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논문 작성 자체가 몰입의 기회입니다"

[IB 후보학교 충남삼성고 현장취재] "지식 소비자 아닌 생산자로 육성하려고 학술적 글쓰기 교육"

등록 2019.05.07 10:39수정 2019.05.07 10:39
0
원고료로 응원
"가설을 설정할 때는 독립변인이 앞에, 종속변인이 뒤에 온다고 했죠. 과학적 탐구에선 변인이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변인이란 실험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말한다고 했어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지난 3월 21일 오전 국제 바칼로레아(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 후보 학교인 충남삼성고 2학년 과제연구(화학) 수업이 열린 S108 강의실. 김태현 교사가 화학 실험 보고서(소논문) 작성에 필요한 개념을 설명하고 있었다. 실험을 할 때 활용하는 조작변인, 통제변인 등을 예를 들어 알려 주었다.
  

연구계획서 작성법 설명 충남삼성고 2학년 과제연구(화학) 수업을 맡은 김태현 교사가 연구계획서 작성법을 설명하고 있다. ⓒ 신향식

 
수업 진행 방식이 참신했다. 일방적인 강의 전달식이 아니었다. 분필 가루를 날리면서 판서하는 일은 볼 수 없었다. 최신 시청각 교재를 최대한 활용하여 알기 쉽게 풀이해 주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교안을 화면에 띄워 가면서 질문 답변식으로 진행했다. 속사포처럼 묻고, 손을 들게 한 뒤 호명하여 발표하게 하다 보니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소논문 대필은 상상할 수 없는 일...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연구"
  
이날 수업은 '과제연구 계획 수립', '연구주제 선정'을 놓고 조별 학습한 내용을 교사의 발문을 통해 확인하고 '연구계획서 작성' 순으로 진행되었다. 소논문(탐구보고서) 작성의 도입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김태현 교사는 연구 계획서 작성법을 설명한 뒤 연구계획서 제출 방법과 평가 기준을 알려 주었다.

"중간고사 이후의 수업 때 3시간 정도 쓸 시간을 드릴 겁니다. 수업 시간 내에 걷을 거고요. 작성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어요. 수업을 잘 활용하고 힘들면 질문하면 됩니다. 연구계획서 평가는 전체를 100점으로 할 때 선행연구 논문 찾기, 연구계획서 초안 작성, 수업 시간에 충실히 써서 제출하느냐 등 세 가지로 나누어 합니다."
  

"과제연구란" 충남삼성고 김태현 교수가 과제연구 수업을 하는 장면. ⓒ 신향식

 
김태현 교사는 강의를 마친 뒤 과제연구 수업이 충남삼성고의 '명품 프로그램'이라고 뿌듯해 했다.

"과제연구 수업을 맡게 되었을 때 수업 설계에 시간을 많이 쏟았습니다.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실제 수업 시간보다 훨씬 더 많았지요. 이 활동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어떻게 키워줄까 고민했습니다."

희망전공 맞춰 소논문 등 산출물 제작...'진로 적합성' 연결 유리


김태현 교사는 "과제연구 활동은 학생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내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라면서 "수업에 참여한 모든 학생은 능동적으로 과학적 연구를 하는 학습자이자 배움의 주체로서 날마다 자신의 속도로 성장한다"고 밝혔다. 또 "교사는 자신의 선행 연구 경험을 기반으로 수업에서 안내자, 촉진자, 격려자, 디자이너의 역할을 하면서 학생들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덧붙였다.

"우리 학교의 과제연구 수업은 누가 그 결과물을 대필해 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토론과 조사를 거쳐 학생 스스로 과학 주제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실험을 하면서 연구공책을 작성한 뒤 교사의 점검을 받죠. 학생이 연구 주제를 스스로 정하고, 연구절차를 설계한 뒤 직접 실험에 들어갑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는 일련의 과정도 공책에 적으면서 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연구 수행 능력을 키워 보는 겁니다. 지식을 짜깁기하여 소논문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실의 발견자가 되어 보는 셈입니다."

교사들이 모두 6차례 학생들과 1대1로 만나 산출물 작성 지도
   

"과학실험 활동" 충남삼성고 학생들이 과학실험을 하는 장면. ⓒ 신향식

 

과제연구 교재 충남삼성고 2학년 학생들이 배우는 과제연구 교재. ⓒ 신향식

 
충남삼성고에는 과제연구 수업과 같이 소논문이나 산출물을 제작하여 제출해야 할 과목이 많이 준비되어 있다. 이런 수업을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해 들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과제연구도 물리, 화학, IT, 생명과학 등으로 세분되어 있다.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에게는 사회과학방법론, 마케팅과 광고, 비교 문화, 빅히스토리와 같은 과목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모두 소논문 형식의 보고서를 써내야 한다.

2학년들은 3월부터 '학생탐구발표' 활동을 통해 탐구 주제를 스스로 정하고 산출물을 고민하는 숙고(熟考)의 시간을 갖는다. 1인 단독 혹은 2(3)인 1조를 구성하여, 교육, 문학, 예술, 영어 등 폭넓은 내용을 탐구한다.

"교사들이 모두 6회에 걸쳐 학생들과 1대1로 만나 산출물 작성 지도를 합니다. 주제 선정과 탐구 몰입도에 따라 산출물의 깊이와 특성은 다양하지요. 최종 결산에 해당하는 10월 학술제 때는 전교생과 전 교직원이 다함께 산출물을 평가하고 공유하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충남삼성고에서 하나의 주제에 관해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특정 수업을 넘어선, 자연스러운 교육 과정의 한 부분입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이 활동에 임하는 학생들의 열정이 남다릅니다. 힘든 탐구 활동 뒤에 얻게 되는 지적 경험은 소중한 삶의 재산이 될 겁니다."

소논문 작성 자체가 '몰입'의 기회…'몰입'하면서 흥미로운 주제 선택
  

소논문 교육이 중요한 이유 박하식 충남삼성고 교장은 "소논문 쓰기에서 가장 흥미있는 주제를 택하면 학생들은 막연하게 선택했던 진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다른 학생보다 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고 밝혔다. ⓒ 신향식

 
박하식 교장은 충남삼성고의 학술적 글쓰기 교육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학생들이 한 주제에 관해 탐구하여 연구물을 스스로 작성하는 일은 '몰입'의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몰입'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자신이 가장 흥미있는 주제를 택하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자신이 막연하게 선택했던 진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다른 학생보다 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접하게 되는 대학에서의 학문 수행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긴 안목으로 본다면 지식과 정보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를 육성하는 데 목표가 있습니다. 본교 교육 목표 중 하나인 창의 교육을 실현하자는 구체적인 학습활동입니다."

국내 고교들 대부분은 소논문(과제연구, 탐구보고서) 과제를 주거나 교내대회를 열면서도 정작 그 작성법을 지도하는 일은 소홀히 한다. 교사나 외부 강사가 몇차례 특강을 여는 학교도 있고, 그마저 아예 시도하지 않는 학교도 많다.

특히 교수 직업을 가진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 소논문을 대필하기도 한다. 자녀를 공동연구자 명단에 올려 학술지에 발표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소논문 작성법을 공교육에서 지도하면 될 일을 교수 부모나 사교육에 의존하게 해서 문제를 키운 것이다.

'무늬만 소논문 활동' 하는 대다수 고교들에게 본보기
  

"지적 호기심 충족하는 데 초점" 충남삼성고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 대신 학생 스스로 궁금한 분야를 조사하고 탐구하여 산출문을 만든 뒤 발표하는 방식에 중점을 둔다. ⓒ 신향식

 
하지만 '토론논술형 교육과정' IB 후보학교인 충남삼성고는 다른 고교들과 확연히 달랐다. 충남삼성고는 아예 정규 교과시간에 소논문 작성의 기초를 성심껏 지도했다. 약간의 시간만 할애하는 게 아니라 과목명 자체가 '과제연구'였다.

이 학교는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암기하게 하고 객관식으로만 평가하는 방식으로 수업하지 않았다. '무늬만 소논문 활동'을 하는 대다수의 고교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 결론적으로 충남삼성고에서 채택한 IB 방식의 학술적 글쓰기 교육은 한국 공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충남삼성고가 채택한 IB를 국내 공교육에 도입하는 데 반대하는 교사 단체들이 있다. 이날 과제연구 수업을 참관한 전직 교사 한효석씨는 "'한국어 IB'에 반대하는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잠자지 않도록 그동안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르겠다"라면서 "교육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남들까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덧붙이는 글 <글쓰기> 신문에도 송고합니다.
#IB #국제 바칼로레아 #IB 후보학교 #충남삼성고 #박하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