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이 불안한 사람들의 공통점

[부부의 날, 졸혼을 생각하다] 인생도 결혼도, 마라톤과 같았으면

등록 2019.05.21 09:13수정 2019.05.2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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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으로 2007년 제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12년이 지난 현재, 한 해 10만 쌍 넘게 이혼하면서 전통적인 결혼관에 균열이 나고 있습니다. 2019년 5월 21일, 새로운 부부관계의 꼴로 떠오른 졸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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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절반 뛰고 되돌아오는 코스다. 중간중간 물이 있고 사람들의 응원도 있다. 정 힘들면 멈춰도 되고 다음에 다시 도전해도 된다. 돌이켜 보니 인생 또한 그렇고, 그래도 된다. 결혼도 편견 없이 그렇게 임했으면. ⓒ unsplash

 
4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생애 첫 5km 마라톤에 도전했다. 사실 준비를 따로 한 건 아니고 친구 따라 강남 간 셈이다. 요가 강사로 일하는 내 친구는 수영, 배드민턴, 헬스 등 각종 운동을 섭렵했는데, 이번에는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혼자 참가하긴 심심하니 나더러 같이 나가잖다. 뛰다가 힘들면 걸어도 된다면서.

강아지들을 데리고 한두 시간 산책하는 게 요즘 내 운동의 전부다. 걸음도 원래 느린 데다 다리도 약간 O자형으로 휘어서 빨리 걸으면 스텝이 엉켜 잘 넘어진다. 그런 내가 마라톤에 참가하다니.

마라톤 대회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참가했다. 이슬비가 살짝 내리고 추웠다. 나는 반소매티에 검은 레깅스를 입었는데 왠지 민망해서 그 위에 반바지를 덧입었다. 친구는 운동선수답게 표범 무늬 레깅스를 입고 나타났다. 의상에서부터 졌다. 둘러보니 남자 참가자들도 레깅스를 많이 입었다. 나만 촌사람.

하프 코스를 신청한 사람들이 먼저 출발했고, 그다음 10km 코스, 마지막이 우리가 참가한 5km 코스 차례였다. 내 참가 번호는 9517번, 번호표를 배에 달고 있으니 진짜 달리기 선수가 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우리도 뛰었다. 나는 초보운전자처럼 '나는 이미 틀렸으니 먼저가'라는 사인을 친구에게 보낸 뒤 내 속도로 뛰었다. 날이 추워서인지 생각보다 뛸 만했다. 나의 목표는 기록에 상관없이 중간에 쉬지 않고 뛰기.

거북이 같은 속도로 달렸다. 조금 가다보니 1km 지점을 알리는 팻말이 있었다. 놀랐다. 내가 1km를 뛰었구나. 2km, 3km 팻말이 스쳐 지나갔다. 이쯤 되니 다리가 오토매틱으로 움직였다. 숨이 차고 힘이 들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뛴 거 쉬지 말고 완주해보자 하는 욕심이 들었다.

1km가 남았을 때 체력이 바닥났다. 하지만 나는 이때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쉬거나 멈추면 내가 하고자 하는 무언가(이를테면 요즘 도전 중인 시나리오 작업)를 끝내 이루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하여튼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갈망이 컸는지 완주에 성공했다. 기록은 35분. 뭔가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면서 벌써 백상예술대상의 대상에 달하는 작품을 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네, 못 사네' 하면서도 사는 이유

진작 결승점에 들어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친구도 나를 보고 놀라워했다. 예상보다 너무 잘 뛰어서. 대회에서 준비해준 국밥을 먹으며 환희를 만끽했다. 잔디밭에 앉아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소감과 근황을 주고받았다. 마라톤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마무리는 결혼 이야기다.

친구는 결혼한 지 25년, 나는 23년이다. 친구는 얼마 전 남편과 다투고 절교 상태로 지내다가 며칠 전 극적으로 화해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귀찮게 한다며 괜히 화해했다고 투덜거렸다. 한두 번 듣는 레퍼토리가 아니라 그냥 웃었다. '사네, 못 사네' 하면서도 우리가 결혼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뭘까. 나는 친구에게 얼마 전 겪은 일을 들려줬다.

동창 모임에 나갔더니 서울에 사는 한 친구가 '아이들이 결혼할 나이가 다가오니 걱정이 많다'고 했다. 자기뿐만이 아니란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함께 지내온 동네 아파트 엄마들이 있는데, 다들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는 것. '요즘 세상이 무서운데, 집안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배우자로 들어와 우리 집까지 망칠까 걱정이 된다.' 그러므로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 즉 '정상적인 반듯한 집안'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게 친구의 결론이었다.

'반듯한 집안'이란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부부를 포함한 구성원끼리 화목한 가정을 뜻하는 것 같은데,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 없는 집은 없다. 무엇이 정상의 기준일까. 소위 '결손 가정'에서 자라는 것은 자신의 잘못도, 선택도 아닌데 '문제가 있는 사람 취급'을 당해야 한다니. 더 놀라웠던 건 친구의 말을 듣는 동창들이 모두 '맞아 맞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는 사실이다.

나는 세상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 상황이 더 소름 끼쳤다. 괜히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날 내가 진정 안절부절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날 내 옆에 앉은 친구 때문이다.

15년 전 남편이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이혼하고 친구 혼자 딸 둘을 키웠다. 그녀의 눈물 나는 사연을 잘 아는 나는 친구가 받을 상처에 마음이 쓰였다. 서울 친구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옆에 앉은 친구가 더 불편할 것 같아 나서지 않았다. 잔디밭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마라톤 친구는 '이런 시선 때문에 우리가 참고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좀 힘들고 말지 하는 심정으로.

자식 때문에 산다는 말은 핑계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사는 사람들에게는 살 만한 이유가 있고 헤어진 사람들에겐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돈 때문에, 혹은 만만함이나 편안함 때문에 살기도 한다. 반대로 그 돈 때문에, 혹은 존중받지 못해서 헤어지기도 한다.

결혼의 길도 다양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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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처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따로 갖고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건 꿈같은 얘기일까. ⓒ unsplash

 
어느 여성이 결혼 40여 년 만에 작가인 배우자와 졸혼했다는 소식이 화제를 모았다.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서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식이란다. 결혼은 버겁지만 이혼은 벅차다 싶을 때 졸혼은 대안이 될까.

어느 글방모임에서 졸혼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대체로 결혼생활이 오래된 여자일수록 앞으로 누구의 아내, 엄마, 자식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어떤 이는 졸혼을 비겁한 선택이라 했고, 어떤 이는 졸혼으로 인해 쉽게 가족제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회적 문제를 지적했다.

나는 전자와 후자 어디에도 손을 들어주지 못했다. 주변 형편을 고려해 좀 비겁하면 죄가 될까. 제도가 개인의 불행보다 우선인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졸혼을 불편하게 여기는 시선에는 불안감이 묻어 있었다.

이 불안감의 격차는 남녀로 구분되기보다 돌봄을 받아온 사람과 돌봄을 해온 사람의 차이에서 유래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주변의 경우, 돌봄을 받아온 쪽이 '독립'에 대해 더 불안을 느끼는 듯하다.

결혼에는 때로 이혼이라는 불가피한 선택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 중간 어디쯤 완충할 만한 다양한 대안 또한 필요하다고 느낀다. 길이 다양해야 절벽 끝에 섰을 때 퇴로가 확보되니까. 퇴로가 단 하나거나 없는 인생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거니까. 아니면 무언가에 기대 한없이 견뎌야만 하거나.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길고 힘들다는 뜻이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보고, 제법 긴 거리를 두 발로 직접 뛰어보니 맞는 말 같다. 마라톤은 절반 뛰고 되돌아오는 코스다. 중간중간 물이 있고 사람들의 응원도 있다. 정 힘들면 멈춰도 되고 다음에 다시 도전해도 된다. 돌이켜 보니 인생 또한 그렇고, 그래도 된다. 결혼도 편견 없이 그렇게 임했으면.

고작 5km를 뛰고 일주일을 앓았다. 무식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덕분에 침대 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내 남편은 어떤 삶을 살길 원할까. 우리가 지금처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따로 갖고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건 꿈같은 얘기일까.

뉴스를 구실 삼아 졸혼 이야기를 슬쩍 남편에게 꺼내봤다. 그는 굳은 얼굴로 묵묵부답이다.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거 보니 아마도 그가 나의 돌봄을 더 많이 받아온, 독립이 불안한 쪽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 혼자 살아보고 싶다'라는 말이라도 한번 꺼내볼까 싶다가, 행여 '당신과 이제 살기 싫다'라는 날카로운 상처의 말로 들릴까봐 조심스럽다. 아직 돌봐야 하는 자식이 있으니 자식 핑계 대고 좀 더 살아야 할까 보다. 아직도 다리가 아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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