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 강제로 벗으라는 경찰들, 속셈은 따로 있었다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유현석공익소송기금①]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국가배상청구 사건

등록 2019.05.06 11:51수정 2020.02.0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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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생전 말씀입니다. 유 변호사님은 70년대 남민전 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09년 5월 유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소송이 우리 사회에 남긴 변화를 되짚고자 합니다.


2008년 8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이하 '국과수'라고 함) 물리분석과에서 색다른 시험이 진행됐다. 시중에 판매되는 브래지어 4종을 놓고 각각의 제품이 얼마만큼의 힘을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시험 결과 브래지어 제품별로 최소 54㎏, 최대 83㎏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브래지어로 목매 자살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고자 위 시험을 의뢰하였고, 경찰은 브래지어가 자살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국과수 시험결과를 활용했다.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에서 2011년 10월 피고 대한민국이 제출한 답변서에 포함된 국과수 감정서(일부) ⓒ 천주교인권위원회

  
국과수의 색다른 시험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2008년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시작됐다. 그리고 그해 8월 15일 저녁 서울에서 100번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한국은행 앞에서 '815평화행동단' 등 주최 측 추산 1만여 명의 시민들이 '한미 쇠고기 재협상'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때 경찰은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쏘며 강제해산시키고 시민들을 체포했다. 경찰은 방송차를 통해 "파란 잉크가 묻은 사람은 전부 연행하라"고 지시했다(푸른색 물대포에 꺼진 촛불... 1만여 시민 '빗속 투쟁').

이날 집회에서 여성 31명은 서울에 있는 8개의 경찰서로 분산 연행됐다. 그런데 다음날 마포경찰서에 연행된 한 여성이 유치장 수감 시 경찰이 브래지어를 벗을 것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여성은 처음에는 거부하였으나, 경찰이 "브래지어가 자살 위험 도구로 규정되어 있다"면서 계속 벗을 것을 요구해 결국 브래지어를 벗어서 경찰에게 맡겼다. 이때 여성은 한 여름 복장인 얇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물대포를 맞아 옷이 완전히 젖은 상태였다. 그리고 여성은 곧바로 남성 경찰에게 조사를 받았다.

이어 강남경찰서와 중부경찰서에서도 브래지어 강제 탈의가 있었다는 증언과 언론보도가 잇따랐다. 어떤 여성 경찰은 남성 경찰과 남성 유치인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브래지어를 벗으라고 요구하였다. 이들 여성들은 얇은 티셔츠가 물대포에 젖어서 속살이 훤히 보이는 채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의 브래지어 강제 탈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그러자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하여 경찰의 요청으로 국과수가 브래지어를 가지고 시험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브래지어 탈의가 정당하다고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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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unsplash

 
피해자들은 먼저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2008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브래지어를 탈의하게 한 후 아무런 보완적 조치 없이 약 48시간을 유치장 내에서 생활하게 하고 경찰 조사를 받도록 한 것은…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면서 경찰청장에게 "브래지어 탈의요구 시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탈의한 후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보완조치를 강구하고… 관련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국가인권위원회 2008. 10. 9. 자, 08진인3135·08진인3140·08진인3141 병합 결정).

이 결정은 유치장 수감 시 브래지어를 강제로 벗게 하는 것은 정당한 공권력행사이므로 적법하고, 다만 강제력을 동원하기 전에 탈의절차를 잘 설명하고 탈의 후 보완조치를 강구하라는 것이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등에 업고 유치장 수감 시 브래지어 강제 탈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강제 탈의 후 '보완조치'로 '조끼'를 선택하였다. 2008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속옷 탈의는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나오자 경찰은 "속옷 탈의는 유치인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임을 반드시 사전에 고지하고, 유치인 동의 후 제출받도록 업무절차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은 여성 속옷 대신 착용할 수 있도록 여성유치인용 조끼 240개(서별 평균 7,8개)를 전 경찰서 유치장에 비치했다고 보고했다<2008년도 국정감사결과 시정 및 처리 요구사항에 대한 처리결과보고서 (행정안전부 소관), 2009. 2.). 경찰은 인권침해라는 비판에 대하여 제도개선을 약속하였다.

피해자들은 유치장 수감 시 무조건적으로 브래지어를 강제 탈의시키는 것은 매우 부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보았지만 경찰의 제도개선 약속을 믿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하였다.

3년 후, 광진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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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등록금 집회에서 연행된 대학생들을 조사하며 속옷을 벗게 하는 등 인권을 침해했다. ⓒ 유성호

  
그러나 3년 후 같은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였다. 경찰은 2011년 6월 10일 '반값 등록금' 집회에서 연행된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 여학생을 광진경찰서 유치장에 수감하면서 강제로 브래지어를 벗게 한 것이다(한대련 "경찰, 연행 여학생 브래지어 벗기고 조사").

경찰은 "2002년 국가인권위·여성부 관계자가 참석한 '유치장 신체검사 개선 간담회'에서 브래지어가 '끈'과 '와이어'로 구성되어 자신·타인에게 위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물로 보는 데 합의했다", 이에 "브래지어를 위험물로 규정, 여성 유치인에 대해서는 브래지어를 탈의 조치하고 있다"는 해명자료를 내놨다. 경찰은 2008년 브래지어 강제 탈의 사건 후 제도개선을 약속하였으나, 전혀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2008년 8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당시 피해자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집회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자행되는 브래지어 탈의를 막기 위하여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기로 했다.

나는 이들 중 4명을 2011년 8월 5일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 2008년 8월 15일 발생한 브래지어 강제 탈의사건은 그 소멸시효(3년)가 10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긴급하게 사안을 정리하여 소멸시효 만료 직전인 8월 10일에 국가배상청구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했다.

재판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브래지어가 자살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면서 탈의 조치가 합법적이었다고 강변했다. 앞서 소개한 국과수 소견을 근거로 "끈에 의하여 혈류가 차단되는 압력이 경부에 일정한 기간 지속될 수 있다면 의사(목매어 죽는 것)가 가능"하고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몸무게가 56㎏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브래지어에 의한 자살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2년 5월 1심 법원은 ▲브래지어가 자살이나 자해에 이용될 수 있음을 이유로 유치인으로부터 이를 제출받도록 규정한 경찰업무편람은 행정기관 내부의 행정명령일 뿐 법규명령이 아니므로, 경찰업무편람에 규정이 있다는 이유로 국민에게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할 수 없고 ▲ 법무부 소속 교정시설 내 여성 수용자의 경우 1인당 3개(현재는 5개로 늘었다)의 범위 내에서 브래지어 소지가 허용되는데 반하여, 경찰서 유치장 내 여성 수용자의 경우 그와 달리 무조건적으로 브래지어 탈의 후 수감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으며 ▲ 브래지어를 이용한 자살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다만, 기록에 따르면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사례는 없다) 유치인에게 피해가 덜 가는 수단을 강구하지 아니한 채 무조건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며 국가배상책임을 인정된다고 판결하였다. 피고 대한민국이 항소·상고했으나 2013년 6월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이후 경찰은 경찰업무편람을 개정하여 자살·자해사고 유형에서 브래지어를 삭제했다. 또한 브래지어의 착용(소지)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자살 등의 우려가 큰 유치인에 한해서 브래지어를 탈의 조치하고 스포츠 브래지어를 지급하라는 지침을 일선에 내렸다. 다만 브래지어 탈의 전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 탈의 조치하되, 유치인이 거부할 경우 강제 탈의를 금지했다<경찰청 정보공개 결정통지서(수사기획과-12772), 2013. 7. 26.>.

대법원 판결 후에도 경찰이 포기하지 못한 브래지어 강제 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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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8일, 동화면세점 앞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대열. ⓒ 안홍기

 
대법원의 국가배상 판결과 경찰청 지침 개정 후 사라진 듯했던 브래지어 탈의는 2014년 다시 문제가 됐다. 2014년 5월 18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서 연행된 여성들이 동대문경찰서 유치장 수감 시 브래지어를 강제로 탈의 당했다(나는 왜 동대문경찰서에서 속옷을 벗어야 했나).

파문이 커지자 24일 동대문경찰서장은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과문을 통해 "여성 피의자에 대한 신체검사 시 자살 또는 자해방지를 위해 속옷(브래지어)을 탈의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다"며 "규정을 지키지 않은 부분이 발견되었으므로 향후 재발방지를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26일 경찰청장도 "우리 직원이 분명 잘못한 것"이라며 사과했다.

위 집회 당시 브래지어 강제 탈의를 당한 피해 여성들은 2013년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는 사안을 가지고 다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고, 2018년 10월 법원은 (대법원 판례와 경찰청 수사국의 지침 변경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과거의 업무관행에 의존하여 원고들에게 브래지어 등을 강제로 탈의하도록 조치하였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고, 피고 대한민국이 항소를 포기해 판결은 확정됐다(참고로, 이 사건은 필자가 수임하거나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의 지원을 받은 사건은 아니다).

경찰은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브래지어 강제 탈의 조치를 포기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지행하면서 브래지어 강제 탈의는 유치장 시설 내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여성 집회 참여자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여성 집회 참여자들은 브래지어를 강제로 벗는 과정을 겪으면서 '안전한 느낌'이 아니라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하였다.

여성 집회 참여자들은 경찰의 브래지어 강제 탈의 조치는 여성의 수치심을 건드려서 여성의 집회 참여 자체를 막고자 의도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 있는 여성들이 반인권적인 공권력행사가 없어지기를 희망하면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계속했다. 이를 통해 2008년 촛불집회로부터 시작된 유치장 수감 시 브래지어 강제 탈의 인권침해 논란은 이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강제 탈의의 진짜 이유를 묻는다

여성의 속옷인 브래지어뿐만 아니라 티셔츠, 바지 등 겉옷 역시 목매 자살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겉옷을 벗긴 채 유치장에 수용하지는 않는다. 과거 2003년~2008년 6월 유치장에서 목매어 자살한 사건은 총 7건인데 브래지어로 자살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고, 같은 기간 구치소·교도소도 자살 사고 73건 중 72건이 목매 자살(액사 및 교사)한 사건인데 여성 속옷으로 자살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2008년 국정감사에서 법무부와 경찰청이 국회 주광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 그런데 왜 여성의 속옷인 브래지어가 자살 도구로 규정되었을까.

우리나라 경찰서 내 유치장은 대부분 부채꼴형이다. 유치인을 감시하기 쉽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 유치실은 나눠져 있으나 시선과 소리가 넘나든다. 게다가 대부분의 유치인보호관(경찰)은 남성이다. 내가 면담한 피해 여성들은 이런 유치장 안에서 공개적으로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받고 브래지어를 벗게 되면 수치심과 무력감 때문에 매우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겉옷을 걸쳤더라도 그 속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에 온몸이 발가벗겨진 느낌으로 어깨와 허리를 펼 수 없고 조사를 받는 수사관 앞에서 당당히 앉아 있기도 힘들다고 한다.

나는 여러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강제로 속옷을 벗어야 했던 경험들을 공유했기에 그 기분이 어떨지 깊이 공감하고 함께 고통스러워했었다. 그런데 공권력은 집회 참여 여성들에게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똑같이 겪게 함으로써, 이런 끔찍한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다시는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압박을 가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유치인의 인권을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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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찰서 유치장의 모습 ⓒ 연합뉴스

 
경찰서 내 유치장 수감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치장에 수감된 사람들은 죄가 확정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죄가 확정되어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보다 훨씬 심각한 인권침해를 받고 있었으며, 여성에 대한 브래지어 강제 탈의는 가장 심각한 침해 중 하나였다.

브래지어 강제 탈의는 유치인의 불안감만 가중시킬 뿐 유치장 내 자살을 방지하는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살의 경우 그 원인과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 때문에 단순히 자살에 사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브래지어 등 소지품을 압수하는 조치는 자살 방지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지극히 권위주의적이며 인권침해적인 발상이었다.

유무죄 여부가 불분명한 사람들을 임시로 구금하는 유치장내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유치인의 불안감 해소를 위한 대책을 충실히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유치장 시설을 현대화하고, 턱없이 부족한 여성 유치인보호관을 더 배치하는 등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허윤정 변호사(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입니다.
#유치장 #브래지어 #천주교인권위원회 #공익소송 #유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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