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들어오게 한다'는 금전수, 꽃 모양도 놀랍네

[만고땡의 식물 이야기] 금전수의 드라마틱한 생애

등록 2019.05.10 13:51수정 2019.07.1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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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이었다. 배우 김정은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와 활짝 웃으면서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라고 외친 게. 나는 놀랐다. 신용카드를 쓰면 부자가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말이 되나 하는 게 가장 놀랐고, 사람들이 이런 얼토당토 않은 설정에 반감을 가지기는커녕 거 참 듣기 좋은 말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놀라웠다.


맥락 없는 소리 아닌가. 밑도 끝도 없이 부자가 되라니. 내가 세상 살아가는 유연성이 부족한 것인지, 그 광고가 불쾌할 정도로 뻔뻔해서 보는 것조차 싫었고 민망했다. 이제 세상이 대놓고 돈타령을 해대는구나, 다들 돈 귀신이 더덕더덕 붙었네 싶은 삐딱한 마음이었다.

오마이갓! 그런데 이 광고 문구가 대박을 쳤다. 너도 나도 만나는 사람마다 훈훈한 덕담을 건네듯 "부자되세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신비의 주문을 외우면 정말 그렇게 이뤄지기라도 할 것처럼. 그 말이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불러와 IMF를 겪으면서 절망하고 나락에 빠진 경제 상황이 대부흥이라도 일어날 태세였다.

사회 곳곳으로 부자되세요 운동(?)이 유행처럼 번지던 그때, 식물 업계에서는 '금전수'가 등판한다. 중국에서는 금전수를 키우면 돈 운이 따른다는 속설이 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로 금전수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이름을 아예 '돈나무'라고 지었다. 잎의 모양이 동전처럼 생겨 흔들면 돈이 우수수 떨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돈과 연결한 것이다. 시장에서 쉽게 부르는 이름이나 유통명, 속설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식물을 팔기 위해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과장해서 표현하기도 한다. 대박 상품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더 그렇다.

금전수를 '돈나무'라고 흔히 부르지만 실제로 '머니 트리(money tree)'라는 영어 이름을 가진 식물은 파키라다. 그래서 돈나무를 주문했는데 파키라가 배달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식물을 키울 때나 특별히 관심 가는 식물이 있다면 한번쯤 정확한 사진과 학명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금전수 학명은 자미오쿨카스이다.


파키라나 행운목, 벤자민, 해피트리처럼 키가 큰 식물은 개업집 문 앞에 마치 장승처럼 서서 '이보셔들, 새 가게 오픈했소~' 듬직하게 시선을 끌지만, 금전수는 적당히 아담한 사이즈라 창가에 있거나 계산대 주변을 꿰차기도 한다. 돈이 들어오게 한다니 그 자리가 명당인 셈이다.

나는 "부자되세요" 리본이 매달린 금전수를 그리 눈여겨 본 적이 없다. 부자 마케팅에 불려왔을 뿐, 금전수는 그저 초록 식물일 뿐이고 싫지는 않았다. 그러다 금전수를 업둥이로 데려 오게 되었다. 지인이 화분 정리를 하면서 분양한 것이 인연이었다.

금전수를 키우며 알게 된 사실
 

금전수 참 평범하게 생겼다. 줄기에 잎이 달려 있다. 그게 전부다. ⓒ 김이진


식물의 잎을 감상하는 식물을 대체로 관엽식물이라고 부른다. 금전수도 관엽식물에 속한다. 사실 관엽식물은 잎이나 전체적인 수형 외에는 별로 즐길 게 없어 드라마틱한 성장이나 개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저 봄여름가을겨울 아무 탈 없이 자라면서 싱싱한 초록잎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는 것이다.

금전수는 생김새도 평범한 편이다. 기다란 줄기에 타원형 잎이 양쪽으로 펼쳐진다. 잎은 짙은 녹색이고 매끈매끈한 질감이다. 별다른 게 없다. 이게 전부다. 줄기가 빳빳하게 힘이 있어 한번 돋아난 잎은 오랫동안 싱그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별로 변화가 없어 "늘 그런갑다" 상태를 유지한다. 나도 한번씩 쳐다 보면서 초록 기운을 느끼는 정도다.

우리집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베란다에 나가 탁 트인 풍경을 즐기기 좋다. 그러면서 두런두런 식물 동정을 살펴본다. 그러다 금전수가 의외로 드라마틱한 구석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데려온 지 몇 달이 지났을까. 줄기 아래쪽에 뾰족한 것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밝은 연두색 빛을 띠었고, 단단해 보인다. 새 잎이 돋아나는구나! 직감했다. 하루에 아주 조금씩 조금씩 크기가 커진다. 도르르 말린 잎이 나오더니 어느 한순간 으라차차! 기지개를 활짝 피면서 새 줄기가 뻗어나온다.
 

금전수 줄기 아래쪽에 아주 작은 새싹이 나온다. 밝은 연둣빛으로 단단하다. ⓒ 김이진

   

금전수 하루에 아주 조금씩 자라면서 도르르 말린 잎이 펴진다. 몸집은 작지만 저 속에는 이미 줄기 하나가 완성된 모습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 김이진

   

금전수 잎이 겹쳐진 모습이 징그러운 번데기 같기도 하다. 이제 조금씩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금전수는 이렇게 새 잎과 줄기가 돋아나는 모습이 재미있다. ⓒ 김이진

 
번데기 주름처럼 보이던 모습은 여러 장의 잎이 겹쳐진 것이다. 어찌 보면 징그럽기도 하다.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2주 가까이 웅크린 모양으로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니 정말 신기했다. 게다가 나는 잎이 한 장씩 돋아나는 줄 알았는데 이미 완성된 형태로 하나의 줄기가 만들어지는구나! 근사하다.

새 잎이 돋아나는 시기는 정말 흥미롭다. 32개월 된 아이한테도 새싹이 돋아난다고 자주 보여 주었다. 하루하루 새 잎이 자라는 모습을 재미있어 했다. 서툰 발음으로 "엄마, 커젔어, 음청 커젔어"라고 종알거렸다. 세상 밖으로 모습을 보인 새 줄기는 그때부터 거침 없이 쑥쑥 자란다. 며칠이면 금세 자리를 잡아 원래 있던 줄기와 키가 비슷해진다. 대단한 추진력이다.

며칠 전이었다. 이번에도 새 줄기가 나오려는지 연둣빛 몽우리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기나긴 웅크리는 시간 없이 잎이 빨리 자라는 것 같다. 따뜻한 봄이라 일찍 펴지는 건가,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어느날 보니 난생 처음 보는 무언가가 거기에 있었다. 깜짝 놀랐다. 그건 분명 꽃이었다. 작은 방망이처럼 생긴 꽃.

멋진 카라를 걸친 것처럼 연두빛 포를 두르고, 방망이 꽃이 피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작은 하트 모양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놀라워라. 태어나서 금전수 꽃은 처음 보았다. 나는 금전수가 꽃을 피운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저렇게 독특하게 생긴 꽃이라니. 

식물이 자라는 것이 드라마다
 

금전수 꽃 천남성과 식물은 저렇게 방망이 모양의 꽃을 피운다. 나는 막연하게 금전수는 꽃을 안피우는 줄 알았나보다. 연두색 포에 싸인 방망이 모양 꽃이 정말 신기하다. 마치 외계에서 온 생명체 같기도 하다. ⓒ 김이진

 
아, 평범한 생은 없구나... 금전수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잎과 줄기가 늘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은 끊임없이 활동하고 살아간다. 식물이 자라는 것이 드라마다. 그리고 나의 속물성도 깨달았다. 금전수 꽃을 보면서 '우리 집에 돈이 들어오려나 보네~' 신나 했으니까 말이다. 하하핫.

금전수를 키우면서 가장 주의할 점은 과습이다. 과습 상태가 이어지면 잎이 누렇게 되고 죽는다. 잎이나 줄기가 두툼한 식물은 그만큼 수분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물을 자주 주면 뿌리가 썩는다. 한번 썩은 뿌리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금전수는 일반적으로 한달에 한번 정도 물주기를 권장한다. 식물 물주기는 자신이 키우는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권장 사항에 그다지 얽매일 필요 없이 겉흙이 바싹 말랐을 때 흠뻑 주는 것이 좋다. 이건 키우면서 체득하는 감이다.

그리고 외부와 차단된 환경이라면 통풍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바람이 통하는 곳을 좋아한다. 또 하나 추가한다면 겨울철에 지나치게 추운 장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물관리와 겨울철 냉해만 조심하면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 금전수도 제라늄처럼 무던하고 맷집 좋은 녀석이다. 
#금전수 #식물 기르기 #금전수 꽃 #돈나무 #개업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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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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