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떠나고 나니 노무현이...' 고등학생의 메모에 울컥

[아이들은 나의 스승 161] 아이들과 함께 노무현 서거 10주기 행사를 준비하며

등록 2019.05.17 08:15수정 2019.05.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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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의 충격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 ⓒ 유성호


10년 전, 5월 23일 토요일 오전을 또렷이 기억한다. 2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건강검진 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갑작스러운 TV 속보에 혈액을 채취하기 위한 주삿바늘을 팔뚝에 꽂은 채 간호사도 나도 순간 넋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간호사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황급히 뒤처리를 했다. 방사선 촬영과 위 내시경 순서가 남았는데도 엄청난 충격에 말문이 막혀 그대로 병원을 나왔다.

당시의 충격을 10년이 지난 지금 글로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다. 황망했고 비통했다. 미안했고 분하기도 했다. 먹먹한 마음에 주말 내내 울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운전은커녕 식사조차 할 수 없었다.

월요일 출근을 해서도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종일 창가에 서서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당시 옆자리에 앉았던 동료 교사는 나를 찾는 전화에 "울고 계셔서 바꿔드릴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전화를 받은 이 누구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고 한다.

한 주를 그렇게 보내고 주말 뒤늦게 봉하마을을 찾았다. 이후 두세 달 동안 매 주말은 그곳에서 보냈다. 대개 가족들과 함께 갔지만, 이따금 사무치게 그리울 때는 왕복 500km 가까운 거리를 평일 퇴근 후에 홀로 운전해 다녀오기도 했다.

어느덧 그가 떠난 지 10년이 흘렀다. 해마다 5월 즈음이면 봉하마을을 명절 쇠듯 찾았지만 무심한 세월 속에 소탈한 그의 모습도, 그를 향한 애틋한 마음도 점점 옅어졌다. 그가 꿈꾼 세상 역시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변호인> 보고 '노무현' 알게 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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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를 앞둔 12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10'이라는 숫자 탓일까. 올해 5월 23일은 예년처럼 보내선 안 될 것만 같았다. 지난 몇 해처럼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 광주에는 '새로운 노무현'이라고 적힌 노란 현수막이 일찌감치 내걸렸다.

10주기에 맞춰 교정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에서는 '5.18 작은 음악회'를 개최한다. 5.18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의 모교로서 그를 추모하는 음악회인데, 올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5.18, 노무현에게 말을 걸다.' 올해 7회째를 맞는 '5.18 작은 음악회'의 슬로건이다. 5.18 정신을 구현하는 것과 노무현이 꿈꾼 세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아이들과 공감하자는 취지다. 제16대 대선 당시 '노풍'의 진원지가 바로 이곳 광주라는 걸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행사를 꾸리는 데 있어서 아이들의 참여는 '밑절미'(밑바탕)다. 취지에 공감하지 못하면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 수 없고 '동원된' 행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건 5.18과 노무현을 욕보이는 짓이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아이들의 진솔한 생각을 듣고 싶었다. 자칫 행사를 교사가 주관하게 되면 기성세대의 인식을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노무현에 대한 기억은 세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수업 시간 짬을 내 간단한 설문지를 만들어 돌렸다. 짤막하게 자신의 생각을 기입하는 방식으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설문 시작 전 퀴즈 삼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이들의 이름을 적어보라고 했다.

예상대로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의 이름은 대부분 누락했고, 재임 순서를 바꿔 쓴 경우도 태반이었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4명의 이름은 외려 틀린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적어도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에 만난 대통령은 모두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2001년 이후에 태어난 그들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들은 교과서에서나 보는 역사 속 인물일 뿐이다. 그나마 광주에서 나고 자란 까닭인지 김대중과 전두환은 앙숙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첫 번째 질문은 '노무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였다. 한 단어로 답하라는 주문에, 놀랍게도 60여 명이 서로 보고 베끼기라도 한 듯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명사로는 '변호인' '바보' '정의' '서민'이 다였고, 형용사로는 '불쌍함' '미안함' '안타까움'이 전부였다.

10년 전이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인데도 노무현에 대한 이미지는 기성세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문지를 수합한 뒤 그 이유를 아이들 각자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이구동성 영화 <변호인>을 보고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영화 <변호인>을 안 봤다는 아이들이 드물 정도였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아이들이 입버릇처럼 외고 있는 것도 천만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의 힘이었다. 영화를 본 뒤 변호사로 진로를 바꿨다는 아이도 적지 않았다.

솔직히 '일베'라는 답변도 적잖이 나올 거라 짐작했는데 고작 몇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앞뒤가 뒤바뀌었지만, 그를 두고 '일베'의 패륜적 행태에 맞선 투사라고 적고 있었다. 한 아이는 노무현의 삶을 알고 난 뒤 '일베충'들과 결연히 맞서 싸웠다고 보란 듯 설문지에 쓰기도 했다.

지방분권의 아이콘... "우리 사회가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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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을 하루 앞둔 지난 2009년 5월 28일 밤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 임영선 화백이 영정에 바치는 대형 초상화가 옮겨지고 있다. ⓒ 유성호

 
두 번째는 '노무현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유를 자유롭게 적어보도록' 했다. 순간 떠오르는 이미지와 겹치겠지만, 그가 재임할 당시의 공과 과를 아이들의 시각에서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곧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기대하는 바람과 일치할 터였기 때문이다.

'특별한 감정이 없다'는 답변 빼고는 허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10주기를 맞는 고인에 대한 설문에 악담이나 조롱으로 답하는 야박한 아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설문지엔 그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글들로 빼곡했다.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가 옳았다는 걸 알겠다'는 글을 보곤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우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죽어서까지 서울이 아닌 고향에 묻힌 것에 감동했다거나, 오로지 지방을 살리기 위해 천도까지 감행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명박이 이끄는 천만 서울시민과 맞장 뜬 상남자'라는 표현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명박 vs. 노무현'을 '중앙집권 vs. 지방분권'으로 등치시켰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지방분권이 완성되었을 거라는 내용도 있었고, 느닷없는 탄핵에 휘말리며 허송세월만 하지 않았어도 그의 공약은 대부분 실현되었을 거라는 '찬사'도 뒤를 이었다. 아이들에게 노무현은 '지방분권의 아이콘'이었다.

그런가 하면 '독도 명연설'을 떠올리는 아이도 있었다(관련 기사: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 중학교 시절 독도 관련 계기수업 때 처음 접했다면서 정치지도자 노무현의 품격을 존경하게 됐다고 적었다. 그는 이 연설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에 필적하는 최고의 연설로 꼽았다.

2006년 일본 정부가 독도에 해안 측량선을 보낸다고 발표했을 때 당시 대통령이었던 그는 해양경찰청에 일본의 측량선이 영해를 침범하면 즉각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직접 연설문을 작성하여 독도가 항구적으로 우리 영토임을 국내외에 천명했다. 그의 '독도 명연설'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일순간에 무력하게 만든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 질 걸 뻔히 알면서도 꿋꿋하게 도전해온 바보 같은 그의 삶 앞에 공약과 업적을 운운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라 적은 경우도 있었다. 고졸 출신의 지방의 인권 변호사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것보다, 늘 정의를 앞세우고 힘없는 약자 편에 섰다는 이유로 그를 좋아한다고 썼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인물'이라는 글에서는 분노가 읽히기도 했다. 당시 우리 사회가 그의 굳은 신념과 탁월한 혜안을 수용할 만한 수준이 못 됐다는 것이다. 그를 '바보'라 별명지어 부르는 건, 정작 인물을 알아보지 못한 우리 사회가 '바보'였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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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 노사모 회원들과 비공식 면담 도중 '해준 것도 없는데 나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며 눈물을 흘리는 노무현 대통령. (2006.8.27) ⓒ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노무현 아닌 다른 대통령에 대해 같은 내용의 설문을 돌렸대도 이런 호평 일색이었을까. 아닐 거라고 본다. 여태껏 수업 시간 아이들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 적이 없지만 이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나름대로 평가하고 기억하고 추모해온 것이다.

요컨대 아이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고는 아닐지언정 가장 친근하고 애틋하고 인상적인 대통령임에는 분명하다. 한 아이는 '미완의 혁명 같은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아이들에게 노무현은 '죽어서 이긴' 정치인이었다.

5월 21일 오후 교정에서 열릴 '5.18 작은 음악회'에선 예년과 달리 윤상원 대신 노무현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윤상원과 노무현이 손 맞잡고 노래하는 모습, 상상만 해도 뿌듯하다. 듣자하니 한 아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곡으로 쓰였던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부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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