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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와 안티 페미니스트의 대립... 이 논쟁의 결말은

[리뷰] 연극 <환희 물집 화상> 일상이 된 페미니즘을 다층적으로 들여다 본다

19.05.08 15:44최종업데이트19.05.0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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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환희 물집 화상> 포스터. ⓒ ?프로덕션IDA

 
뉴욕대 유명 교수이자 저명한 여성학자 캐서린은 어느날 어머니 앨리스의 심장발작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고 지내는 외로움과 어머니가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안식년을 맞아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는 그녀의 대학원 절친 그웬과 던이 결혼해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캐서린과 던은 대학원 시절 사랑했던 사이였다. 

캐서린은 고향에서 새로운 페미니즘 강의를 시작한다. 하지만 강의에 신청한 이는 그웬, 그리고 그녀의 베이비시터 에이버리뿐이다. 사람도 별로 없고 아는 사이이니 캐서린과 앨리스 집의 거실에서 강의를 진행하게 되는데, 수업 때마다 열띤 토론이 계속된다. 페미니즘의 대가인 캐서린과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욕망에 충실한 에이버리, 전업주부로 살아가며 자신의 삶을 부정하기 싫은 그웬. 그리고 이들보다 한두 세대 위의 앨리스까지. 

한편 던은 학문은 포기했지만 교수로서 대학교에서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집에선 마약과 술, 포르노로 점철된 쓸모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가정에는 손을 떼다시피 하여 그야말로 수동적인 삶을 사는 원시인과 다름 없다. 그런 그를 두고 캐서린과 그웬은 자리 바꾸기 게임을 시작한다. 전업주부 그웬이 교수 캐서린의 자리로 가고, 캐서린은 그웬에게서 '양도' 받은 던과 함께 사는 것이다. 어떤 결말을 얻게 될까?

막장 사랑 스토리와 투철한 이론 수업

연극 <환희 물집 화상>은 2013년 극작가 지나 지온프리도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2013년 퓰리처상 연극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이 작품은 사전정보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최근 페미니즘은 시대적 요구를 넘어 우리 삶과 인생에 깊숙히 들어와 일상적이고 보편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연극은 페미니즘을 이론과 삶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다층적으로 다양하게 들여다본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이들이라도 이 연극을 보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줄거리를 통해서도 대략 짐작할 수 있듯 <환희 물집 화상>은 '막장'에 가까운 스토리다. 하지만 막장 뒤에 '블랙코미디'가 붙는 만큼 두 이질적인 장르는 매우 잘 어울리고 또 심리적으로 매우 알차다. 진지하게 페미니즘을 전달하려 했다면 오히려 기억에 거의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러브스토리'와 '페미니즘 토론'의 투 트랙으로 진행되는 연극은 매우 쉽고 직설적이지만 한편 매우 어렵고 복잡다단하다. 막장 스토리라도 쉽고 이론 수업이라고 어렵고 복잡다단한 것만도 아니다. 투 트랙 모두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만큼, 실컷 웃으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다. 

페미니스트 vs. 안티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단'과 '필리스 슐레플리'는 캐서린의 이론 수업에 나오는 가장 핵심인물이다. 이들의 주장은 캐서린과 그웬에게도 그대로 통용된다.

두 사람은 모두 1920년대 태어나서 2006년과 2016년에 세상을 떴다. 베티 프리단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로, 미국 페미니즘 제2물결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녀는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이 그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필리스 슐레플리는 안티 페미니스트로, 미국 수정헌법의 양성평등조항 채택을 저지한 극우 정치활동가였다. 그녀는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주어진 역할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요즘의 눈으로 보자면, 당연히 캐서린이 '옳고' 그웬이 '틀려' 보인다. 하지만 캐서린이나 그웬 둘다 본인의 삶을 본인이 온전히 '선택'했고 그 선택에 따른 삶이 '행복'하다면 어떨까. 물론 연극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삶을 탐하고 본인의 삶을 불행히 여기기에 자리 바꾸기 게임을 하지만, 결국 서로 바꾼 것이라면 달라질 게 없는 게 아닌가. 

본인이 좋고 행복하다는데, 우리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존재가 바로 에이버리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욕망이 가장 중요한 그녀 말이다. 그녀의 의견은 의식하지 않았지만 '남녀평등'의 개념에 가장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그녀의 의견은 극중에서 캐서린에게 큰 힘이 된다. 

사랑, 결혼, 가정

연극은 사랑과 결혼, 가정에 대해 이야기 한다. 최근 이러한 개념에 대해 어떻게 재정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캐서린과 에이버리도 사랑으로 흔들리고, 캐서린은 결혼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다층적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있으며, 그웬은 가정에 얽매여 있는 현실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오직 던 만이 그 수많은 암초들 사이에서 혼자 여유롭다.

사랑, 결혼, 가정은 인간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러한 단어들을 '여성'에 한정 지어서, 여성에게만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여기고는 했다. '가사 노동', '육아' 역시 오로지 여성의 몫이었다.

<환희 물집 화상>은 청일점인 던을 객체로 그리며 이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던은 극중에서 수동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하등 다를 바 없기도 하다. 가정에서 마약과 술로 도망치는 남자 던은 '커리어'라는 뭉뚱그려진 개념으로 도망치는 남자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여자는 가정에서도 바깥에서도 도망칠 곳 없이 '슈퍼우먼'이 되어간다. 

연극의 결말을 말할 순 없지만, 비극이 아니길 바란다. 남자와 여자의 구도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와 안티페미니스트 사이에 말이다. '물집'과 '화상'이라는 다른 듯 비슷한 상처가 아물어 '환희'를 맛보기 바란다. 자연스레 '연대' '통합'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비단 이 연극이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연극이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연극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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