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 재개발에 반대했던 상인들이 몇달만에 두 손 든 까닭

[세운, 도시재생의 거짓말 ④] 세운3구역 일부 철거시 소송전 남발

등록 2019.05.16 07:59수정 2019.05.1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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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운상가는 도심 제조업의 심장 같은 곳이다. 수백여 제조업 장인들이 모여, 인공위성 부품까지도 뚝딱 만들어낸다. 을지면옥과 같은 오래된 식당도 여기 있다. 하지만 몇년새 이곳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곧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이미 일부 구역은 철거됐고 나머지도 조만간 철거를 앞두고 있다. 세운 3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속살을 들여다본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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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 세운재정비촉진사업으로 공구거리의 건물들이 철거 작업 중이다. ⓒ 이희훈

 
"세운 3구역 상인들도 H건설에서 압박하는 바람에 손 들었어요." (청계천생존권사수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
"재개발 반대 지주, 상인들이 거기(H건설)를 매우 꺼려해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관계자)
 

서울 세운정밀공구상가(세운3구역) 재개발을 추진하는 H건설은 이곳 세입자와 상인들에게 두려운 존재다. 재개발 반대 운동을 하는 청계천생존권사수비상대책위 관계자도 "가급적 그쪽과는 접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이 이처럼 H건설을 꺼리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세운 아파트 예정지 세운 3구역에 대한 철거 작업이 진행될 때, 해당 지역 상인들의 반발은 거셌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상인 등 400여 명은 지난해 4월 '청계천 상권 수호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중구청 등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그러자 H건설은 이들을 상대로 소송전을 시작했다. 퇴거를 거부하는 상인들에게 수 억원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을 제기하고, 상인들의 영업용 통장도 가압류하도록 했다. '점포를 비워달라'는 내용증명도 수차례 보내며 압박했다.

퇴거 거부하는 상인 상대로 대대적인 소송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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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를 앞둔 상가의 창가에서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 천막이 보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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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을지로 세운공구상가에 철거를 앞둔 지역에서 예초기 판매를 했던 한 상인이 사무실을 비우며 아쉬움에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 이희훈

 
당시 통장이 가압류됐다는 최아무개(43) 사장은 "통장 가압류 사실도 은행에서 문자가 와서 알게 됐다"며 "영업용 통장이 가압류되면서 사업 자금이 묶여 어려움을 겪었고, 내용증명도 2주에 한 번 꼴로 오면서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말했다.

통장 압류 등으로 상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자 관할 행정기관인 중구청이 나서서 자제 요청을 하기도 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당시 시행사에서 세입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해,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소송을 남발한 효과는 분명했다. 잇따른 소송에 부담을 느낀 상인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청계천 상권 수호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원은 2018년 4월 400여 명이었지만, 같은 해 11월 20여 명으로 줄었다.

결국 지난해 11월 비대위는 H건설과 합의를 한다. H건설이 세입자를 상대로 한 소송을 취하하는 대신 세입자들은 점포에서 퇴거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던 유락희씨는 "남아 있는 회원들 통장이 압류되고 영업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회원들과 상의해 (시행사가) 모든 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남은 사람들이 모두 퇴거하자 지난해 12월 이 지역에 있던 건물들도 전면 철거됐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관계자는 "통장을 차압당한 상인들이 화병이 나고, 아팠던 분들이 쓰러지고 하면서, 결국 3-1, 3-4, 3-5구역이 빨리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H건설은 지금도 일부 상인들을 상대로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산업용벨트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최아무개씨의 경우 여전히 H건설과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눈엣가시였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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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세운공구상가 ⓒ 이희훈

 
H건설은 소송전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최씨를 상대로 부당이익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1월 비대위와 합의한 뒤에도 H건설은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최씨에 대한 소송 취하를 약속한 적 없다는 것이다.

당시 비대위와 H건설의 합의 내용을 입증할 문서나 서류도 남아있지 않아 최씨는 더 답답한 상황이다. 그는 "내가 눈엣가시였던 모양"이라고 한탄했다.

최씨는 "(비대위가) 합의한 당일 오후 2시쯤 들르니, (H건설 관계자가) 나중에 다시 오라고 했다"며 "다음날 변호사와 함께 가니 (H건설 관계자가) '우리와 합의 하려면 7000만 원을 내라'고 하더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H건설) 담당자가 나중에 '소송 취하하겠다'고 말한 적 없다고 하니 황당했다"며 "우리가 퇴거를 안 하고, 변호사 선임해 대응하면서, (H건설 입장에선) 눈엣가시였다고 하더라"라고 한숨 쉬었다.

세운 개발 예정지에 있는 다른 상인들도 언제 이런 일이 닥칠지 몰라 불안하다. 재개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아무개(57)씨는 "아직은 부딪혀보지 않았지만, 법적으로 따져서 공사 못했다고 무조건 책임 물리고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겁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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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 세운재정비촉진사업으로 공구거리의 건물들이 철거 작업 중이다. ⓒ 이희훈

 
#세운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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