의 우려를 깨끗하게 씻어내며, 무대로 화려하게 귀환한다. 그를 사랑하는 팬뿐만 아니라, 그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굵직한 무대들이 그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지난해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는 초등학생 아이들과 애국가를 제창하면서 우리 민족의 기개와 얼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렸다.

"물론 올림픽에서 스포츠가 중요하지만, 우리가 경기 일등하려고 올림픽 개최하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나라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죠. 애국가 하면 흔히 턱시도를 입은 성악가들이 노래하는 장면을 연상하잖아요? 그런데 저한테 부탁했을 때는 분명 다른 의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보통 큰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보면, 주눅 들어 보이는 경향이 있잖아요. 저는 엄숙한 분위기에 눌리기보다 웅장하게 불러서 한국 사람들의 넘치는 기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음정도 3키나 높이고, 제 호흡해 맞춰 박자도 최대한 느리게 편집해 불렀죠.

나중에 송승환 평창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에게 들으니, 88년 서울올림픽 때 정적 속에서 굴렁쇠소년이 등장했던 것처럼, 제가 어린 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 나와서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을 떠올렸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통해 전통을, 아이를 통해 미래를 형상화하고 싶었던 거죠. 내 살아생전 몇 번이나 그런 큰 무대에 서보겠어요? 정말 영광적인 순간이었어요."


지난 4월 11일에는 KBS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집 '내가 사랑한 아리랑'에 출연해 <아리랑>을 부르는가 하면, 가수 효린과 함께 <님은 먼곳에>를 열창하며 검색어 1위에 오르며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겹겹이 쌓여 응축된 한의 정서를 폭발시키면서 그는 그날 밤 지난 과거의 역사를 소환해냈을 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신구(新舊) 세대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인생 후반전에서 

지난해 노래 인생 25주년이자 고희(古稀)를 맞이한 그는 9집 앨범 <자화상>을 발매하면서 자신의 지난 음악세계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걸어갈 길에 대한 다짐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칠십 하나가 됐어요. 야구 경기에 비유한다면, 7회까지 온 셈이죠. 인생을 90까지라고 봤을 때, 2회전 밖에 안 남은 거잖아요. 마음이 조급해지더라고요. 축구 경기도 종료까지 5분 남으면, 정신이 바짝 들잖아요? 어떻게 하면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죠. 우선은 나를 제대로 돌아봐야겠다 싶어서 나름대로 끼적거려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시인이나 화가들이 어느 순간에 자기 모습 그리고 싶다는 생각하잖아요. 많은 시들을 읽었지만, 유독 윤동주 선생의 시 <자화상>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일제강점기 때 아무 행동도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보스럽고 창피스럽다고 그린 시잖아요. 제 모습을 이렇게 돌아보니까 그 모습과 닮아있는 것 같더라고요. 평생 살면서 멋있고, 떳떳하게 살았다고 할 만한 순간이 별로 없다 싶었어요.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거 있잖아요. 그런 모습이 미워서 가다보니까 자신이 가엾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돌아보면 또 미운 자신이 있어 떠나가다 다시 돌아보면, 스스로가 그리워지는 거예요. 그게 결국은 나를 사랑하자는 의미인 것 같더라고요. 이 노래는 서사시처럼 박자가 없어요. 읊조리다가 고조시키면서 장면 장면을 좀 돌아가면서 불러봤어요. 피아노 하나 두고 노래하다가 심심하면 트럼펫 불게 하는 식으로 1년 반 정도를 불렀죠. 그러면서 시를 제 것으로 만들었어요. 시인들이 실은 가수라니까요. 우리는 창자(唱者)고요."

   
인터뷰 중에도 그는 흡사 그 음악 너머에 자리한 지난 인생을 반추하는 듯 <자화상>을 불렀다. 스스로의 25년 음악사를 돌아보는 과정을 거쳐 그는 마침내 9회까지 힘차게 나아갈 동력을 얻었다.

"올해도 지방 공연이 20회 정도 예정되어 있고요. 6월 달에는 캐나다에 갈 예정이에요. 제 노래 15곡을 편곡해서 브라스 밴드랑 같이 녹음하기로 했거든요. 그게 재밌으면, 미국도 가고 또 여기저기 가보죠 뭐. 지금처럼 계속 가늘고 길게 갈 겁니다."

공연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5월 8일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 지하에 있는 이화아트갤러리에서 개인 초대전을 앞두고 있어 더욱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10여 년간 꾸준히 써내려온 서예 실력이 수준급으로 알려지면서 전시 초청을 받은 까닭이다. 그의 삶의 향기가 오롯이 담긴 음악과 글이 들판에 만발한 찔레꽃처럼 대중들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흐드러지게 피어있기를 기원해본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나가는 음악인 장사익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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